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을 떠나 보리를 구함은 토끼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중국선 이야기]
세간을 떠나 보리를 구함은 토끼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


페이지 정보

김진무  /  2022 년 3 월 [통권 제107호]  /     /  작성일22-03-04 11:02  /   조회6,955회  /   댓글0건

본문

중국선 이야기 15 | 『육조단경六祖壇經』의 선사상⑥

 

『육조단경』은 선종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중국불교, 나아가 전체적인 중국의 사상과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모두 논하는 것은 몇 권의 책을 써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만을 논하고자 한다. 

 

『단경』은 남종 돈법의 징표 

 

우선, 『단경』은 남종선南宗禪을 확립시키고 있는데, 돈황본 『단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인다.

 

“혜능대사는 조계산曹溪山으로 가서 소주韶州와 광주廣州의 두 곳에서 40여 년을 교화하였다. 문인들을 논하자면, 승려와 재가들이 모두 3천, 5천 명에 달하여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종지宗旨에 대하여 논하자면, 『단경』을 전수하고 이에 의지하여 증표로 삼았다. 반드시 (문도들의) 간 곳과 연월일, 성명姓名을 알게 하여 서로서로 부촉咐囑하였다. 『단경』의 품승稟承이 없다면 남종南宗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주1) 

 

사진 1. 덕이본 『육조단경』. 범어사 도서관 소장(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7호).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로부터 혜능의 문하에서는 『단경』을 종지로 삼았으며, “반드시 문도들이 간 곳과 연월일, 성명을 알게 하여 서로서로 부촉하였다.”라는 구절로부터 문도들의 결속을 엿볼 수 있으며, 바로 이 문도들이 남종선의 주축을 이루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더욱이 이를 이어서 “(『단경』의 종지를) 품승하지 못한 사람은 비록 돈교頓敎의 법을 말해도 아직 근본을 알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끝내 다툼을 피할 수가 없다. 다만 법을 얻는 사람에게만 (돈교의) 수행을 권할 수 있으며, 다툼은 승부의 마음이니 불도佛道에 위배된다.”(주2)라고 설하는 것으로부터 상당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남종의 선법을 종보본 『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도道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것[道由心悟]인데, 어찌 앉음에 있겠는가? 경전에 이르기를, “만약 여래가 앉고 눕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여래는 온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주3)라고 하였다. 생生함도 멸滅함도 없음을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고 한다.”(주4)

 

이 구절은 『경덕전등록』의 ‘혜능전’에 실린 내용과 일치하며,(주5) 돈황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에 따라 후대에 삽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른바 ‘도유심오道由心悟’와 ‘선비좌와禪非坐臥’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어 상당히 유명한 구절이다. 그렇지만 돈황본과 사상적으로 일치하고 있고, 혜능의 전기에도 실린 내용이므로 『단경』에서 제창하는 바는 ‘여래청정선’이라고 칭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후대에 남종선 계열에서 ‘여래선’과 ‘조사선’의 명칭에 분화가 나타나는데, 그 구분의 핵심적인 사상은 ‘돈오’이기 때문에 『단경』에서는 비록 ‘여래선’의 명칭을 사용했지만, 사상적으로는 바로 ‘조사선’을 제창했다고 하겠다.

그런데 『단경』에서는 ‘세간’과 ‘출세간’의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동산법문과는 다른 입장이 나타난다. 돈황본과 종보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법은 원래 세간世間에 있는 것이니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난다. 세간을 떠나서 밖에서 출세간을 구하지 말라. 사견邪見은 세간에 있고, 정견正見은 출세간이다. 사邪와 정正을 모두 버리면 보리菩提의 성품이 완연宛然할 것이다.”(주6)

 

“불법은 세간에 있으며 세간을 벗어나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간을 떠나 보리를 찾는 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 정견의 이름이 출세出世이고 사견이 세간이다. ‘사’와 ‘정’을 모두 버리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할 것이다.”(주7)

 

이러한 견해는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도 세속의 생활도 모두 번뇌에 치달리는 것으로 보는 이른바 ‘이상제진로二相諸塵勞’를 제창하는 『단경』의 입장을 여실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로부터 종래의 수행처에 대한 입장도 변할 것이다. 동산법문에 이르기까지 수행은 항상 세간과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 은둔하여 행하여 왔다. 

