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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청말 사상계의 혜성 중국 전통사상의 중심인 ‘인仁’을 불교적 사유로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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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1 년 11 월 [통권 제103호]  /     /  작성일21-11-03 22:03  /   조회3,09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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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11 / 담사동譚嗣同 1866-1898 ① 

 

“힘 있는 서양을 배우자.”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 중국을 근대화시키려는 청말 근대화 운동은 당시의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조치였다. 서학동점西學東漸에 대항하여 “힘 있는 서양을 배우자”는 중국의 독자적인 노력은 1)과학·기술, 2)정치, 3)문화라는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고, 그것은 역사적으로 양무운동, 무술변법, 신해혁명, 5·4운동의 형태로 나타났다.

 

담사동譚嗣同(1866-1898)은 강유위(1858-1927), 엄복(1853-1921), 양계초(1873-1927) 등과 함께 정치를 개혁하려 시도한 변법파變法派의 대표적인 이론가이다. 담사동 등 무술변법파들은 서양사상, 특히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동양사상과 융합하여 그를 기반으로 개혁을 통해 정치체제를 변혁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외적인 면에서 서양의 정치·경제제도를 받아들이고 응용할 뿐, 내적인 면에서 민족정신을 지탱하는 전통사상은 그대로 고수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것은 중국의 전통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정신에 해당한다.

 

 


담사동(1866-1898)

 

 이후의 5·4운동 시기에 이르러서는 서양과 동양문화가 물과 불처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공자가 제창한 유학을 타도하자[打倒孔家店].”는 구호가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되었고, 진독수陳獨秀(1879-1942), 호적胡適(1891-1962) 등은 전통, 즉 낡은 유학의 도덕에 대한 철저한 타도와 사회의 전반적인 서구화를 주장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사상계는 전통문화의 근본적인 단절을 주장하는 진보파(서화파)와 전통문화의 옹호를 주장하는 보수파(국수파)로 첨예하게 나누어지게 된다. 진보파는 초기 마르크스주의자인 진독수陳獨秀, 이대조李大釗, 전반서화파인 호적胡適, 과학파인 정문강丁文江, 그 외 자유주의, 무정부주의의 인물이 해당되고, 보수파는 강유위康有爲, 엄복嚴復 등의 복고주의파와 두아천杜亞泉, 양계초梁啓超, 양수명梁潄溟, 장군매張君勱 등의 동방문화파가 해당된다.

 

유식·화엄불교의 사회정치적 실천

 

담사동은 청말 정치가·사상가로서, 자는 복생復生이고, 호는 장비壯飛, 호북성에서 출생하였다. 청일전쟁 후 새로운 학문을 제창하고, 강유위의 영향을 받아 양계초와 함께 정치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는 1897년 대표적인 철학서인 『인학仁學』을 저술하여 정치비판 및 사회혁명의 학문적 근거를 삼았는데, 이 책은 중체서용의 정신이 잘 드러난 것이었다. 이후 그는 호남성에서 발행된 최초의 신문인 『상학신보湘學新報』의 편집장이 되었고, 또 근대화 운동 촉진을 위해 ‘남학회南學會’를 조직하였다. 1898년 입헌군주제를 주창한 ‘보국회保國會’의 한 사람으로서 무술변법혁명에 참가하고 서태후의 유폐를 계획하였으나, 원세개袁世凱 등 보수파의 쿠데타로 실패하고 만 33세의 나이로 처형되었다.

