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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깨달음을 통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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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3 년 5 월 [통권 제121호]  /     /  작성일23-05-05 12:26  /   조회1,15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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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층종교와 심층종교의 차이점 중 하나는 표층종교가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반면 심층종교는 이해와 깨달음을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표층종교는 자기 종교에서 주어진 교리나 계율을 무조건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면 거기에 따르는 보상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심층종교는 지금의 나를 얽매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새롭게 눈을 뜰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깨달음을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깁니다. 모든 종교적 의례나 활동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심층종교에서 중요시하는 깨달음에 대해 좀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종교 경험의 기본으로서의 깨달음

 

미국 종교학회(ASSR) 회장을 지낸 종교학자 프레드릭 스트렝(Frederick J. Streng, 1933~1993)이라는 분은 종교를 ‘궁극적 변화를 위한 수단’이라고 정의했습니다.(주1) 저는 종교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 중 그래도 이것을 가장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 정의에서 제가 보는 것은 변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말에 결국은 ‘깨달음’이라는 뜻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기본은 깨달음을 통해 변화를 얻고 결국 자유롭게 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사진 1. 종교학자 프레드릭 스트렝(Frederick J. Streng, 1933~1993)의 젊은 시절.

 

깨달음은 ‘눈을 뜨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의식의 변화,’ ‘사물을 더욱 깊이 그리고 넓게, 나아가 있는 그대로 봄’, ‘진리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적 용어로 하면 실상實相, 진여眞如, 원성실성圓成實性을 꿰뚫어본다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 의식이 바뀌면, 진실을 알게 되면, 변화를 얻게 되고 종교의 궁극 목표인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고 한 것도 이런 경지를 이야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좀 더 극명하게 밝히기 위해 비근한 예를 몇 가지 듭니다. 첫째, 옛날에는 바다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고 항해를 하더라도 해안선만 따라 돌았을 뿐 멀리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끝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멀리까지 나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둘째, 어느 동네 입구에 큰 구렁이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먼 길로 돌아서 동네로 출입했습니다. 그러다가 용감한 청년들이 도끼를 들고 구렁이가 있다고 하는 곳으로 가 보았더니 그것은 구렁이가 아니라 땅 밖으로 나온 굵은 나무 뿌리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 길로 왕래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만 더 들겠습니다. 어느 사람이 깜깜한 밤에 산비탈 길을 걸어가다가 비탈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떨어지며 용하게 나뭇가지 하나를 잡았습니다. 나뭇가지를 잡고 버티다가 결국은 힘이 빠져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밑으로 떨어졌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와 땅바닥까지는 겨우 몇십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실상을 볼 수만 있었다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고 일찌감치 자유를 얻었을 것입니다.

 

세계 종교에서의 깨달음

 

이처럼 눈을 떠서 사물의 더 깊은 차원, 실상에 더 가까운 면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세계 대부분의 종교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외친 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회개하라’고 한 것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는 그런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말라는 식의 윤리적 훈계가 아닙니다.

 

사진 2. 1945년 이집트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서』.

 

‘회개’라는 말의 그리스어 원문은 ‘메타노이아’로 ‘메타meta’와 ‘노이아noia’의 합성어입니다. ‘메타’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탈바꿈을 뜻하는 ‘metamorphosis’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바꾼다’는 뜻이고, ‘노이아’는 같은 어근에서 나온 영어 ‘noesis’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의식’, ‘인식 작용’을 뜻합니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말의 원어는 ‘의식을 바꾸라’, ‘보는 눈을 바꾸라’, ‘깨우치라’, ‘깨달으라’고 하는 말이라고 풀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겠습니다. 기독교 『성서』 4복음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1945년에 이집트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이라는 복음서가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예수님은 믿으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속에 빛으로 거하는 신, 나의 참 나를 깨달으라는 ‘깨달음gnosis’을 강조합니다.(주2)

 

사진 3. 한말의 어진화가 채용신이 그린 주자의 초상.

