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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교류의 매개체 불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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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0 년 2 월 [통권 제8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3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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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 고려대 강의교수

 

고대 아시아는 인도 문화권과 중국 문화권, 그리고 북방 알타이 문화권이라는 큰 3개의 문화권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인도에서 베다 문명이 형성된 B.C.1500년 경에 중국에서는 은 나라, 주 나라 문명이 발달하고 있었고, 인도에서 붓다가 활동한 B.C.4-5C에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로서 공자와 노자같은 사상가들이 등장하였다.

 

불교의 중국 전래 

 

그러나 티벳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이 가로막혀서 인도와 중국은 교류 없이 이질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이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두 문화권은 기후는 물론 언어, 인종, 풍속 등에서 아주 이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중국어는 표의문자이며 단음절 문자이나 인도어는 표 음문자, 북합 음절 문자이고, 중국인은 시공을 유한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대신 인도인은 무한한 것으로 설정하여 우주적인 영겁의 개념을 설정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문화 간의 만남과 교류가 불교라는 매개를 통해 시작되었다. 인도 쿠샤나 왕조의 카니시카 왕이 서역을 지배하면서 인도불교가 실크로드에 존재하는 여러 국가들에 전파되고, 그 여파로 후한 말 중국 사회 체제가 혼란한 틈을 타서 불교가 스며들게 된 것이다. 불교가 정식으로 중국에 들어온 것은 기원 전후, 기록에 따르면 동한 시대(명제 A.D.67년)의 일이라고 한다. 당시 관방 대표였던 채석이 민간 대표로 도교방사들 십여 명을 데리고 직접 서역의 월지국月支國으로 가서, 승려인 가섭마등, 축법란 두 사람을 초빙하고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 60여만 언과 진귀한 불상과 불기 등을 싣고 낙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중국에 들어온 인도불교는 처음에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였고, 도교의 한 분야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최초로 가져온 불경들이 주로 『안반수의경』 등 수행을 위한 호흡에 관한 것이어서, 도교에서 도사가 되기 위한 수행법과 유사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기 때 문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불교

 

중국에서 인도불교는 중국에 들어와 정착되기까지 의탁불교依託佛敎 시대, 격의불교格義佛敎 시대, 본의불교本義佛敎 시대라는 세 단계를 거쳤다. 의탁불교 시대는 불교가 도교 사상의 한 일파로 이해되던 초기의 시기이고, 격의불교 시대는 불교와 비슷한 도가 사상의 개념, 즉 노자의 ‘무無’나 장자의 ‘소요逍遙’ 개념 등을 빌어 불교의 ‘공空’ 사상을 이해하던 시기이다. 본의불교는 불교 사상이 본격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시기로서, 예컨대 『금강경』의 공 사상과 같이 공에 대한 연기적 의미가 분명하게 이해되는 불교다운 불교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종착점이라고 할 중국불교는 원래의 인도불교와는 아주 다르게 중국인, 다른 표현으로는 동양인의 세계관에 맞추어 새롭게 창조된 불교이다. 중국불교는 인도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천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적으로 ‘중국화한 불교’를 가리킨다. 중국화하였다는 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아시아 불교화되었다는 것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불교, 또는 중국 대승불교라고 부르는 수당 시대의 천태 불교, 화엄 불교, 선 불교가 대표적인 중국불교에 해당된다.

 

불교 수용의 세 단계 

 

불교의 전파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 의탁 → 격의 → 본의라는 과정은 불교뿐 아니라 문화와 문화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서 기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의탁依託은 상대 문화의 어떤 것을 나의 문화의 어떤 대상과 같다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인도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왔을 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처음 만나는 생소한 ‘불교’ 사상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도교의 한 유파에 속한다고 이해하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불교의 다양한 경전들 중 특히 수행을 위한 호흡법 등을 논의한 『안반수의경』 등이 처음으로 중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우연도 이러한 이해에 한 몫을 하였다. 도교의 기본 수행 방식이 호흡법에 의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불교는 완전히 새로운 철학이고 도교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점차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르기는 하지만 불교 사상이 도가 사상과 유사하므로, 도가 사상에 의거하여 불교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格義가 등장하게 된다. 한 문화권에 없는 완전히 상이한 것이 다른 문화권에 들어올 때, 다른 문화권의 유사한 대상과 연관하여 이해하려는 방식이다. 

