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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 사념처四念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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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  2022 년 10 월 [통권 제114호]  /     /  작성일22-10-05 09:51  /   조회3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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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처四念處(cattāri sati-paṭṭꠓhānāni, Sk. catvāri smṛti-upaꠓsthānāni)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 혹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라는 뜻이다. 이른바 신身(kāya), 수受(vedanā), 심心(citta), 법法(dhamma)의 네 가지 염처念處를 ‘사념처’라고 한다. 빨리어 사띠(sati, Sk. smṛti)를 한역에서는 염念으로 번역했지만, 국내에서는 학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번역한다.  

 

초기불교의 대표적 수행법

 

사념처는 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 가운데 한 부분에 속한다. 또한 사념처는 팔정도 가운데 정념正念(sammā-sati)에 해당한다. 사념처를 사념주四念住, 사의지四意止, 사지념四止念, 사념四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념처는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수행에 관한 대표적인 초기경전은 ①「마하사띠빳타나 숫따(Mahāsatipaṭṭhāna-sutta, 大念處經)」(DN22), ②「아나빠나사띠 숫따(Ānāpānasati-sutta, 出入息念經)」(MN118), ③「까야가따사띠 숫따(Kāyagatā- sutta, 念身經」(MN119), ④「사띠빳타나 숫따(Satipaṭṭhāna-sutta, 念處經)」(MN10) 등이다. 그중에서 「마하사띠빳타나 숫따(大念處經)」(DN22)에서 수행의 네 가지 주제, 즉 몸[身]·느낌[受]·마음[心]·대상[法]을 가장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남방불교에서 성행하고 있는 위빳사나(vipassanā) 수행법은 이 경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경전에서는 사념처를 ‘일승도一乘道’ 혹은 ‘감로법甘露法’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불교의 수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22)에서 “이것은 유일한 길(ekāyāna-magga, 一乘道)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슬픔을 건너기 위한 것이며, 번민과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니, 이것이 곧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이다.”(DN.Ⅱ.290)라고 했다. 똑같은 내용이 『잡아함경』 제24권 제607경에도 설해져 있다. 즉 “모든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근심과 슬픔을 벗어나게 하고 번민과 고통을 없애 참다운 법[如實法]을 얻게 하는 일승一乘의 길이 있나니, 이른바 사념처를 말한다.”(T2, 171a, “有一乘道, 淸諸衆生, 令越憂悲滅惱苦, 得如實法, 所謂四念處.”) 요컨대 모든 괴로움을 제거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가장 올바른 수행법이 바로 사념처라는 것이다.

 

한편 『잡아함경』 제24권 제608경에 “만일 비구가 사념처를 떠나면 곧 참다운 성인의 법을 떠나게 될 것이요, 참다운 성인의 법을 떠나면 곧 성인의 도를 떠나게 되고, 성인의 도를 떠나면 곧 감로법(甘露法=生死法)을 떠나게 되고, 감로법을 떠나면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괴로움·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니, 나는 그런 사람을 온갖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했다고 말하느니라.”(T2, 171a, “若比丘離四念處者, 則離如實聖法; 離如實聖法者, 則離聖道; 離聖道者, 則離甘露法; 離甘露法者, 不得脫生·老·病·死·憂·悲·惱·苦, 我說彼於苦不得解脫.”) 이른바 사념처를 떠나서는 결코 생로병사와 우비고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에 대응하는 「아마따 숫따(Amata-sutta, 甘露經)」(SN47:41)에서는 “불사不死가 그대들을 놓쳐버리지 않게 하라.”(SN.Ⅴ.184, “ma vo amatam panassa.”)라고 매우 간략하게 설해져 있다.

 

사념처 수행이란 무엇인가?

 

『잡아함경』 제24권 제610경 「정념경正念經」에 따르면, “사념처를 수행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안의 몸[內身]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부지런히 노력하여 바른 기억과 바른 앎[正念正知]으로 세간의 근심과 슬픔을 항복 받는 것이니라. 그리고 바깥의 몸[外身]과 안팎의 몸[內外身]을 관찰하여 머물러 부지런히 노력하여 바른 기억과 바른 앎으로 세간의 근심과 슬픔을 항복 받는 것이니라. 느낌[受]과 마음[心]도 마찬가지며, 법法에서도 안의 법[內法]·바깥의 법[外法]·안팎의 법[內外法]을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부지런히 노력하여 바른 기억과 바른 앎으로 세간의 근심과 슬픔을 항복 받는 것이니라. 이것을 비구가 사념처를 수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T2, 171b)