 

유교 전통에서도 주자朱子의 경우입니다. 주자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깨달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지성에 앎이 없지 않고, 천하 사물에 이理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아직 이를 끝까지 궁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앎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노력하다가 보면 결국 어느 날 아침 우리 앞에 완전한 깨달음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모든 사물의 표면과 이면, 정교함과 거침에 이르기까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마음 전체와 그 큰 쓰임이 그대로 완전한 밝음[明]에 이르게 된다. 이를 일컬어 사물을 궁구함[格物]이라 하고, 이를 일컬어 앎의 지극함[致知]이라 한다.” 

 

유학儒學을 ‘성학聖學’이라 하고,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성聖’이라는 글자에 귀이[耳] 자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성인이란 윤리적으로 완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해 깨달음을 이룬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도가 사상가 장자莊子도 ‘오상아吾喪我(내가 나를 여윔)’, ‘좌망坐忘(앉아서 잊어버림)’, ‘심재心齋(마음을 굶김)’ 등의 가르침을 통해 결국 우리의 의식이 변하는 경지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진 4.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켄 윌버(Ken Wilber, 1949~).

 

심지어 종교를 떠나서도 이런 깨달음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이면서 심리학자 겸 문필가였던 리차드 M. 벅Richard M. Bucke(1837~1902)은 동물들의 단순 의식이나 일반 사람들의 자의식을 넘어서는 ‘우주의식(cosmic consciousnee)’의 경험을 강조하고 있고, 통합심리학자 켄 윌버Ken Wilber(1949~)는 과거 주객을 분리하지 못하던 주객 미분의 의식에서 현재 우리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주객 분리의 의식을 넘어 결국에는 ‘주객 초월의식(trans-subject/object consciousness)’으로의 지향을 강조했습니다.

 

불교에서의 깨달음

 

그러나 무엇보다 깨달음을 가장 힘 있고 체계적으로 강조하는 종교는 불교입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성불’하셨다는 것이 바로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붓다Buddha’라는 이름 자체가 ‘깨달은 분’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the Awakened’ 혹은 ‘the Enlightened’라 합니다. 불교(Buddhism)는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 중에서도 깨달음을 가장 중요시하는 종파는 선종禪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D. T. Suzuki(鈴木大拙貞太郞)는 선에서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깨침[悟り]은 선불교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깨침이 없는 선이란 빛과 열이 없는 태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선에서는 문자나 의례나 교리나 그 어떤 종교적 행사도 모두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수단이라 봅니다.

 

사진 5. 서구사회에 선을 전파한 일본의 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貞太郎, 1870~1966).

 

말하자면 이런 것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속聖俗의 구별도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대로 거룩한 것이고,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속된 것입니다. 심지어 부처나 조사祖師까지도 우리가 깨침을 얻는 데 방해가 된다면 죽이라고 합니다. 임제선사가 말한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것입니다.

 

나가면서

 

한국 불교는 전통적으로 선불교가 주종을 이룹니다. 한국 불교에서는 고려 이후 여러 종파를 통합하여 선禪과 교敎로 나누었는데, 이 둘 중에서도 ‘선을 주로 하고 교를 종으로 한다(禪主敎從)’거나 ‘교를 뒤로 하고 선으로 들어간다(捨敎入禪)’고 하여 어디까지나 선을 교보다 우선시할 뿐 아니라 결국 교는 선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볼 정도였습니다.

 

사진 6. 스위스 출생의 카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

 

잘 알려진 것처럼 선불교는 서양에서도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그리스도교의 경직된 규례나 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눈뜨도록 하는 데 선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신학자 한스 큉은 “선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다.”라고 하면서 자아로부터의 자유, 육체적 정신적 강압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권위로부터의 자유, 나아가 붓다로부터, 경전으로부터, 심지어 선 자체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이런 불교의 본래면목이 한국의 일반 불자들 사이에서도 더욱 많이 알려지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기복 일변도로 보이는 오늘날의 관행에서 벗어나 불교가 줄 수 있는 참된 자유를 맛보게 하는 일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각주>

1) 이분의 책 Emptiness: A Study in Religious Meaning은 『용수의 공사상 연구』 (시공사, 1999)로 번역되고, Understanding Religious Life은 『종교학 입문』(대한기독교서회, 1973)으로 번역됨.

2) 오강남,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 오강남의 도마복음 풀이』(김영사, 20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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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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