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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속을 보여주고 겉을 보여주며 떨어지는 단풍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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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10:13  /   조회1,09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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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선禪 선과 시 8 | 낙엽의 노래·임종게臨終偈

 

 

오전 10시, 케이블카가 있는 앞산 큰골 공영주차장에 25명의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앞산 자락길 산행을 위해서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나왔습니다. 앞산은 시내에서 보면 남쪽이지만, 실상은 앞산의 북사면이라 바람이 차갑습니다.

 

앞산공원 관리사무소 뒤편으로 대성사를 지나 오른쪽 사잇길로 빠져나갑니다. 이런 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뜻밖에도 운치가 있는 길입니다. 앞산의 2~3부 치맛자락 같은 오솔길이 끊어질 듯 이어집니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친구들과 함께 낙엽 쌓인 길을 걸어가니 아스라한 정취가 스며듭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취가 온몸에 충만할 때 비로소 우리는 말 문이 트이기도 합니다.

 

충혼탑, 남부도서관, 대덕문화전당, 신광사, 황룡사의 윗길을 가로지릅니다. 이 길에서는 앞산 정상부는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내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호젓한 길도 아닙니다. 새파란 산죽 옆을 지날 때는 음, 이대로도 좋아, 뭐 그런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사진 1).

 

 

사진 1. 새파란 산죽 옆을 지나며 위로를 받다. 

 

산을 오를 때는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둘러 올라갔다가 서둘러 내려온다면 거기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산자락길이라 해도 거기에는 끝없 는 동물적인 움직임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머리에서 내려와 문자 그대로 다리로, 발로, 땅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습니다.

 

산길 바닥에는 야자 매트를 깔아 놓아 걷기에 편안합니다. 편하고 먼지가 나지 않아서 좋지만,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아쉽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생 흙먼짓길을 걸어왔습니다. 흙먼지가 일고 울퉁불퉁한 그 길이 우리가 평생 걸었던 인생길이었습니다(사진 2).

 

 

사진 2. 야자매트가 깔려 걷기엔 좋으나 발자국 소리가 그립다.  

 

산은 아름답고 삶을 치유하는 기쁨을 줍니다. 산행이 아름다움의 탐구라면 겨울 산행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까요? 자연의 이면에는 어둠이 있고 동시에 떨어져 나뒹구는 죽음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은 미묘하고 심오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낙엽은 우리가 죽는 순간에도 배워야 할 무언가가 남아있다고 속삭입니다.

 

 

사진 3. 수북히 쌓인 낙엽 위로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음이 시리다. 

 

꽃이 피면 우리도 피어나듯이, 낙엽이 지면 우리 안의 어떤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능이 얻는 것에 치중한다면, 감성은 버리는 것에 더 치중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낙엽은 우리의 감성 지수를 높여서 쓸쓸함을 더해 줍니다. 이 지독한 쓸쓸함도 입에 담으려고 하면 그만 평범한 쓸쓸함이 되어버립니다. 인생살이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뼈만 남은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가슴 시린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우 리에게도 올 죽음을 미리 바라보고 미리 밟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사진 3). 류영모(1890-1981)는 죽음 공부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이며 마지막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주1) 서양에서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로 철학을 죽음의 연습으로 봅니다. 몽테뉴(1533-1592)의 표현에 의하면 ‘철학한다’는 것은 실상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몽테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내가 양배추를 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주2)

 

늦든 빠르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선사禪師들은 죽기 전에 가르침 전체를 압축하는 짧은 시 한 구절을 남기는 것이 전통입니다. 그 글을 임종게臨終偈, 또는 열반게涅槃偈, 열반송涅槃頌, 입적게入寂偈라고도 합니다. 임종게 가운데 12세기의 대표적 선승인 원오극근과 천동정각의 임종게는 후세에 하나의 전범典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임종게를 통해서 선사들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그 좁은 오솔길을 한번 더듬어보려 합니다.

 

임제종 승려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널리 애독하는 『벽암록』(주3)을 저술한 원오극근(1063-1135)은 당대 제일의 승려였습니다(사진 4). 그가 가는 곳마다 후학들이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남긴 임종게입니다.

 

 

사진 4. 원오극근(1063-1135).

 

 

살면서 한 게 없으니 

임종게를 남길 이유가 없네 

오직 인연에 따를 뿐이니 

모두들 잘 있게.(주4)

 

당대 제일의 승려인 원오가 ‘이철무공已徹無功’으로 자신의 평생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했으나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 한 게 있다고 은근히 내세우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한 게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으니 임종게를 남길 이유도 없다고 말하며, 그가 남긴 말은 “모두들 잘 있게.”라는 한마디입니다. 그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진중珍重’의 속뜻은 몸을 아끼라는 말입니다. 편지의 마지막에, 또는 사람과 헤어질 때 관용구처럼 쓰는 말입니다. 죽음을 그저 이웃집 가듯이 편안하게 받아들인 평상심의 경지가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임제종과 달리 묵조선의 제창자이자 조동종에서 널리 읽힌 『송고백칙頌 古百則』(주5)의 저자 천동정각(1091-1157)은 이런 임종게를 남겼습니다.

