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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수도암 측간의 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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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1 년 12 월 [통권 제104호]  /     /  작성일21-12-03 11:42  /   조회4,18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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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선禪 선과 시7 | 김천 수도암

불풍류처야풍류 不風流處也風流 

 

김천에 있는 수도암과 인현왕후길을 걸으러 갑니다. 비가 예보되어 있다가 취소되었지만 채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합니다. 성주댐을 지나 무흘구곡 절경을 보며 수도리에 옵니다. 수도리 주차장에서 수도암까지 1시간 정도 올라갑니다. 수도암까지 1.5km 오르막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힙니다. 천천히, 그러나 한 번도 쉬지는 않고 올라갑니다. 수도산(불령산)은 1,317m 높은 산이고, 수도암은 정상 가까이 1,000m 부근에 있습니다. 1972년 김천 성의여중고에 교사로 근무할 때 수도암에 처음 와 보았습니다. 당시 공사 중이던 이 절에서 나무를 한 짐 해 오시는 40대 후반의 법전스님(1926-2014)을 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 분이 주지 스님이란 것만 알았지 법전스님인 줄은 몰랐습니다. 72년은 법전스님이 막 불사를 시작하던 해였고, 수도암은 퇴락한 조그만 암자에 불과했습니다. 법전스님은 수도암에 15년간 주석하면서 가람을 중수하고 선원을 복원하셨습니다(사진 1). 

 

 

사진 1. 수도암 전경.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수백 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絶景입니다. 1,000m 고지에 이처럼 평평하고 넓게 트인 명당도 드물 것입니다. 도선국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곳에 서면 기쁨에 겨워 춤을 추고 싶어집니다.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께서 바라보는 정면에 높이 솟은 저 봉우리가 혹시 보이십니까? 아이폰의 줌 기능으로 조금 당겨 보겠습니다(줌 기능으로 당기면 화질은 떨어집니다). 

자, 이제 혹시 눈치채셨는지요. 그렇습니다.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저 봉우리는 가야산의 주봉인 우두봉입니다. 우두봉(상왕봉)을 스님들은 보통 연화봉이라고 부르는데 해발 1,430m입니다.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연화봉을 바라보면 전율감마저 느낍니다(사진 2).

 

 

사진 2. 가야산 정상(연화봉).

 

 

대적광전 바로 옆에 수도선원이 있습니다. 선원을 복원한 법전스님은 30대 초반에 성전암에서 성철스님(1912-1993)을 모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성철스님은 제자들에게 늘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법전스님과 함께 공부한 학인들 가운데 끝까지 출가생활을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아주 상근기나 나와 같은 하근기만 남고, 중간 근기는 전부 마을 집으로 갔다.” 겸손의 말씀이긴 하지만 어느 분야든 아주 상근기와 하근기만 남고 중근기는  떠나가게 마련입니다. 한세상 살아갈 때 운運도 따라야 하지만 둔하고 근기가 있어야 성공하는 법입니다. 지금도 “내가 혹시 너무 똑똑한 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는 잣대로 삼는 말씀입니다. 

 

 

 

사진 3. 성철스님과 법전스님(해인사 백련암 염화실 앞).

 

. 

법전스님은 6년 결사를 맺으면서 하루에 나무 한 짐하고, 한 시간씩 밭을 매게 했습니다. 스님은 쌓아놓은 수천 개의 장작 가운데 단 한 개라도 튀어나오면 다 밀어버렸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처음부터 다시 깐충하게 쌓아올렸다고 합니다. 단순한 작업을 정성을 다해 반복함으로써 근심 걱정을 벗어나 평정심을 찾은 걸까요(사진 3).

 

수도암에는 재래식 해우소가 있습니다. 앞 문짝도 없고, 변기 아래가 허공으로 확 트여 있습니다. 겨울에 여기에 앉아 볼일을 볼라치면 잡생각 많던 마음도 시린 엉덩이 때문에 단순해지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너무 안락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잡생각이 많아져서 불행한지도 모릅니다. 

 

변기 아래가 탁 트여 있는 것을 보노라면 풍류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아래가 훤히 트여 있으니 바람이 잘 통하지 않겠어요. 바람이 잘 통하는 측간이야말로 불풍류처야풍류不風流處也風流입니다. 이 선어禪語는 불가佛家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말입니다. 『벽암록』 제67칙의 착어著語를 비롯해서 여러 문헌에 용례가 보이지만 오늘은 『오등회원』의 글을 인용해 보 겠습니다.

 

꿋꿋한 기운이 일어날 때는 거기에 기세를 더하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은 곳에 또한 바람이 통하게 한다.(주1)

 

‘불풍류처야풍류’란 말 그대로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곳에 바람을 통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풍류가 없는 곳에 오히려 풍류가 있을 수 있고 묘미가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읽을 경우 풍류는 인간의 내면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도 질병도 상처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면 바람이 잘 통하는 상태, 즉 풍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도리는 평범한 일상도 풍류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측간에서도 풍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사진 4. 수도암 화장실의 안과 밖.

 

 

당나라의 유명한 승려 임제(?-867)는 불도佛道란 애써 공부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저 평상대로 아무 일 없는 것이 불도이며, 똥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서 쉬는 가운데 불도가 있다고 말합니다.(주2)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도 바람의 소식을 듣는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불풍류처야풍류’입니다. 

