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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 방일, 혼침, 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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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1 년 11 월 [통권 제103호]  /     /  작성일21-11-03 16:02  /   조회40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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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103 / 대수번뇌심소② 

 

 

삶의 근본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판단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때는 마음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내 마음이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인다. 또 어떤 때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우울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일상적 삶에서 겪는 이런 상태는 좌선을 하거나 수행을 할 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래서 대혜스님은 “좌선할 때는 혼침昏沈에 빠지거나 도거掉擧에 휩쓸리지 말라. 혼침과 도거는 성현이 경계한 바이다[先聖所訶].”라고 했다. 마음이 침울하게 가라앉는 현상과 반대로 안정되지 못하고 들뜬 상태는 성현들이 경계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대혜어록』의 지적처럼 혼침과 도거는 수행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소로 설명된다. 보통 혼침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의식이 명료하지 않거나 침을 흘리며 꾸벅꾸벅 조는 등의 증상을 말한다. 반대로 도거는 온갖 잡생각으로 마음이 들떠 화두들기나 수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그런데 8가지 대수번뇌심소에서도 혼침과 도거를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방일과 함께 혼침과 도거라는 세 가지 번뇌심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방일放逸, 제멋대로 움직이며 통제되지 않는 마음 

 

방일放逸(pramāda)은 대수번뇌심소의 세 번째 항목이다. 경전에는 방일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선뜻 의미가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방일放逸이라는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내려놓다’, ‘달아나다’라는 의미로 조합되어 있다. 즉 마음을 잘 제어하지 못하고 놓쳐버림으로 인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비달마품류족론』에서는 방일에 대해 악법惡法을 끊고 선법善法을 얻음에 있어 ‘닦지 않는 마음[不修]’, ‘익히지 않는 마음[不習]’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행은 실천하고 악행은 삼가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놓쳐버려서 마음이 제멋대로 떠도는 것이 방일이라는 것이다.

 

『성유식론』에서도 방일에 대해 “잡염품을 방지할 수 없거나 청정품을 닦을 수 없고 방탕하게 흐르는 것이 본성[縱蕩爲性]”이라고 했다. 번뇌의 대상에 물드는 것을 막지 못하고, 청정행을 닦지 못하여 마음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이 방일의 성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방일하게 되면 ‘나쁜 일은 늘어나고 좋은 일은 훼손되는 상황[增惡損善]’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다만 방일이라는 심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게으름을 의미하는 해태와 삼독[탐진치]으로 인해 번뇌에 오염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깨끗한 마음을 닦지 못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방일이라고 한다고 했다.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마음을 다잡고, 행동을 바르게 익혀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방일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법구경』에서는 “계를 감로甘露의 길이라고 하고 방일放逸을 죽음의 길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계戒를 잘 지키는 것은 감로라고 했고, 방일은 죽음이라고 비유했다. 여기서 감로甘露는 단 이슬이라는 뜻이지만 또 다른 뜻은 불사不死를 의미한다. 따라서 계행을 잘 지키는 삶은 죽지 않는 불사의 길이고, 방일은 곧 죽음의 길이라는 의미로 대비된다. 불사의 길로 설명하는 계행戒行은 악행을 범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이다. 반면 방일은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함으로 인해 악행으로 나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혼침, 마음이 가라앉아 명료한 인식을 가로막는 번뇌

 

혼침惛沈(styāna)은 마음을 어둡고 답답하게 만드는 작용을 말한다. 『아비달마법온족론』에 따르면 혼침이란 “몸이 무거운 성질[身重性]과 마음이 무거운 성질[心重性],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질[不堪任性], 마음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질[心無堪任性],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昏沈性],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心惛沈性]”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감임堪任’의 사전적 의미는 ‘감당하다’는 뜻이지만 불교적 의미는 마음이 경쾌하고 평온하여 유연한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가볍고 평온하면 자연히 기분 나쁜 상황 등 역경계를 만나도 잘 감당해 낼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한다. 따라서 혼침이란 몸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침울하고 혼미하여 대상을 잘 분별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성유식론』에서도 혼침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감당하지 못함[無堪任]을 본성으로 하고, 경안과 위빠사나를 장애하는 작용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혼침이 초래하는 장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몸과 마음이 가볍고 안정된 경안을 방해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식이 명료하게 깨어 사물을 바르게 통찰하는 관觀(Vipaśyanā)를 방해하는 것이다.