 

꿈같고 환영 같은 

육십칠 년이여

흰 새 날아가고 물안개 걷히니 

가을물이 하늘에 닿았네.(주6)

 

역대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임종게입니다. 원오극근이 ‘이철무공’으로 자신의 평생을 술회하고 있다면 천동정각은 ‘몽환공화夢幻空花’로 67년 세월을 회고합니다. 천동정각의 임종게가 원오극근과 다른 것은 문학적 이미지를 내세워 은유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이 세상 인연을 떠나가면서 보여주는 것은 같지만 표현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원오극근이 ‘모두들 잘 있게’라는 말로 담담함을 보여주었다면, 천동정각은 ‘가을물이 하늘에 닿았네’라는 은유로 ‘깨달은 이가 돌아가야 할 길’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료칸(1758-1831)은 거지 성자로 불리는 일본의 조동종 승려입니다. 그는 무소유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떠돌이 걸식 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써가며 내면의 평정과 행복을 유지한 승려입니다. 그는 수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만, 말년에 병석에서 죽기 전에 자신을 한 장의 낙엽에 비유한 하이쿠를 테이신이라는 젊은 여승에게 주었습니다.

 

속을 보여주고 겉을 보여주며 떨어지는 단풍잎(주7)

 

그는 ‘떨어지는 단풍잎’ 한 장에 삶과 죽음의 아름다움과 함께 애틋한 정감을 모두 담았습니다. 팔랑팔랑 떨어지는 단풍잎 한 장 속에 그가 바라본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 너머를 보지 않고 덧없이 떨어지는 단풍잎과 함께 담백하게 떨어졌을 뿐입니다. 그 담백함이 이 시에 말할 수 없는 깊이를 가져다줍니다.

 

선사들의 임종게는 선승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헹구어 주고 문학적 철학적 사유에 풍부한 영감을 던져주었습니다. 질병이나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이런 것들을 자연의 섭리라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도 역시 고요하고 평온하게 늙어가고 죽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생명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 버리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떨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 궁극적인 어떤 것, 영속하는 어떤 것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면 생을 마무리할 때 아쉬움과 회한의 표정이 아니라 선사들처럼 미소를 머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어디쯤에서인가, 갑자기 새소리를 듣고 깜짝 놀랍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이명과 난청으로 새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며 살고 있거든요. 발길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이자 계속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음, 산속에 들어와서 내 귀가 예민해진 걸까요. 산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귀가 잘 들린다고 합니다.(주8) 야생에서 예민해지는 것이 어떻게 청각뿐이겠어요. 야생으로 들어가면 내 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되살아나는 듯합니다(사진 5).

 

 

사진 5. 산길이 깊어질수록 내 마음속의 소리가 깨어난다. 

 

산에 올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산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줍니다. 행복을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산에 오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산길을 걸으면 과잉 생각이 사라지면서 명상과 비슷한 경지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숨을 헐떡거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오늘 앞산에 숨은 보석 같은 길을 걸으면서 노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는 하루였습니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는 생각할수록 점점 알기 어려운 노인이 되어갑니다. 오늘은 아득하게 먼 곳을 향해, 죽음을 향해, 죽음 너머의 추상을 향해 걸어보았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주)

(주1) 박영호, 『다석 류영모』, 2009.

(주2) 미셸 드 몽테뉴, 『수상록』, 1595.

(주3) 설두중현의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원오극근이 수시垂示·착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저술한 책이 『벽암록』이다. 

(주4) 『승보정속전僧寶正續傳』, 권4, 圜悟勤禪師條, “已徹無功, 不必留頌, 聊爾應緣, 珍重珍重.” 

(주5) 천동정각의 『송고백칙頌古百則』은 1세기 후 만송행수(1190-1246)가 시중示衆·착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종용록』으로 편찬하여 『벽암록』과 함께 선서禪書의 쌍벽을 이루게 된다.

(주6) 『굉지선사광록宏智禪師廣錄』, “夢幻空花, 六十七年, 白鳥煙沒, 秋水天連.”

(주7) 『정본定本 양관전집良寬全集』 2, 가집歌集, “裏を見せ 表を見せて 散るもみじ(うらをみせ おもてを見せて ちるもみじ)”

(주8) 사이토 히로시, 『음악심리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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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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