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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쓴 선문정로]
무념이 깨달음의 핵심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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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2 년 10 월 [통권 제114호]  /     /  작성일22-10-05 13:47  /   조회2,08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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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 혹은 견성이라고 표현되는 깨달음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좌선을 하면 되는가? 그렇게 생각할까 봐 일찍이 남악스님은 좌선에 매진하던 마조스님을 향해 수레가 가지 않는다고 수레를 때릴 거냐고 힐문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금과옥조 같은 선지식의 가르침을 들어 말끝에 깨닫기를 기약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까 봐 성철스님은 “내 말에 속지 말라”고 간곡히 가르쳤다.  

 

무심과 의심, 깨달음의 필수적 조건

 

그렇다면 좌선도 아니고 금과옥조의 가르침도 아닌가?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된다. 선종의 역사는 혹은 좌선을 통해, 혹은 선지식의 말끝에 깨닫는 장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좌선을 했기에 견성했을까? 어떤 가르침을 들었기에 돈오했을까?

 

이렇게 묻고 보니 이런 식의 질문도 곤란하다. 어떤 좌선, 어떤 가르침이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모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자. 많은 수행자들이 같은 방식으로 좌선을 하고 같은 가르침을 듣지만 혹은 깨닫고 혹은 미혹의 굴레에서 헤매는 등 그 결과가 같지 않다. 당장 우리들만 해도 『벽암록』과 같이 깨달음의 현장을 들어 직접 보여 주는 기록들을 보면서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다. “왜 그런가?”

 

수행에 임하는 간절함과 진실함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간절함과 진실함은 삶의 무상함에 대한 아픈 체험을 계기로 하는 것이기도 하고, 지지부진한 수행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원천으로 하는 것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라도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이 과제가 최소한 대입시험이나 취업준비의 수준으로라도 절실하게 자기화되어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행이 시작된다. 

 

사진 1. 대유령(매령), 강서성과 광동성의 경계.

 

이렇게 일어난 간절함은 “왜?”, “어째서?”를 묻는 화두 의심과 만나 서로를 증장시키는 운동을 하게 된다. 간절함에서 진정한 의심이 일어나고 다시 그 의심으로 인해 간절함이 더 깊어지는 선순환적 주고받기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깨달음의 내용이 되는 무심의 순도는 바로 그 간절함과 진실함의 정도, 나아가 화두 의심의 정도에 비례한다. 큰 의심의 끝에 큰 깨달음이 오고 작은 의심의 끝에 작은 깨달음이 온다는 선가의 말이 가리키는 바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망상을 내려놓고 무심을 실천하기만 하면 될 것 아닌가? 6조스님의 최초 무심법문에 혜명스님이 깨닫게 된 대유령 사건만 해도 곧바로 무심을 실천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혜명: 행자님! 저를 위해 법을 설해 주시기 바랍니다. 

6조: 선善도 생각하지 않고 악惡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이때 무엇이 그대의 본래 모습이겠습니까? 

(혜명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바로 깨달았다.)

혜명: 이제 가르침을 받고 보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가운지 따뜻한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6조스님은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무심無心의 바탕에서 ‘무엇이 자신의 본래 모습인가’를 묻는 의심을 일으키도록 인도하였다. 이 무심과 의심이야말로 깨달음의 필수적 조건이자 핵심적 내용물이다. 이에 혜명스님은 선과 악의 분별을 내려놓은 무심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확인한다. 그 무심이 중생들은 물론 법계 전체가 함께 공유하는 바탕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무심의 구현을 위해 굳이 좌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해야 할 것 같지는 않다. 6조스님 같은 선지식을 찾으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선지식을 만나는 일은 맹구우목盲龜遇木의 인연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혜명스님에게 돌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전법 가사라는 영예를 탈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6조스님을 따라잡았다. 그에게는 간절함이 넘쳤다.

