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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유식불교의 ‘전식성지轉識成智’를 유학식으로 설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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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1 년 12 월 [통권 제104호]  /     /  작성일21-12-03 14:16  /   조회3,19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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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12 | 담사동譚嗣同 1866-1898 ② 

 

유학의 ‘인仁’과 불교의 ‘유식唯識’ 

 

담사동은 유학의 인仁을 천지만물의 근원으로서 ‘유심唯心’이자 ‘유식唯識’이라고 정의하고, 유학과 유식불교를 결합한 논리를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유학 경전인 『대학』의 ‘격물치지설’을 ‘유식불교’를 활용하여 설명하였다.

 

이를 위해 담사동은 자신의 철학에서 핵심 개념에 해당하는 ‘에테르’가 유식불교의 『성유식론成唯識論』에 나오는 ‘상분相分’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유식불교에 의하면, 마음은 능동적인 인식 작용을 행하는 견분見分과 인식 대상인 상분相分으로 나누어진다. 이때의 상분은 견분이 그 대상의 본질本質에 의탁하여 그 상과 비슷한 상으로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므로, 모두 마음이라는 식識 속의 작용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세계에는 오직 식만 존재하게 된다.

 

 


젊은 시절의 담사동.

 

이런 전제에서 에테르가 상분이라고 한 그의 말은, 이 에테르는 마음이라는 식識 속의 작용에 불과하고 반드시 실재實在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담사동은 근대 시기에 “서양 학문이 있어서 불교가 다시 세상에 전파될 수 있었다.”라고 보았고, 나아가 “서양 학문은 불교에 근원을 두고 있다.”라고까지 장담하였다. 유식불교의 상분相分을 서양의 ‘에테르’ 개념과 일치시킨 것은, 그가 서양 학문을 활용하여 불교 진리를 보증하고 근거를 부여하고자 한 의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담사동은 이러한 전제 위에서 『대학』과 유식불교를 연결하려고 시도하였다. 실제로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은 원래 『예기禮記』 중 한 편이었지만, 『예기』와 분리되면서 여러 각도에서 논의되었고 유학과 불교의 합일을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어 왔다. 예를 들면 대혜종고는 유학의 오상五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성性으로 규정하였고, ‘성기性起’라는 화엄 불교의 용어를 인의예지신에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대혜종고는 유학과 불교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고, 그에게는 불교가 유학이고 유학이 불교였다. 

 

대혜종고의 이해 방식은 송명대 성리학의 대표자인 주자와 일치하고, 주자는 대혜종고의 견해에 적극 찬성하였다. 그러므로 주자학이 실제로 불교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담사동이 『대학』 해석을 통해 불교와 유학의 합일을 시도하였던 것도 바로 송명대 유학과 불교계의 노력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주체적 자각’과 유식불교

 

담사동은 “나는 『대학』의 강론을 들었는데, 『대학』은 유식唯識의 종宗이다.”라고 단언하였다. 즉 그는 『대학』을 아예 유식불교 경전으로 파악하였다. 송명대 유학자들도 『중용』이나 『대학』을 불교와 유학이 합치된다는 주장의 수단으로 활용한 일은 있었지만, 이때의 불교는 어디까지나 화엄종이나 선종 등 중국 불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담사동은 여기에 과감하게 유식불교를 끌어들인 것이다. 

유식불교의 목적은 외부 대상과 주관적인 내가 실재한다고 보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깨뜨려서 나와 세계가 모두 공이라는 진리[我法二空]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유식불교 경전인 『성유식론』에서는 ‘나’와 ‘외부 대상’은 “단지 거짓으로 세워져 있고, 실제로 자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와 ‘외부 대상’을 모두 ‘식의 전변에 의해서 거짓으로 시설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식불교에서 객관대상의 세계는 ‘식識으로서의 존재’, 또는 ‘식 안에 있는 존재’가 되며, 따라서 문자 그대로 ‘오직 식만 존재 한다[唯識]’는 말이 성립하게 된다. 이렇게 마음을 중시하는 정점에 위치한 유식불교는 사회의 변화를 ‘개인의 주체적 자각’에서 찾아보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바로 중국 근대에 불교부흥운동이 일어나고 담사동이 유식불교에 관심을 두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식불교의 ‘전식성지’와 『대학』의 ‘격물치지’

 

유식불교에서는 ‘네 가지 지혜’를 말하는데, 이는 인간 의식의 한 부분인 제8아라야식, 제7말나식, 제6식, 전5식을 4가지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전환시킨 것을 말한다. 이렇게 인간의 의식을 깨달은 마음인 네 가지 지혜로 전환시키는 것이 유식불교의 목적이고, 이를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 부른다. 담사동은 제6식이 ‘묘관찰지’로 전환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대학』의 ‘치지致知’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묘관찰지는 “모든 존재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상하고 그 상대적 특징을 구별하는 장애가 없는 마음”이다. 주자는 ‘치지’를 “지식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 모르는 것이 없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때의 지식은 사물에 대한 지식, 즉 사물의 이치인 ‘이理’를 파악하는 것이다. 담사동은 묘관찰지와 치지를 연관시켜, 사물의 궁극 이치를 알게 되면 만물이 하나이므로 개별적 존재들이 서로를 구별하는 장애가 없는 마음에 도달하게 된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학 중에서도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성격인 주자보다는 “인간 본래의 앎인 양지良知에 이르게 한다.”는 양명학의 해석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담사동은 어떤 일이든 반드시 격물치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를 묘관찰지라고 불렀다. 