 

좌선 등의 수행을 할 때 혼침에 빠지면 침을 흘리며 졸거나, 마음이 침울해져 답답한 상태가 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혼침심소가 별도의 체성이 있는지 아니면 치癡심소의 일부인지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소개되고 있다. 첫째, 마음이 혼미하고 무겁게 가라앉는 것[惛昧沈重]은 대상을 명료히 인식하지 못하는 치癡에 해당하므로 혼침도 치의 일부라는 설이다. 반면 혼침의 특징은 졸음[睡眠]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마음이 ‘어둡고 무거운 것[瞢重]’은 독립적 속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치심소는 대상을 명료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지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혼침에 떨어져 마음이 혼미하고 무거우면 『성유식론』의 지적처럼 명료한 통찰지인 관觀을 방해하게 된다. 따라서 혼침에 떨어지면 좌선할 때는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꾸벅꾸벅 졸게 되고, 화두를 들 때는 화두를 놓치고 인식이 흐릿해진다. 이런 혼침이 일상에서 나타나면 마음이 명석하지 못해 일의 선후를 놓치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못하는 등 실수가 잦아질 수밖에 없다.

 

도거掉擧, 마음이 들떠 안정되지 못하는 번뇌

 

혼침과 반대되는 번뇌심소가 도거掉擧(auddhatya)이다. 도거掉擧라는 낱말은 ‘흔들리고 들뜨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마음이 들떠서 어수선하고, 차분하지 못한 심리작용을 말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도거란 “마음이 대상을 만날 때 고요하게 머물지 못하게 하는 성질이다[令心於境 不寂靜為性]. 행사行捨와 지止(samatha)를 장애하는 것이 작용이다[能障行捨 奢摩他為業].”라고 정의하고 있다.

 

도거란 마음이 대상에 현혹되어 고요하게 머물지 못하고 들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테면 도거에 빠지면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수식관을 할 때는 숫자를 놓치고, 화두를 들고 수행할 때는 화두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빠져 마음이 허공을 떠돌게 된다. 따라서 도거는 평정심을 의미하는 행사行捨를 방해하여 평정심을 잃고, 마음을 한 곳에 몰입하는 지止를 방해하여 마음이 여기저기 떠돌게 된다.

 

『성유식론』에서는 도거에 대해 “탐심소의 한 부분으로 포함된다.”라고 했다. 도거에서 탐함의 대상은 과거 자신이 경험한 기억에 대한 것들이다. 즉 도거란 “과거 즐거웠던 일을 생각함에 의해 생겨난다[憶昔樂事生].”는 것이다. 비록 몸은 선방에 앉아 있더라도 마음은 과거사의 회상에 젖어 지나간 일을 추억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등으로 인해 마음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상태를 말한다.

 

이상 세 가지 번뇌심소는 모두 수행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방일이란 마음을 잘 챙기지 못해서 선을 실천하고 악행을 막지 못하는 것이며, 혼침은 마음이 무겁게 쳐지거나 가라앉아 명료한 인식이 없는 것이며, 도거는 이런저런 기억에 사로잡혀 마음이 들떠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일하지 않는 것은 의지가 굳건하여 계행을 잘 지키는 것이고, 혼침에 빠지지 않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맑게 깨어 있는 것이고, 도거에 빠지지 않는 것은 마음이 고요히 안주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비단 수행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일상의 삶에서도 이와 같이 마음을 잘 통제하고, 마음이 명료하게 깨어 있고, 고요히 머물러야 삶이 평화롭다.

 

 

 

이경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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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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