 

‘출가 전 장군이었을 때처럼 용맹한 기세로 장좌불와의 닦음을 실천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저 이는 어떻게 행자의 신분을 떼기도 전에 전법의 가사를 전수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간절함이 그를 달리게 하여 완전히 마음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대유령의 설법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만나는 모든 것이 선지식이다. 향엄스님에게는 그것이 대나무에 돌 부딪치는 소리였고, 서산스님에게는 그것이 대낮에 닭 우는 소리였다. 현사스님은 돌뿌리를 걷어차는 순간 깨달았고, 영운스님은 복숭아꽃을 보고 깨달았다.

 

이들은 바람이 가득 차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버릴 풍선과 같은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항상 들을 수 있는 법문, 항상 접하는 유정무정의 계기에 ‘꽝!’ 하는 깨달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때 풍선을 채우는 바람이 바로 간절함이다. 이 간절함은 우리를 특정한 경계에 머물지 못하도록 밀어붙인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선 어버이의 마음과 같다. 어떤 절경도 그를 멈춰 세우지 못하고, 어떤 산해진미도 그를 자리에 앉히지 못한다.

 

무념의 바른 의미

 

수행자를 가득 채운 간절함 앞에 내적 망념이나 외적 경계는 힘을 잃는다. 이것이 무념이다. 다만 이 무념은 밝게 깨어 진여와 함께 하는 상태이지 아무 생각이 없는 무지각의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무념을 ‘없는 생각’으로 번역하자고 제안한다.

 

흔히 ‘무념無念’이라 하니까 ‘생각이 없다’고 새깁니다. 또 ‘무심無心’을 새길 때도 ‘마음이 없다’고 새깁니다. 그런데 생각이 없다고 하거나 마음이 없다고 하면 단견에 떨어집니다. 그러니 ‘무無인 심心’ 즉 ‘없는 마음’이라 하거나 ‘무無인 염念’ 즉 ‘없는 생각’이라고 해야 합니다. 일체 진로의 두 가지 모양이 없는 염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해야 바로 새기는 것이지, ‘염이 없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자칫하면 단견에 떨어져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진 2. 현장법사와 『대당서역기』. 

 

무념법문의 완성자인 6조스님 스스로도 무념과 관련하여 “만약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모든 생각을 다 제거해 버린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라고 했다. 무념이라고 해서 의식 활동을 멈추어 무생물처럼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것은 인지 작용의 본래적 완전함과 생생함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해야 옳다. 혜명스님이 고백한 것처럼 ‘찬 물을 마시면 찬 줄 알고, 따뜻한 물을 마시면 따뜻한 줄 아는’ 완전하고 직접적인 앎이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 무념이다. 이러한 앎에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니며 전체 법계가 바로 자신이라는 확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념은 죽음과 같은 무지각이 아닌 것이다.

 

당나라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죽음과 같은 무념에 대한 기록들이 보인다. 그 중 달차시라국呾叉始羅國 동남쪽의 석실에 7백여 년간 선정을 유지하는 두 아라한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그 머리를 깎아주고 옷을 갈아입히며 예배하고 있더라는 기록이 있다. 또 오쇄국烏鎩國의 기록도 있다. 이 지역의 무너진 절벽에서 선정에 든 채 깨어나지 않는 스님이 발견되었다. 그는 ‘마음을 소멸하는 선정[滅心定]’에 든 아라한이었는데 선정에서 깨어나자 사람들에게 물었다.

 

“나의 스승이신 가섭불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대열반에 드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아라한이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으면서 슬퍼하다가 잠시 후 다시 물었다. “석가여래께서는 세상에 나오셨습니까?” “세상에 나오셔서 세상을 인도하다가 이미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일어나더니 허공으로 올라가 신통으로 불을 일으켜 몸을 태웠다.

 

현장스님이 서역으로 출발한 것이 서기 629년의 일이니까 석가여래 열반 이후 이미 천년이 훨씬 지난 뒤였다. 그런데 그 아라한은 석가여래가 태어나기도 전, 멀고 먼 가섭불의 시대에 선정에 들어 있다가 깨어난 것이다. 

