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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서양철학과 비교 불교 우수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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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1 년 6 월 [통권 제98호]  /     /  작성일21-06-04 16:31  /   조회3,57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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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6 | 양계초 하下

 

근대는 서양 자본주의가 침투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이 이후 중국 근대불교는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둔 경제 제도이므로, 무소유, 만물의 무상함과 상호 의존을 주장하는 불교적 가치와 정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침투

 

양계초(梁啓超, 1873-1929)는 불교사상가이면서 경제 사상 및 자본주의에 대해 평생 끊임없는 모색하였던 사상가이었고, 그러한 과정은 크게 네 단계의 변화를 거쳤다. 첫째, 양계초는 처음에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에 기반을 둔 영국을 성공 모델로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려 하였다. 자유주의 경제에 반대하는 보호무역론을 ‘나라를 병들게 하는 방법’이라고 비판하고, 고전학파의 자유무역론을 높이 평가하였다. 

 

 

사진1. 양계초

 

 

둘째, 무술변법의 실패와 일본 망명 후 양계초는 고전학파의 자유주의 경제론을 비판하고 역사학파의 관점을 따르는 것으로 방향 전환하였다. 그는 아직 공업화가 안 된 중국은 보호무역 정책으로 중국의 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유 경쟁이 과도하면 국가가 병들게 되며, 자유주의의 불간섭주의는 선진국과 후진국,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모순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고전학파에서 역사학파로 시각이 바뀐 양계초는 유럽의 경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들어 ‘민족 제국주의’ 시대에 진입하였다고 보았다. 이러한 민족 제국주의 시대에 역사학파의 국민경제학설과 국가유기체설이 국민국가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고 보고 이를 제창하였다. 넷째, 1차세계대전 후에 양계초는 유럽의 국가주의를 병적인 상태라고 비판하였다. 국민 국가를 지탱하는 경쟁주의, 자본주의의 대체물로서 중국 고유의 기초인 민본주의, 상호부조 정신, 소농제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양계초는 이런 오랜 모색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부정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전통적 가치관으로의 복귀이고, 근본적으로 불교의 ‘무소유’, ‘평등’, 만물의 상호의존 사상과 연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 철학 소개  

 

양계초는 칸트를 소개하는 글의 제목을 ‘근대 제일의 철학자 칸트’라고 하고, 인류 역사에서 칸트를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와 함께 4대 성인으로까지 꼽는 데 찬성할 정도로 높이 평가하였다. “직관주의, 쾌락주의가 온 세상에 유행하고 방자하고 음탕한 악덕이 범람 횡행하던 시기에, 엄격한 칸트가 나와 양지良知로 본성을 말하고 의무로 윤리를 말한 뒤에 광란을 가라앉혀 만인들이 나아갈 바를 알게 하였다.”라고 하면서 칸트는 실로 백세의 스승이고, 암흑시대의 구세주이다라고 격찬하였다. 칸트에 대한 이와 같은 높은 평가는 칸트 시대의 상황이 양계초가 살았던 중국 근대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보고, 당시 칸트의 학문적 작업이 양계초 자신이 살았던 시기에도 꼭 필요하다고 본 것과 관련된다. 

 

이 때 양계초가 보는 칸트 철학은 불교, 특히 유식학과 일치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근대 중국은 유식학의 유행이 시대적 대세였고, 양계초 역시 이와 동일한 흐름에 함께 한 것이었다. 그는 칸트 철학이 유식학과 “서로를 인증할” 정도로 가깝다고 보고, 그 이유로 유식학이 아뢰야식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점을 지적하였다. 유식학에서 아라야식을 본식으로 보고 그 속의 종자계로부터 현상계의 모든 것이 생성되어 나온다고 보는 구도가 서양철학자 칸트의 물 자체와 현상계 구도라는 형태와 일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혜의 작용에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아, 순수 이성과 실천 이성을 명확하게 ‘순수한 성질의 지혜’, ‘실행의 지혜’로 나누어 부르면서, ‘자기 외의 사물 하에서 고찰하는 공덕’, ‘스스로 동작하여 일체의 업業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불교 용어를 활용하여 설명하였다. 

 

유식학으로 칸트 실천이성 해석

 