 

담사동은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사실 사상가로서의 활동은 4년 동안에 불과하였지만, 그의 주저인 『인학』을 통해 볼 때 그의 중요성은 대단히 컸다. 담사동의 주저 『인학』은 초고 단계에서 당시 변법파 인사들인 양계초, 당재상唐才常, 장태염章太炎이 회람하였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양계초는 『인학』을 일독한 뒤 “단지 상권만을 읽어 보았지만, 이미 중국의 구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칭찬하고, 담사동을 ‘청말 사상계의 혜성’이라고까지 불렀다. 담사동의 이러한 독창적인 사상은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불교적 측면에서 보면 양문회楊文會(1837-1911)와의 관계 속에서 여래장과 유식사상의 전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양계초는 담사동 철학을 “불교 유식종, 화엄종을 연구하여 사상의 기초로 삼았고, 이를 과학으로 통하게 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양문회의 제자인 구양경무 역시 “담사동은 화엄에 뛰어났다.”라고 평가하였고, 담사동을 양문회의 문인들 중 최고로 평가하고 추숭하였다. 따라서 담사동의 『인학』을 화엄불교, 법상유식불교, 선불교와의 관계가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불교 교학으로는 본래 융합이 불가능한 유식법상과 『대승기신론』을 융합한 양문회의 시도가 담사동 철학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유학·불교·기독교의 결합: ‘인仁’ 사상

 

담사동 『인학』의 내용은 정치적으로는 한민족의 자치와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정체를 설립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자원 개발과 상공업의 발전을 기반으로 국제 경쟁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을 호소하는 것이다. 윤리적으로는 봉건 도덕을 지탱하는 유학의 삼강오상 윤리 대신에 남녀평등과 만민우애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공자의 종교[孔子敎]’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립하는 일체를 망라하여 하나로 결합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참으로 공자의 진의인가와 관계없이, 담사동 철학에서는 중국 전통사상의 중심 개념인 ‘인仁’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러한 의도하에 그는 자신의 저작을 『인학』이라고 명명하고, ‘인’ 개념에 보편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중국 청말의 사상가이자 정치개혁자로 활동한 담사동의 모습

 

심지어 담사동은 중국 전통사상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仁’ 개념을 서구 과학에서 빛을 전달하는 매체라고 본 ‘에테르ether’의 통작용이라고 해석하였다. 

 

“온갖 법계法界, 허공계, 중생계, 지극히 크고 지극히 정미한 데까지 교착하지 않고 관통하여 흘러넘치지 않고 완비하여 충만하지 않는 곳이 없는 하나의 존재가 있다. 눈으로 그 형태를 볼 수 없고, 귀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입과 귀로 그 냄새와 맛을 맡을 수 없는데, 무어라 이름할 수가 없다. 그 이름을 ‘에테르’라고 한다. 그것이 공용으로 나타난 것을 공자는 ‘인仁’이라고 부르고, ‘근원元’이라고 하며, ‘본성[性]’이라고 부른다. 묵자는 ‘모두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兼愛]’이라고 부른다. 부처는 ‘성해性海’라고 하고 ‘자비’라고 부른다. 예수는 ‘영혼’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한다’, ‘원수를 친구같이 본다’라고 한다. 법계가 여기에서 생겨나고, 허공이 여기에서 세워지며, 중생이 여기에서부터 나온다.”

 

담사동의 기본 전제는 그곳에서부터 “온갖 법계, 허공계, 중생계”가 나오는 ‘에테르[以太]’가 본체, 실체에 해당하고, 그 본체의 공용, 작용이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인’이라는 것이다. 이 인仁을 묵자의 겸애, 부처의 자비, 예수의 영혼, 사랑으로 대치해도 좋다고 보아 유학·기독교·불교의 삼교합일의 논조를 나타냈다. 이 에테르에 대한 개념은 19C 초 서양과학에서 빛의 파동설과 전자기장 이론에 따라 빛과 전자장을 전달하는 매질로 가정되었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송명 유학자들이 주장한 ‘만물일체의 인仁’ 사상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보편적, 정치적 평등 이론: ‘통通’

 

그런데 이때 인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통하는 것[‘通’]이다. 이 통한다는 것이 만인의 보편적인 평등이라는 정치적 견해를 주장하기 위한 중요한 철학적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다른 사람과 내가 통하는 것[人我通]의 의미를 불교 경전에서 가져왔다. “인상人相, 아상我相이 없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담사동 철학사상은 기본적으로 이 4가지 ‘인仁 - 통通’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그는 막힌 것[‘塞=不仁’]에서 통하는 것[‘通=仁’]으로 전환시켜 일반화하였고, 그 내용을 개개인의 심리적인 의지 소통에서 국가간의 외교 소통, 더욱이 자연계의 전기와 빛의 통과 현상, 우주 인력의 상호 작용까지 확대하여 인仁은 통작용으로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천지만물에까지 일관되고 있다. 