 

담사동은 제7식을 전환하여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되는 것이 『대학』의 ‘성의誠意’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이 공자가 말하는 ‘의意’라고 본 것이다. 평등성지는 자신과 타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로서, 제7말나식을 전환하여 얻게 되는 지혜이다. 이 지혜에 의하면, 자기와 타인, 만물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큰 자비심을 일으키게 된 다고 한다. 

 

담사동이 이 평등성지를 『대학』의 ‘성의’에 해당하다고 본 것은 “집착을 타파하여 무아에 이르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내 마음이 성실해지지 않는 까닭은 바로 나라는 자아의식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므로, 성실해지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타파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담사동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는 것은 나와 만물이 평등한 관계임을 파악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것이 앞에서 보았던 ‘다른 사람과 내가 통하는 것[人我通]’이라고 할 수 있다. “평등한 뒤에야 무아가 이루어지고, 무아가 된 이후에야 집착할 것이 없어서 성실하다.”고 하여, ‘평등 → 무아 → 성의’의 단계로 설명하였다. 

 

담사동은 제8식을 전환하여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되고, 이 마음은 『대학』의 ‘정심正心’, 즉 마음을 바로잡는 것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대원경지는 큰 거울에 사물의 형상이 그대로 비치는 것처럼,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내는 지혜를 말한다. 이는 제8아라야식을 전환하여 얻는 맑은 지혜를 말한다. 그에게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란 무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며, 이때에는 어떠한 마음 작용도 없게 된다. 유식불교에서 이 제8아라야식의 전환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그 자신을 수양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5식前五識을 전환하면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되는데, 이는 『대학』의 ‘수신修身’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성소작지는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라는 더러운 전5식을 전환시켜 얻는 지혜이다. 이 지혜에 의해 사람들을 구제하여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루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눈, 귀, 코, 혀, 몸은 유학의 신身이므로, 안식, 이식 등 전5식을 전환하여 이루 어지는 지혜인 성소작지는 수신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공자가 제자인 안연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네 가지가 모두 마땅 하다고 한 것은 안식, 이식 등 전5식을 전환하여 성소작지를 이룬 것에 해당된다. 성소작지를 이루는 것은 대원경지를 이룬 후에 가능한 일이므로, 공자의 최애제자인 안연이 인仁을 어기지 않은 것이 결국 대원경지를 어기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해석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꾸준히 인을 행하지 못 하고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겨우 인한 행위를 할 뿐이라면, 이것은 아직 아집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자아의식인 제7식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5식을 모두 전환하여 성소작지를 이룬다면, 유학의 수신 이후의 일인 제가·치국·평천하를 모두 이룰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한결같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한다.”는 『대학』의 구절이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이처럼 유식불교의 ‘전식성지轉識成智’를 유학식으로 설명한 것이 담사동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보살 정신 : 무아와 사회 변혁

 

담사동은 『유마경』의 “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대승불교의 보살 정신을 인仁의 윤리적 의미로까지 확장하고자 하였다. 그는 보살의 자비 정신은 자아라는 장애를 넘어서서 무아에 이를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자비에서 평등심과 두려움 없는 마음[無畏心]이 생겨나는데, 담사동에게 이때의 평등은 사회 신분상의 평등만이 아니라 나라는 자아의식이 사라진 ‘무아’의 근본적인 평등이고, 무외심은 자비의 실천으로 사회 변혁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바칠 수 있는 마음이다. 따라서 담사동은 무아에 도달하기까지의 수행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불교와 유학은 ‘지관止觀’과 ‘신독愼獨’ 등 무아에 도달하기까지의 수행법이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불교에서 ‘지관’은 불교의 중요한 수행 법문의 하나이다. 마음을 단련하여 외부 대상이나 어지러운 생각에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특별한 대상에 쏟는 것을 지止라고 하고, 그것에 의해 바른 지혜를 끌어내어 대상을 보는 것을 관觀이라고 한다. 지와 관은 서 로 상대를 성립시켜 불도를 완수시키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런데 담사동은 지관의 방법이 불교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유학에도 동일한 수행법이 시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는 ‘신독’이 마음을 단련하여 외부 대상에 움직이지 않으려는 유학의 방법론이고, 유학의 ‘지止’라고 할 만하다고 보았다. “열 개의 눈이 보고, 열 개의 손이 가리키니, 조심스럽지 않은가!”라는 조심스러움은 유학의 ‘관觀’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담사동은 이러한 수행법을 통해 내적으로는 무아에 도달하고 외적으로는 사회 변혁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보살 정신을 기를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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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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