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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대종사 법계 품서식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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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1 년 11 월 [통권 제103호]  /     /  작성일21-11-03 10:38  /   조회3,85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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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제가 총무원에서 기별이 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백련암 문중에 인물이 많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막상 살펴보니 그만한 역할을 하는 스님이 없네요. 총무원에서 대종사 법계 특별전형을 시행할 예정인데 사제들이 원택스님에게 권유해 봄이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대종사 법계를 아무나 누릴 수 있나? 성철 큰스님께서는 법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법상에 올라 떠들기라도 하면 내가 그 놈의 다리를 성하게 놔둘 줄 아나!?” 하시며 호통치시던 장면이 떠올라 심드렁하게 듣고 넘겼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문중의 원로스님들 중에서 한 스님씩 추천을 받아 해인사 산중회의를 거쳐 최종 추천한다.”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진 3. 겁외사 성철스님기념관 중앙에 설치된 성철 큰스님 설법상 앞에 선 원택스님.  

 

돌아보니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제 눈썹에도 흰털이 나기 시작했고, 사제들의 권유로 백련암에서는 제가 대종사 법계 특별전형에 서류를 내게 되었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자필 유언장 등의 서류와 더불어 대종사 품수에 맞는 공적 사항을 제출하라는 항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엇을 써야 하나 한나절 고민하다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여덟 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그중 세 가지만 간단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 한글 법어의 탄생에 관한 일입니다. 1981년 1월 성철 큰스님께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되셨습니다. 마침 그때는 10·27 법난 직후로 절집 민심이 흉흉했었는데, 큰스님께서 큰 소임을 맡게 되신 겁니다. 큰스님은 서울에서 열리는 취임식에는 가지 않으시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문으로 국민들에게 의미심장한 화두를 주셨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4월 초파일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총무원장 스님께서 “종정 예하께서 초파일 법어만은 꼭 내려주셔야 합니다.”라는 간청을 해 오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종정 고깔만 쓰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하더니만 초파일 법어는 또 무엇인고?” 하시면서 혀를 끌끌 차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부르시더니만 “자! 이것이 초파일 법어다.” 하시면서 원고를 주셨는데, 얼른 보니 상당법어上堂法語처럼 한문투성이의 문장이었습니다. 큰스님께 박살이 나든지 말든지 한 말씀 드렸습니다. 

 

“큰스님! 종정스님으로서 불자만이 아니라 모든 배달민족들에게 부처님을 대신해서 마음을 충만시킬 말씀을 하셔야 합니다. 이제 공인이 되셨으니 쉬운 한글 법어를 내려주셔야 합니다.” 

 

 

 

 

 

사진 1. ‘자기를 바로 봅시다’ 한글 친필 원고 중 일부(1982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행여 벼락이라도 치실까 덜덜 떨고 있는데 뜻밖에도 “그래?! 그라면 내가 다시 써보지!”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부르셔서 가보니, “이만하면 됐나? 한 번 봐라!” 하시는데 반은 한글, 반은 한문 투여서 한 번 더 용기를 냈습니다. “처음보다 훨씬 이해하기는 쉽지만 한글체로 완전히 바꾸어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다시 여쭈었습니다. “고놈 참 사람 힘들게 하네. 이놈아, 평생 써온 한문체를 버리고 한글체로 쓰려니 뭐가 영 허전하단 말이다. 어디 다시 생각해 보자.” 그렇게 하여 다음 날 아침 세 번째로 받아 든 법어는 완전한 한글체였습니다. 곰새끼라며 호통만 치시던 큰스님께서 초파일 법어와 신년 법어를 한글체로 내려주시니 모든 국민들이 반가워하였고, 저로서는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성철스님법어집과 선림고경총서의 발간입니다. 성철 큰스님은 1978부터 3년간 『선문정로禪門正路』 원고를 준비해 오시다가 종정이 되신 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보조국사의 돈오점수론을 비판하고 돈오돈수론을 주창하는 것이었으니 불교학계의 놀라움과 당황함은 필설로 다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불교학계는 20여 년간 뜨거운 돈점논쟁頓漸論爭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간혹 노학자님들을 뵈면 “그때의 논쟁이야말로 불교학계의 성찬이자 행운”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돈점논쟁이 학계를 뜨겁게 달구면서 빈승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학술 발표장에 가보면 점수파 교수님들은 맹공을 퍼붓기 일쑤였는데, 『선문정로』에 대해 발표한 분들의 답변은 횡설수설하여 제자 된 도리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큰스님,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은 해인총림 담 안에서만 맴돌고 있습니다. 돈오돈수를 설파하시려면 인재양성을 하셔야겠습니다.” 안마를 받고 계시던 큰스님께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앉으시며 오른손으로 제 왼쪽 뺨을 갈기시더니 “니 지금 인재 양성이라 캤나? 키울 인재가 없는데 나보고 우짜란 말이고! 다 머저리 곰 같은 새끼만 우글거리니 나도 별수 없이 지내는기라. 이놈아! 꼴도 보기 싫다! 어서 나가라” 하시면서 또 뺨을 치셨습니다. 

 

 


사진 2. 선림고경총서 및 법어집 완간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계신 원택스님(1993년 9월 21일). 

 

 일주일이 지나고 스님께서 찾으셔서 용기를 내어 또 말씀을 올렸습니다. “인재양성이 힘드시다면 역대 조사스님들의 어록 중에서 돈오돈수사상을 주창한 어록들을 선별, 번역해 알리면 큰스님 사상의 울타리가 되어 지금보다는 원군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래,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은 방법이겠네!”라고 응수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계기가 되어 그 후 10여 년 동안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상기병을 다스릴 때 5~6년 동안 녹취해 둔 백일법문 녹취록을 정리하여 ‘성철스님법어집’ 11권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9월 21일,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완간 회향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정 예하께서는 그 해 11월 4일, 열반에 드셨습니다.

 

셋째, 성철스님기념관 조성입니다. 2001년 3월, 불필스님께서는 큰스님 생가터에 4~5년 간 심혈을 기울여 ‘겁외사劫外寺’와 큰스님 부친의 호를 딴 ‘율은고거栗隱古居’를 복원하였습니다. 이 불사를 인연으로 당시 중앙일보 이헌익 국장님과 오병상 기자님의 청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를 중앙일보에 6개월간 연재하게 되었고, 이후 김영사에서 1, 2권의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습니다. 그때 들어온 인세 2억 3천만 원으로 겁외사 인근의 부지를 구입해 두었는데, 그 자리에 우연히 여러 인연이 모여 2015년 4월에 ‘성철스님기념관’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공적 서류를 갖추어 2019년 2월 15일에 대한불교조계종 법계위원장 앞으로 관련 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가을쯤에 소식이 있으리라 했는데 해를 넘기고 2020년 1월 8일 12분의 대종사가 발표되었는데 소납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해인사 주지스님과 산중 어른스님들이 합심하여 도와주셔서 2020년 7월 23일 대종사 법계를 종회에서, 9월 25일 원로회의에서 대종사 법계 특별전형을 심의하여 만장일치로 20여 명의 스님들과 함께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대종사 법계 품서식이 연기되어 오다가 오는 10월 21일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전 마당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소납으로서는 백련암으로 출가한 지 50년이 되는 해에 이루어진 경사가 되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백련암을 지켜주신 사부대중들과 여러 신도님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행자의 삶에서 대종사의 품계는 어찌 보면 단지 이름일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구도 생활은 물론이고 큰스님의 뜻을 받드는 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더욱 정진해 나갈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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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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