실천이성에 대한 양계초의 유식학적 해석은 특히 독창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계초가 단순한 사회사상가가 아니라 불교사상가임을 엿볼 수 있다. 양계초는 칸트의 본래적 자아·현상적 자아와 불교의 진여·무명를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는 현상들만을 접하게 되지만, 이성을 통해서는 궁극의 존재론적 실재, 즉 개개의 현상을 낳고 현상의 기체를 이루고 있는 실재하는 ‘물 자체(본체)’가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사물의 현상은 변화하는 것이고, 사물의 본질은 불변의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불변의 것이 바로 칸트의 물 자체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현상의 나’라는 경험적 자아와 자아 자체인 ‘본질의 나’가 구분된다. 이것이 양계초가 본 칸트의 ‘고등의 생명’이자 ‘본질’이고, ‘참 나[眞我]’이다. 바로 이 점에서 양계초는 칸트의 이성 주체를 불교의 ‘진아’ 이론과 연관시킬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사진2. 양계초 지음 <중국근삼백년학술사>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가 칸트가 말한 진아로서, 자유의 성질이 있다.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칸트가 말한 현상의 나로서, 불가피한 이치의 속박을 받으며 자유성이 없다. 불교에서는 내가 무시 이래 진여와 무명 두 가지가 성해性海의 장식 중에 합하여 있으면서 서로 훈습한다고 보았다. 범부는 무명으로 진여를 훈습하므로, 미혹한 지혜가 식이 된다. 도를 배운 사람은 진여로서 무명을 훈습하므로, 전식성지轉識成智한다.” 양계초는 불교의 진여· 무명 개념으로 칸트의 본래적 자아와 현상적 자아를 대비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중세 이래 신의 관념을 부정하고 실제적인 신의 역할을 인간 내면의 이성에 맡긴 칸트 철학과 애초에 초월적 신 개념 없이 인간 내면에서 구원의 힘을 보는 불교의 유사성에 근거를 둔 것이다. 특히 그가 <대승기신론>의 전통불교 방식보다 분석적, 과학적인 이성의 방법을 중시하는 유식학이 중세의 카톨릭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이성의 힘을 강조한 칸트 철학에 가깝다고 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유식학의 우위” 주장  

 

양계초는 칸트 학설이 불교에 가깝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에 못 미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칸트의 논의는 정치하고 이치를 다했으며 거의 불교와 가깝다. 한 단계 부족한 것은 불설에서는 이 진아가 실로 대아이고 일체의 중생이 모두 이 본체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고 분별상이 없다고 보는 데 대해, 칸트는 아직 이 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칸트가 본체를 모든 중생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불교에 비해 부족한 점이라고 보았다. 칸트가 한 일은 물자체와 현상을 나누고, 인간의 인식은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데 그칠 뿐임을 분명히 한 점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서양 전통에서는 큰 전환이지만, 유식학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당연한 말이다. 따라서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칸트가 물 자체와 현상, 본질적 자아와 현상적 자아로 구분한 것은 올바른 파악이지만 이러한 물 자체나 본질적 자아가 다른 물 자체나 다른 본질적 자아와 본래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은 이론적 결함이 될 수 있다. 세계 만유를 진여의 현현으로 보는 세계관을 칸트는 기본적으로 공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심과 진아

 

양계초는 모든 철학의 핵심은 도덕이며, 이 도덕이 인간의 자유 위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칸트의 입을 빌려 설명한다. “칸트는 내 평생의 행위는 모두 내 도덕상의 성질이 표현된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내 본성의 자유 여부를 알려면 현상론에 의거해서는 안 되고, 본성의 도덕론에 의거해야 한다.” 칸트 철학에서 이성의 본질은 자유이다. 인간이 실천적 행위에서 자기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파악한다는 것은 곧 행위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 즉 ‘자율적 존재’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계초는 칸트 철학의 핵심을 도덕의 근원과 물질 현상의 이분으로 파악하고, 도덕의 본원인 진아가 불교의 진여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도덕적 자율성은 자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활발한 자유란 무엇인가? 내가 선인이 되고자 하고 악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나 자신은 자유성과 부자유성 두 가지가 동시에 병존한다는 이치를 쉽게 알 수 있다.”

 

나아가 양계초는 칸트의 도덕의 근거가 양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데, 이 때의 양심은 유식학의 진아와 일치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양계초가 도덕의 근원으로서 칸트의 양심과 유식불교의 진아를 하나로 파악한 것은 칸트 철학의 중요한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의 양심의 실행이 의무인 것만큼이나 유식학의 진아를 따르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도덕적 실천의 요청이 된다. 이는 당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도덕을 제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적 가치 선양” 

 

양계초는 이렇게 서양 칸트 철학과 동양 유식학의 일치점을 주장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칸트철학이 불교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칸트의 논의는 거의 불교와 가깝다. 한 단계 부족한 것은 불설에서는 이 진아가 실로 대아이고 일체의 중생이 모두 이 체體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고 분별상이 없다고 보는 데 대해, 칸트는 아직 이 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계초는 유식학을 활용한 칸트 철학 이해를 통하여 서양 철학보다 동양 철학이 우수하다는 점을 은연중 언급함으로써 적어도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서양보다 동양이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다. 

 

한마디로 양계초는 전통사상에서 계승해야 할 부분이 불교라고 본 것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비유를 들며 그는 서양이라는 호랑이의 공격을 받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 정신이 바로 불교이다. 전통 철학의 대표주자인 주자학은 우주론과 심성론을 하나의 통일체적인 체계로 파악한다. 그런데 서양 과학의 도입으로 중국전통의 우주론이 깨져버린 당시 상황에서는, 우주론과 심성론을 하나로 보는 주자학이 설득력을 지닐 수 없었다. 따라서 양계초는 과학적 우주론이 없고 심성론 위주로 된 철학인 불교를 전통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동양의 가치를 구하고자 하였다. 더욱이 서양 자본주의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불교적 가치를 더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고 사실의 영역은 서양의 우위를 인정하지만, 가치의 영역에서는 중국의 우위를 견지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양계초의 의도였을 것이다. 따라서 사실과 가치의 구분, 과학의 영역과 정신의 영역의 구분은 양계초 사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였고, 칸트 철학을 통해 양계초는 이러한 구분에 타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동양의 우월성의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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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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