 

특히 혜능의 스승인 홍인은 도를 배우는 이들이 무엇 때문에 성읍이나 마을에 있지 않고 산속에 머무는가 하는 질문에 “큰 건물의 재목은 본래 심산유곡에서 나오는 것이지 세속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칼이나 도끼로 찍히지 않아 큰 재목으로 자라 후에 용마루와 대들보로 쓰이게 된다.”(주8)라고 답하는 것과 같이 수행은 은둔잠세隱遁潛世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단경』에서는 그와 같은 수행처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그러한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사진 2. 중국 선종의 제5조 홍인화상弘忍和尙.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재가在家에서도 또한 얻을 수 있으며, (출가하여) 사찰에 머묾을 말미암지 않는다. 사찰에서 수행하지 않는다면 마치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사는 이가 마음이 사악한 것과 같으며, 재가에서 수행한다면 동방예토東方穢土의 사람이 선善을 닦음과 같다. 다만 스스로 청정의 수행을 원한다면 바로 서방정토이다.”(주9)

 

여기에서 중요한 사상적 전환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유심정토唯心淨土’이다. 『단경』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염불에 의지하여 서방에 왕생하기를 원하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자기의 심성을 청청히 한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도 ‘그 마음의 청정함을 따라서 바로 불국토佛國土가 청정해진다’(주10)라고 설하셨다.”(주11)라고 한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도유심오道由心悟’와 상응하는 것으로 깨달음에 이르면 지금 이 자리[當下]가 바로 ‘정토’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로부터 송대에 이르면 조사선에서 ‘유심정토’의 사상이 보다 구체화되고, 그에 대하여 ‘서방정토西方淨土’의 반발이 출현한다. 또한 이러한 『단경』의 사상으로부터 후대에 조사선에서 세간을 버리지 않으면서 출세出世하고, 출세간을 버리지 않으면서 입세入世한다는 ‘역출세亦出世, 역입세亦入世’라는 기치가 세워지게 되고, 근대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인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인간불교人間佛敎’가 제창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유불도 삼교의 통섭

 

『단경』이 기여한 또 하나의 사상적 공헌은 유불도 삼교의 통섭을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앞에서 ‘불성’을 어떤 초월적인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늘 접하는 세상 사람들의 인성과 심성의 각도로부터 논하고, 그것이 유가, 특히 맹자의 ‘만물비아萬物備我’와 ‘반구저기反求諸己’의 입장과 유사함을 언급했는데, 『단경』은 또한 도가의 사상도 역시 포용하고 있다.

 

그것은 『단경』의 핵심적인 수행론이면서 궁극적인 경지인 ‘무념·무상·무주’의 삼무와 도가의 ‘무물無物·무정無情·무대無待’의 삼무와의 유사성으로부터 엿볼 수 있다. 도가, 특히 『장자莊子』에서는 “천지와 ‘나’는 함께 생겨났으며, 만물과 ‘나’는 하나가 된다.”(주12)라고 하여 우리의 존재는 본래 그대로 ‘도’와 합일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재색財色 등의 물질에 의하여 현혹되어 부림을 당하는 ‘물역物役’과 수만 가지 정情에 얽매여있는 ‘정루情累’로부터 그 ‘도’와 도치되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물을 잊고[忘物]’, ‘정을 잊으며[忘情]’, 도치된 ‘자신조차도 잊어야[忘己]’ 비로소 본래의 온전한 ‘도’를 회복한다고 한다. 

 

사진 3. 장자莊子. 

 