 

만년이라고 해야 할까 억년이라고 해야 할까? 그 오랜 시간을 무념의 선정 속에서 몸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굉장한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깊은 선정이 갖는 불가사의함에 감동해야 할까? 성철스님은 이것을 ‘죽은 송장의 무념’으로 표현하면서 극력 경계하는 입장에 있었다. 『백일법문』을 보자.

 

견성과 성불의 근본은 무념입니다. 여기서 무념은 제8아뢰야 무기무념이 아니라 진여본성의 무념입니다. 제8아뢰야 무기무념無記無念은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먼 사람의 무념입니다. 실제로 진여대용이 현발하지도 않고, 해가 뜨지도 않은 것입니다. 광명이 없는 죽은 송장의 무념입니다. 그래서 진여무념은 제8아뢰야 송장이 아니고, 진여대용의 무념이며 구경각의 무념입니다.

 

성철스님의 설법을 듣고 보면 선정에 들어 억만년을 보냈던 그 아라한이 석가여래를 만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진여에 계합하지 못하고서는 부처님과의 진실한 만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스님의 이 기록을 읽었던 중국의 불교인들도 새로운 살아남이 없는 이 선정에 불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중국판 속편이 나온다. 속편의 이야기에서는 현장스님이 선정에서 깨어난 이 스님을 직접 만난다. 

 

석가여래가 이미 열반에 들었다는 말을 듣자 아라한이 다시 선정에 들어가려 했다. 선정에 들어 미륵부처님이 하생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현장스님이 말한다. “부처님은 열반했지만 그 가르침은 살아 있습니다. 나는 지금 서역에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져다 중국에 전하려 합니다. 그러니 스님께서는 중국에 태어났다가 내가 귀국할 때를 기다려 함께 불법을 펼치도록 합시다.”

 

삼거화상 규기스님

 

그 아라한은 현장스님의 권유에 따라 당나라 최고의 명문가인 개국공신 위지종尉遲宗의 가문에 태어난다. 그리고 17세에 현장스님에게 출가하여 역경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가 바로 현장스님의 뒤를 이어 법상종의 제2대 조사가 되는 규기법사였다는 것이다. 당시 규기법사는 세속의 향락조건을 모두 가지고 출가해도 좋다는 특전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행차할 때마다 금은보화와 술과 고기와 처첩들을 실은 세 대의 수레를 거느리고 다녔다. 이로 인해 규기법사는 세 대의 수레 스님[三車和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속한다. 

 

사진 3. 세 대의 수레 스님 규기법사. 

 

이 중국제 속편은 지어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선정, 진정한 무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득력 넘치는 비유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무심은 완전한 부정과 완전한 긍정의 융합, 그러니까 성철스님이 항상 말하는 쌍차쌍조의 중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6조스님이 행한 대유령의 첫 번째 가르침, 즉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자리는 전체 부정, 즉 쌍차의 자리이다. 만약 여기에 머물면 죽은 무념이 된다. 그래서 두 번째 가르침이 행해진다. “무엇이 그대의 본래 모습인가?” 이로 인해 전체 긍정, 즉 쌍조가 일어나 중도의 바른 실천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살아있는 무심을 이렇게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꽃을 보면 꽃에 마음이 머물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에 마음이 머문다. 이처럼 부딪치는 외경에 마음이 따라가 본래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견성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경계를 대하더라도 그 경계에 마음이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본성을 분명하게 본 사람은 경계에 동요하지 않고, 또 경계에 동요하지 않아야 성품을 바로 본 것이니, 이를 무생법인을 증득한 것이라 한다.

 

성철스님의 이 가르침은 진실한 무념의 제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에 의하면 무념은 일체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 일이다. 무념은 일체의 경계를 분명하게 지각하되 주체와 대상, 오염과 청정의 상대적 대립성을 벗어나는 일이다. 무념은 본질과 현상이 둘이 아님을 여실하게 알고 보는 일이다. 결국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현장을 본래 갖춘 무념의 지혜에 맡겨 그대로 따르면서 그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념의 실천이며 깨달음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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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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