 

그리고 “통通의 형상은 평등하다.”라고 하여 보편적인 평등을 실현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이것은 송대 유학의 대표적 경전인 『이정유서二程遺書』에서 “의학서에서는 수족이 마비된 것을 불인不仁이라고 한다. 이것은 모습을 잘 표현한 것으로, 인은 천지만물을 일체로 여긴 것이므로 자기가 아닌 것이 없다. 자기라고 인정하면, 어디든 이르지 못하겠는가?”라고 하거나, 왕양명 『전습록』에도 “인은 천지만물을 일체로 여긴다.”라고 한 것을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담사동은 명말 청초 왕선산王船山의 학설도 인용하여 보강하였고, 청대 고증학의 성과를 계승한 측면도 있다고 평가된다.

 

 

 

담사동(뒷열 좌측에서 네번째)과 양계초(앞 줄 좌측 첫번째)

 

 

그러나 4가지 ‘통通’ 가운데 ‘다른 사람과 내가 통하는 것[人我通]’이 가장 주요하듯, 담사동 철학사상의 기초는 불교이다. 불교는 ‘다른 사람[人]’과 ‘나[我]’의 구별을 없앨 것을 제창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의 차별을 반대하여 계급제도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담사동은 “인의 근원이 될 수 있고 무無의 신비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부처, 공자, 예수 세 사람이 있다.”라는 삼교일치적 언급을 하면서도, “부처는 공자와 예수를 제어할 수 있고, 공자와 예수는 인한 점에서는 같지만 인을 행하는 방법이 다르다.”라고 하여 불교의 위치를 유학과 기독교보다 확실히 위에 두었다. 또한 그는 “인仁은 천지만물의 근원이므로, 유심唯心이라고 하고 유식唯識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여 인 개념의 불교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담사동의 이러한 인 개념은 유학뿐 아니라 불교의 ‘불佛’ 개념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징관澄觀의 『대화엄경책략大華嚴經策略』에서는 부처의 명칭인 ‘석가모니釋迦牟尼’에서 석가를 능인能仁으로, 모니牟尼를 적연寂然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부처는 고요한[‘寂黙’] 동시에 인을 행하는[‘能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담사동이 “인은 고요하며 움직이지 않고,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의 모든 일에 통하는 것이다.”라고 한 언급은 인을 고요함[寂然]과 인을 행하는[能仁] 의미를 지닌 불교적 개념으로 해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담사동은 인仁에 유학적 사유와 불교적 사유를 결합하여 해석하고 있고, 이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인에 대한 학문은 불교 서적으로는 『화엄경』과 심종心宗, 상종相宗의 책에 통한다. 서양 서적으로는 『신약성서』와 수학, 격치格致, 사회학 서적에 통한다. 중국 서적으로는 『주역』, 『춘추공양전』, 『논어』, 『예기』, 『맹자』, 『장자』, 『묵자』, 『사기』 및 도연명, 주무숙, 장횡거, 육자정, 왕양명, 왕선산, 황이주의 책에 통한다.” 

결국 자신의 학문의 근간이 된 것은 유학에 해당하는 공자, 맹자 및 주무숙, 장횡거, 육자정, 왕양명, 왕선산, 황이주의 철학이고, 불교로는 화엄과 선불교, 유식불교를 망라하고 있다. 그 두 축이 중심이 된 상태에서 서양의 기독교, 수학, 인식론, 사회학의 지식과 중국 전통의 도가사상 등을 보충적으로 활용하여 사회정치적 개혁사상을 정립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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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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