 

임제보다 한 세대 뒤의 운문(864-949)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운문은 부처는 마른 똥 작대기라고까지 말합니다.(주3) 똥 작대기란 용변 후 화장지 대용으로 쓰던 둥근 막대기를 말합니다. 도道란 똥오줌을 누는 데 있고, 부처는 마른 똥 작대기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이 대담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임제나 운문은 스스로의 사색을 통해 그렇게 단호하게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사색을 통하여 얻은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제나 운문이 하는 말에는 활기가 넘칩니다. 우리가 진정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그 소재를 현실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비근卑近한 데서 도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불도에 내면의 깊이를 더해 주고 범부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하나를 더해 줍니다. 

 

 임제나 운문처럼 비근한 데서 도를 구하는 정신은 중국 정신사의 오랜 전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장자(B.C. 369?-B.C.286?)가 큰 도리는 똥오줌에도 있다고 단언했습니다(사진 4). 

장자는 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동곽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는 있지 않는 곳이 없다. 땅강아지와 개미에게도 도는 있다. 강아지풀과 논에서 자라는 피에도 있고, 기왓장과 벽돌에도 있다. 나아가 도는 똥오줌 속에도 있다.”(주4)

 

도가 땅강아지나 개미는 물론 강아지풀과 피에도 있고 심지어 기왓장이나 벽돌 나아가 똥오줌 속에도 있다는 단호한 표현은 장자가 얼마나 깊게 사색했는지 그 깊이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런 표현에는 어떤 상식이나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천재의 생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사진 5. 인현왕후길.

 

 

이처럼 기원전 4세기경의 장자로부터 9세기의 임제, 10세기의 운문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신문화사의 대가들이 측간의 풍류를 노래했지만, 측간은 역시 냄새나는 곳입니다. 최근까지도 측간은 일상 공간에 둘 수 없었으므로, 대부분 집 옆의 후미진 곳에 마련되었습니다. 그래서 ‘뒷간 측厠’ 자를 사용했습니다. 안채에서 떨어져 있는 측간은 나무나 풀숲에 가려져 있어 어둑어둑한 그늘에서 생각에 잠기기 좋은 곳입니다. 빗방울 소리도 들리고 벌레 소리, 새 소리도 잘 들리는 곳이라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측간에서 생기 넘치는 사색에 잠겼습니다. 송나라의 대문호 구양수가(1007-1072)가 자신은 많은 작품을 마상馬上, 침상枕上, 측상廁上의 삼상三上에서 썼다(주5)는 말을 했습니다. 마상과 침상이 생각하기 좋은 장소라는 것이야 누구나 다 아는 바이지만 측간을 그런 장소와 나란히 열거한 것은 참으로 정직하면서도 비범한 말입니다.  

 

 

 

사진 6. 점심 식사

 

 

측간에 대해서 학자들은 불결하다고 생각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료를 찾아보면 측간의 풍류는 의외로 매우 광대하고 심오해서 인류 정 신사의 원천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는 바로 그 측간에서 오줌을 누고 수도암을 떠납니다.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올라온 수도암에서 1시간도 채 머물지 못하고 내려옵니다. 수도암에서 청암사 쪽으로 내려가는 8km의 인 현왕후길(사진 5)을 걷기로 했으니까요. 길은 평탄하고, 낙엽은 수북하게 쌓여 있고, 햇볕은 따뜻하고, 마음은 고요합니다. 

1시간쯤 걸어가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습니다(사진 6).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음식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먹는 방법입니다. 친구들과 땀 흘리며 산행한 후에 함께 먹는 점심은 그 자체로 진수성찬입니다. 배고픔은 신성한 감각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 점심입니다.

 

점심을 먹고 걸어가는 오솔길 역시 평화롭고 따스합니다. 그 다음에는 내리막 계단이 무려 2.7km나 이어집니다. 계단 하나가 꼭 두 걸음씩 걷도록 되어 있어서 피로도가 가중됩니다. 끝없는 급경사를 계속 툭툭 내려가노라면 골반과 무릎은 물론 엄지발톱까지 다 아픕니다. 

호젓한 초겨울 산길은 아름답기 그지없어 마음속에 긴 울림을 남겨 놓습니다. 측간의 사색처럼.

 

 

<각주>

(주1)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제20, “上堂 拈拄杖曰 未入山僧手中 萬法宛然 旣入山僧手中 復有何事 良久曰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卓拄杖一下”

(주2) 『임제록臨濟錄』, 시중示衆, “師示衆云 道流 佛法無用功處 祇是平常無事 屙屎送尿 著衣喫飯 困來卽臥 愚人笑我 智乃知焉 古人云 向外作工夫 總是癡頑漢”

(주3) 『무문관無門關』, 제21칙, 운문시궐雲門屎橛, “雲門因僧問 如何是佛? 門云 乾屎橛”

(주4) 『장자莊子』, 외편外篇·지북유知北游, 東郭子問於莊子曰: “所謂道, 惡乎在?” 莊子曰: “無所不在.” 東郭子 曰: “期而後可.” 莊子曰: “在螻蟻.” 曰: “何其下邪?” 曰: “在稊稗.” 曰: “何其愈下邪?” 曰: “在瓦甓.” 曰: “何其愈甚邪?” 曰: “在屎溺.”

(주5) 구양수歐陽修, 『귀전록歸田錄』, “余平生所作文章, 多在三上, 乃馬上 枕上 廁上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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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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