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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참다운 고요함에 이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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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3 년 2 월 [통권 제118호]  /     /  작성일23-02-03 15:07  /   조회1,84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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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齒]와 이[齒]를 맞닿게 하고 혀로 입천장을 누르고 마음으로 마음을 제복制伏한 사람에게는 선하지 못하고 악한 탐貪·진嗔·치痴의 생각이 사라지느니라. 이 삼독三毒이 사라짐으로써 내심內心이 안립정지安立靜止하여 일심一心을 성취하여 등지等持를 얻느니라.” 

- 『중부경전』

 

아랫니와 윗니를 마주 닿게 하여 입을 지긋이 다물고 혀는 입천장을 자연스럽게 눌러서 결가부좌하여 편안히 앉는 자세는, 뒤에 발달된 좌선의 방법이 아니라 근본불교에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방법이 그대로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앉는 자세부터 단정히

 

공부를 하려면 처음 앉는 자세부터 입을 다물고 단정히 하여 마음을 돈독히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입을 헤벌리고 앉아서는 마음조차 돈독하지 못하여 자꾸 마음만 산란해지고 공부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입을 다물고 자세를 바로 하여 참선하면 마음으로 마음을 제복하여 모든 객진번뇌가 다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악하고 나쁜 탐·진·치의 삼독이 소멸하여 내심內心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일심一心을 성취하여 삼매에 들어가 정定과 혜慧를 고루 갖춘 경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철스님의 의자.

 

우리 마음이 복잡하고 번뇌망상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탐진치 삼독 때문입니다. 이 삼독의 뿌리는 제8아뢰야식의 근본무명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근본까지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체의 객진번뇌가 완전히 끊어져 일체지一切智가 나타나 대적광大寂光의 일심삼매一心三昧를 성취하게 됩니다. 본래 청정한 진여본성을 깨쳐 놓고 보면 모든 것이 다 고요한 속에서 무한한 지혜의 빛이 비치고, 무한한 지혜의 빛이 있는 가운데 항상 고요한 법입니다. 이것을 적조寂照라고 합니다. 참다운 적조는 부처님 지위에 올라가야 알 수 있는 것이지 등각等覺이나 묘각妙覺의 자리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몸의 자세를 바로 잡고 참선을 부지런히 하면 자연히 모든 것이 쉬어버려서 진여를 안 깨치려야 안 깨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근본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잘 집중하여

정념正念으로써 선정에 드는 사람은 

모기 근심 없는 큰 숲의 짐승과 같이 

평안平安하게 갈 것이니라.

방일放逸하지 않고 쟁뇌諍惱를 떠나 

선정에 드는 사람은

그물을 찢은 고기와 같이 

평안平安하게 갈 것이니라. - 『상응부경전』

 

마음을 아주 오묘하게 집중하여 바른 생각으로 선정에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선정에 들어가면 또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참으로 바른 생각을 얻으면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밥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사람, 즉 참선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기가 없는 큰 수풀 속에 사는 짐승과 같이, 또 그물에 걸린 고기가 그물을 찢어 벗어난 것과 같이 평안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숲속이나 나무가 많은 곳처럼 혼자 세상과 떨어져 있는 곳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여 적정寂靜하고 청한淸閑하여 선삼매禪三昧에 적합한 처소를 택하여 머무시는데 내가 지금 그런 것과 같으니라. - 『장부경전』

 

고요한 장소를 선택하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이 숲속에 계시며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고요하고 청한하여 선삼매禪三昧에 적합한 장소를 선택하여 머무신 것이 부처님께서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여럿이 함께 있으면 자꾸 분주하여 공부에 방해되므로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 고요한 숲속으로 들어가 선삼매 들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도 그러한데 하물며 부처 되려는 사람은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성불하려는 사람이면 될 수 있는 한 분주한 곳을 피해서 조용한 곳을 선택하여 공부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처소는 반드시 조용한 곳으로만 찾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큰 병이 생깁니다. 조용한 곳을 찾는 목적은 선삼매를 익히는 데 좀 편리한 장소를 취하는 것이지 조용한 처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잘못하면 자꾸 조용한 곳만 찾고 시끄러운 데는 피하게 되는데, 이것이 병이 되어 신경질만 늘고 인간적으로 폐인이 되는 병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해서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인데 고적孤寂한 곳만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옛날 조사스님들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요한 처소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아주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가 잘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은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보다 백천만 배나 효과가 더 크다.”