이를 장자의 ‘삼망三忘’이라고 하며, 또한 이 ‘삼망’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망물’에 대하여 ‘무물無物’이고, ‘망정’에 대하여 ‘무정無情’이며, ‘망기’는 ‘무기無己’를 실현한다고 하겠다. 특히 ‘무기’에 대해서는 궁극적 ‘도’의 경지를 실현한 지인至人은 어떠한 조건[待]도 필요치 않는 자연과 그대로 합일되어 있어 ‘무대無待’라고도 한다. 따라서 흔히 장자의 삼무는 ‘무물·무정· 무대’라고 칭한다. 그런데 장자의 ‘삼무’와 『단경』의 ‘삼무’는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이 보인다. 물론 사상의 궁극적인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다른 사상체계이지만, 형식적인 유사성은 도가에서 『단경』을 용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당조唐朝는 초기부터 ‘불도지쟁佛道之爭’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적 부처와 경전의 탄생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경』의 명칭으로부터 육조혜능은 중국인으로서 ‘불佛’이 출현한 것이라는 메타포가 가능해짐으로부터 중국 전래 이후로 끊임없이 괴롭혀 온 ‘이하론夷夏論’에 입각한 비판이 점차 사라지는 작용을 하였다. 이제 ‘이夷’에 속한 인도 출신인 석존釋尊이 아니라 중국인인 혜능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더 이상 민족적 정서로 불교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성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단경』이 나타난 이후 중국에서 더 이상 위경僞經이나 위론僞論이 출현하지 않는 점을 볼 수 있다. 중국불교에서는 다양한 원인으로 위서를 찬술하였다. 예를 들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불교에서 부모 등을 버리고 출가하니 ‘효孝’를 부정한다는 비판에 대응하고자 출현한 것이고, 『대운경大雲經』은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황제黃帝에 즉위하도록 돕기 위하여 찬술되었다. 또한 마명馬鳴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용수龍樹의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 『금강정보리심론金鋼頂菩提心論』 등과 같이 유명한 논사의 이름을 가탁한 논서는 자신 혹은 종파의 논리를 펼치기 위하여 찬술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경』이 출현하여 유행한 이후에는 더 이상 이와 같은 위서들이 출현하지 않고 있으며, 역으로 수많은 종장宗匠들이 (혹은 제자들이 편집하여)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저술을 발표하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도 사실상 『단경』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 『단경』이 기여한 후세의 작용은 중국의 거의 모든 사상과 문화에 걸쳐 있다. 특히 중국학계에서는 『단경』이 미친 영향을 이른바 ‘육조혁명六祖革命’이라고 평가하여 사상과 문학文學, 시학詩學, 미학美學, 심지어는 회화繪畵, 서예書藝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그를 논하고 있다. 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하고, 이를 이어서 육조혜능 이후의 선사상의 전개에 대하여 논하기로 하겠다. 

 

주)

(주1)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2a), “大師往漕溪山, 韶廣二州行化四十餘年. 若論門人, 僧之與俗, 約有三五千人, 說不可盡. 若論宗旨, 傳授壇經, 以此爲依約. 若不得壇經, 卽無稟受. 須知法處, 年月日, 姓名, 遞相付囑. 無壇經稟承, 非南宗弟子也.”

(주2) 위의 책. “未得稟承者, 雖說頓敎法, 未知根本, 終不免諍. 但得法者, 只勸修行, 諍是勝負之心, 與佛道違背.”

(주3) [姚秦]鳩摩羅什譯, 『金剛般若波羅蜜經』(大正藏8, 752b), “若有人言: 如來若來若去, 若坐若臥. 是人不解我所說義.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이 구절을 援用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4)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9c), “道由心悟, 豈在坐也? 經云: 若言如來, 若坐若臥, 是行邪道. 何故? 無所從來, 亦無所去, 無生無滅, 是如來淸淨禪.”

(주5)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5(大正藏51, 236a).

(주6)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2a), “法元在世間, 于世出世間, 勿離世間上, 外求出世間. 邪正悉打却, 菩提性宛然.”

(주7)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1c), “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 恰如求兔角. 正見名出世, 邪見是世間, 邪正盡打却, 菩提性宛然.”

(주8) 『楞伽師資記』, 「弘忍傳」(大正藏85, 1289b), “大廈之材, 本出幽谷, 不向人間有也. 以遠離故, 不被刀斧損斫, 長成大物, 後乃堪爲棟梁之用.”

(주9)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1c), “若欲修行, 在家亦得, 不由在寺. 在寺不修, 如西方心惡之人; 在家若修行, 如東方人修善. 但願自家修淸淨, 卽是西方.” ;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2b), “若欲修行, 在家亦得, 不由在寺. 在家能行, 如東方人心善; 在寺不修, 如西方人心惡. 但心淸淨, 卽是自性西方.”

(주10) [姚秦]鳩摩羅什譯, 『維摩詰所說經』(大正藏14, 537a).

(주11)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1b), “迷人念佛生彼, 悟者自淨其心. 所以佛言: 隨其心淨, 則佛土淨.”

(주12)  『莊子』, 「齊物論」,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김진무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