 

「마하사띠빳타나 숫따」(DN22)에 따르면,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DN.Ⅱ.290; 각묵 옮김, 『디가 니까야』 제2권, pp.495-396) 이 경에 설해져 있는 사념처 수행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념처身念處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무는 것을 말한다. 먼저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고,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이를테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 이처럼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DN.Ⅱ.292) 다시 말해 몸을 관찰한다는 것은 들숨과 날숨을 바탕으로 네 가지 자세[行住坐臥]를 꿰뚫어 보고 분명히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몸의 서른두 가지 부위를 혐오하고, 사대四大를 관찰하고,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썩어가는 아홉 단계를 관찰하며 머무는 것을 신념처라고 한다.

 

둘째, 수념처受念處란 감각기관에 의해 발생하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무는 것을 말한다. ‘느낌[受]’에는 아홉 가지가 있다. 이른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꿰뚫어 알아야 한다.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세속적인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꿰뚫어 알아야 한다.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비세속적인 괴로운 느낌, 비세속적인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꿰뚫어 알아야 한다. 결국 수념처는 마음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근본 원인을 터득하도록 고안된 수행법이다.

 

셋째, 심념처心念處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마음에서 일어나는 열여섯 가지 마음을 꿰뚫어 알아야 한다. 즉 ①탐욕이 있는 마음과 탐욕이 없는 마음, ②성냄이 있는 마음과 성냄이 없는 마음, ③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④침체한 마음과 산란한 마음, ⑤고귀한 마음과 고귀하지 않은 마음, ⑥위가 있는 마음[욕계의 마음]과 위가 없는 마음[無上心], ⑦삼매에 든 마음과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 ⑧해탈한 마음과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꿰뚫어 안다. 즉 마음이란 변화무쌍하여 ‘덧없음[無常]’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고안된 수행법이다.

 

넷째, 법념처法念處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다섯 가지 관찰의 대상인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즉, 다섯 가지 장애[五蓋], 오온五蘊, 육입처六入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법法(dhamma)’이란 관찰의 대상인 ‘현상 또는 존재’를 말한다. 즉, 마음속에 인지되는 감각 대상으로서의 ‘현상 또는 존재’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칠각지나 사성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수행에 해당하므로 법념처는 그 밖의 실천 수행도를 종합하고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법념처는 ‘현상 또는 존재’ 속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아가 없음’, 즉 무아無我를 터득하도록 고안된 수행법이다.

 

사념처에 대한 대소승의 관점

 

이상에서 보듯, 초기경전에서는 사념처를 실천수행법 가운데 하나로 다루고 있다. 이른바 삼십칠보리분법의 첫 번째 수행법이다. 반면 아비달마나 대승불교에서는 붓다의 전체 교설 가운데 사념처가 차지하는 비중, 즉 붓다가 사념처를 설하게 된 본래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초기경전에 나타난 사념처는 수행법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유일한 길[一乘道]’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나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나타난 사념처는 ‘네 가지 잘못된 견해[四顚倒見]’를 타파하기 위해 설해진 교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나가르주나(Nāgārjuna, 龍樹, 150~250)는 『대지도론』 제19권에서 다음과 같이 사념처를 설명하고 있다.

 

[문] 무엇이 사념처인가? 

[답] 신념처身念處와 수受·심心·법法의 염처이니, 이것이 사념처이다. 네 가지 법을 네 종류로 관찰하니, 곧 몸[身]은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느낌[受]은 괴롭다고 관찰하고, 마음[心]은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대상[法]은 무아無我라고 관찰한다. …(중략)… 왜냐하면 범부凡夫가 아직 도에 들지 않았을 때 이 네 가지 법에서 삿된 행을 하거나 네 가지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중략)… 이런 네 가지 뒤바뀜을 깨뜨리기 위한 까닭에 이 사념처를 말하는 것이다. 깨끗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신념처身念處를 말하고, 즐겁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수념처受念處를 말하고, 항상恒常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심념처心念處를 말하고, 자아가 있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법념처法念處를 말한다.(T25, 198c)

 

이처럼 사념처 수행이란 몸[身]은 부정不淨하고, 느낌[受]은 괴로움이며, 마음[心]은 무상하고, 대상[法]은 무아無我임을 통찰하는 것이다. 이른바 신身·수受·심心·법法을 통해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을 터득할 수 있도록 고안된 수행법이 바로 사념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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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스리랑카 팔리불교대학교에서 학사와 철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샤카무니 붓다』, 『잡아함경 강의』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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