 

장소의 고요함만을 찾는 것도 병통

 

보통 사람은 조용한 곳에서도 공부가 잘 안 되는데 시끄러운 데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조용하고 조용한 곳만 찾아가는 선객들이 있는데 그렇게만 공부하면 인간적으로도 못 쓰게 되어 버립니다. 그런 것을 고적병孤寂病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떨어지면 공부 성취는 고사하고 사람까지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은 부처님 근본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데 모든 장애를 없애고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라는 뜻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 스님들은 고적병을 염려해서 분주한 곳에 있으면서도 화두를 익히라고 하셨습니다. 분주한 곳에서는 처음에야 물론 공부가 잘 안 되는 것 같지만 자꾸자꾸 공부를 익혀 나가면 분주한 곳에서도 공부가 아주 잘 되는 경지에 이릅니다. 그런 동시에 환경이 분주하니 고요하니 하는 생각이 없어져 버리고 언제든지 고요한 곳이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마음을 쉬어버리면 아주 시끄러운 장터 가운데 있어도 깊은 산중에 있는 것과 같이 고요하게 되고,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혼자 토굴을 짓거나 땅굴을 파고 들어앉아 있다 하더라도 마음을 쉬지 못하면 시끄러운 장터에 앉아 있는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산 속에 있어도 자꾸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의 번뇌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참다운 고요한 곳이란 자기 마음을 쉬는 데 있습니다. 즉 발심發心하는 데 있다는 말입니다. 근원적으로 마음을 쉬어야 하는 것이지 환경과 처소로써 고요한 곳을 찾다가는 영원히 공부를 하지 못하고 맙니다.

 

육조六祖(638~713) 스님의 예를 들면, 부처님은 언제든지 참선법을 말씀하셨는데 육조스님은 누구든지 앉아서 참선하는 것만 보시면 몽둥이로 때려 쫓아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부처님께서 자꾸 좌선을 해라, 좌선을 해라, 하시는 것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이고 그때는 주로 그런 방법을 많이 써야 했지만, 그 뒤에 보니 좌선하는 데만 많이 집착하게 되어 도리어 역효과를 나타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병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너무 좌선에만 집착해도 안 되기 때문에 육조스님은 누구든지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놈, 뭣 하느냐! 여기에 그냥 앉아 있는 것이 공부 같으면 벌써 성불 다 했겠다.”고 하시며 몽둥이로 두들겨 팼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앉아 있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앉든지 서든지 속으로 공부를 잘 해야지 앉는 데 집착하고 서는 데 집착하고 조용한 곳에 집착하면 공부가 아니라 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기왓장을 갈아 거울 만들기

 

육조스님의 제자인 남악회양南嶽懷讓(677~744) 선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루는 보니, 체격도 좋고 잘 생긴 사람이 좌선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데, 옆에 다가가서 어른거려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양선사가 그 옆에 가서 기왓장을 돌에다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자기는 공부한다고 열심히 앉아 있는데 웬 늙은이가 와서 자기 앞에서 기왓장을 북북 갈고 있으니 신경질도 나고 이상도 해서 물었습니다. 

 

“스님! 그 기왓장은 갈아서 무엇 하시려고 하십니까?”

“아,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하느니라.”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이 되겠습니까?”

“그래,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나도 참 미치기는 미쳤지만 너는 나보다 더 미쳤다. 앉아만 있으면 부처가 되고 성불을 하느냐?”

이렇게 회양선사에게 경책받은 이가 바로 마조馬祖(709~788) 스님입니다. 앉아만 있는 폐단을 부수기 위해서 회양선사가 방편을 쓰신 것입니다.

 

“앉아만 있다고 해서 견성이 되는 것인가?”

이 한마디에 마조스님이 확철히 깨쳐서 육조스님의 정법을 이은 대선지식이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데는 집착병,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경행하라 한다고 경행만 집착하면 이것도 병이 되고, 좌선하라 한다고 좌선만 한다면 이것도 병이 되고,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란다고 조용한 곳만 집착하면 이것도 병이 되고,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하란다고 시끄러운 곳만 집착하면 이것도 병이 됩니다. 설사 부처가 되었다 하더라도 부처에 집착하면 이것도 병입니다. 부처라는 것도 사실은 중생의 병을 고치는 약이어서 억지로 부처다, 부처다 하는 것인데 만약 거기에 조금이라도 집착하게 되면 그것도 큰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앉지도 말고 서지도 말고 엉거주춤하게 있으란 말일까요?

물론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슨 공부를 하든지 마음을 다잡는 일만 열심히 할 뿐, 앉고 서고 하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집착심을 떠나서 공부를 하면 아무리 앉았다 해도 앉은 것이 아니요, 아무리 서 있다 해도 서 있는 것이 아니니, 그것이 참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참선을 많이 주장하셨기 때문에 혹 여기에 너무 집착하는 생각을 낼까 싶어서 나의 쓸데없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 『성철스님의 화두 참선법』(2016)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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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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