 

유학의 한 개념을 예로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유학에서는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정치를 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부른다. 이 군자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동시에 인격적으로 성숙한 인물로서, 지위가 낮고 인격적으로도 부족한 ‘소인小人’이라는 개념과 대치되는 대상이다. 그런데 이 군자라는 개념은 서양 문화권에서는 동일한 대상이 없으므로, 유학이 서양 문화권에 소개될 때 할 수 없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gentleman’(젠틀맨= 신사)이라는 개념을 매치하여 소개되었다. 이후 서양 문화권에서는 그 개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good man(훌륭한 사람)’, ‘superior man(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해 방식이 일종의 격의格義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 사회에서 ‘gentleman’이란 봉건제 사회에 기초한 신분을 가진 계층이고, 영주 부인 등에 대한 충성, 친절 등 문화적 개념이 덧붙여진 복합적인 것이므로, 동양의 군자 개념과 바로 연결시키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또한 서양 봉건제는 동양의 전제주의와 전혀 성격이 다르고, 중국 한대漢代 이래 삼강오륜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남녀칠세부 동석’을 보편적인 윤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문화 풍토에서 영주 부인 등에 충성을 표현하는 젠틀맨이라는 개념은 결코 군자와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격의’의 이해 과정을 거쳐서 결국 군자는 서양 문화에서 의탁이나 격의로써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번역 불가능하고 매칭matching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 ‘군자’는 번역이나 매칭이 불가능하고 군자라는 본래의 뜻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여겨져서 ‘쥔쯔junzi’라는 중국어 발음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

 

격의불교, 본의불교, 중국불교 

 

불교 역시 의탁불교 시대가 지난 뒤, 도가 사상을 활용한 격의불교 시대에 접어들었다. 불교의 ‘공空’은 사실은 ‘연기緣起’의 의미인데, 공이라는 중국어 글자가 텅 비어 있다는 뜻이므로 비었다empty라는 뜻으로 오해되고, 따라서 도가의 핵심적인 용어인 ‘무無’로 해석되는 시기를 거치게 되었던 것이다. 위진 시대 6가7종의 시대가 바로 이 시기이다. 『반야경』, 『유마경』 등에서 나오는 불교의 공空 사상이 노자나 장자의 무無 사상과 유사하다고 받아들인 대표적인 최초의 인물은 지둔(支遁, 314-366)이다. 그는 동양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개념 중 하나로서 본래 우주적 질서 또는 자연적 계절의 의미였던 리理에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를 계기로 외래 문화인 불교가 중국에 수용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격의불교의 대표자라고 할 인물인 축법아(竺法雅, 4C)는 공을 물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비유비무) 일체의 분별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또다른 격의불교 사상가인 지민도는 만물이 공인지 공이 아닌지는 아무 상관이 없고, 공을 마음이 만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 격의불교 시기는 ‘창조적 오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법한 시기로서, 불교를 불교 그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쪽 문화권의 유사한 사상과 연관되어 해석되므로 진정한 이해가 아닌 오해하는 일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 오해는 또한 매우 창조적이어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상대 문화권의 사상을 본래의 뜻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상이한 상대 문화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격의의 시기를 거쳐야 하고, 이 격의불교 시기를 거친 뒤 불교는 본래의 불교로 이해되는 본의本義불교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격의불교 사상이 비합리적이고 원래의 뜻에서 벗어난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불교 본연의 사상을 주장한 사람이 도안(道安, 312-385)과 승조(僧肇, 384-414)이다. 이들은 격의불교를 비판하고, 불교에서의 진정한 의미의 공空을 이야기한 뒤로 중국은 본의불교 시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중관 불교가 등장하고 『금강경』 등 ‘반야종 불교’가 흥성하게 된 시기가 바로 본의불교 시기 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중국불교 시대라는 새로운 창조의 시대에 도달하게 된다. 수, 당 시대의 대표적인 불교인 천태 불교, 화엄 불교, 선 불교가 바로 대표적인 사상이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도입되고 난 뒤 거의 천 년의 시간이 걸려서 오해의 과정(격의불교), 진정한 이해의 과정(본의불교), 그리고 마침내 창조의 과정(중국불교)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 불교는 중국에 처음 전래된 인도불교와는 전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되고, 이는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부분은 우리가 중국 근대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므로,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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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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