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사찰의 역사 문화 체계적으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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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 2021 년 2 월 [통권 제94호] / / 작성일21-02-05 11:12 / 조회4,403회 / 댓글0건본문
근대 불교사서2-『신증동국여지승람』「불우」조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 하편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사진 1)의 사찰과 「불우佛宇」조(사진 2)에 수록된 사찰과 암자 중 70여 곳의 사적(「여지승람사사사적(輿地勝覽寺社事蹟)」)들을 소개하고 있다. 팔도에서 이름난 절을 통해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남겨놓고자 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불교사학자 권상로(權相老, 1879-1965)의 『조선사찰전서朝鮮寺刹全書』 역시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표본으로 삼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지리지이다. 조선시대 왕명이나 관부官府에서 편찬된 사찰기록은 국가의 운영과 통치 자료로 편찬된 지리지의 주요 항목이다. 중앙집권과 국방강화를 위해서 지도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정보자료인 셈이다. 조선시대 사찰에 관한 사정을 알 수 있는 현전하는 최초의 기록은 1425년(세종 7)에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의 「불우佛宇」항목이다. 이어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사찰 기록, 1469년(예종 1)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의 승사僧寺 항목, 1530년(중종 25)에 완성되고 1531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우 항목, 『동국여지지』의 사찰 항목, 『여지도서』의 사찰 또는 불우 항목 등으로 세종대에서 영조 대까지 사찰은 지리지의 한 항목을 구성하였다.
사진 1. 신증동국여지승람 표지.
“예조에서 계하기를, “석씨釋氏의 도는 선禪·교敎 양종兩宗뿐이었는데, 그 뒤에 정통과 방계가 각기 소업所業으로써 7종으로 나누어졌습니다. … 또 서울과 지방에 사사寺社를 세워, 각 종宗에 분속分屬시켰는데, 그 수효가 엄청나게 많으나,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절을 비워두고 거처하는 자가 없으며, 계속하여 수즙修葺하지 않으므로 점점 무너지고 허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조계曹溪·천태天台·총남摠南 3종을 합쳐서 선종禪宗으로, 화엄華嚴·자은慈恩·중신中神·시흥始興 4종을 합쳐 교종敎宗으로 하며, 서울과 지방에 승려들이 우거할 만한 곳을 가려서 36개소의 절만을 두어, 양종에 분속시킬 것입니다. … 불도佛道를 정하게 닦도록 할 것입니다. 이어 승록사僧錄司를 혁파하고, 서울에 있는 흥천사興天寺를 선종 도회소都會所로, 흥덕사興德寺를 교종 도회소로 하며, 나이와 행동이 아울러 높은 자를 가려 뽑아 양종의 행수장무行首掌務를 삼아 승려들의 일을 살피게 하기를 청합니다.” (『세종실록』 세종 6년(1424) 4월5일(경술)조)
위 기록은 조선이 사찰을 지리지에 수록한 실제적인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세종실록』은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절을 비워두고 거처하는 자가 없고, 지속적으로 수리하거나 중창하지 않아 점점 무너지고 허물어지기 때문에 승려들이 살만한 곳 36개소만을 마련하여 인원을 정하고 사는 규칙을 작성한다.”는 것이다. 스님을 환속시키고 절에 소속된 노비와 토지를 국가로 환수시킨데 이어 선종과 교종으로 종파를 축소시키고 절을 축소시켜 수행하는 인원을 정하고 토지를 나누어 주어 관리한다는 것이다. 불교를 숭상하거나 신앙을 위한 것이 아닌 관리와 통제를 위해서였다.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여 1481년(성종 12) 50권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편찬되었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金宗直, 1431-1492), 노사신(盧思愼, 1427-1498),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성임(成任, 1421-1484), 양성지(梁誠之, 1415-1482)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풍속·인물 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예에 따라 고적 편목이 신설되었으며,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봉수烽燧의 양조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의 큰 변동은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중종 23)에 착수하였다. 마침내 1531년(중종 26)에는 이행(李荇, 1478-1534), 윤은보(尹殷輔, 1468-1544), 신공제(申公濟, 1469-1536), 홍언필(洪彦弼, 1476-1549), 이사균(李思鈞, 1471-1536) 등이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 25책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당시에 현존하던 사찰이 불우佛宇 항목에 1,656개를 기록하였고, 폐지된 사찰은 고적古蹟 항목에 싣고 있다. 사찰 수가 이전에 편찬된 지리지에 비해 매우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시문이 지리지에 포함되면서 사찰의 경우도 기복, 유람, 기문 작성 등 사찰을 방문하면서 남긴 인물들의 시문詩文이 함께 기록되면서 많은 사찰들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 1, 2쪽.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서문에서 지리지에 사찰을 기록한 이유로 “사찰은 역대로 거기에서 복을 빌었다[寺刹歷代以之祝釐].”고 밝히고 있다. 또 김종직의 발문跋文에는 “산천, 성곽, 누대, 사묘, 사찰은 계리(計吏, 회계를 관리하는 아전)와 저주(邸主, 서울에 머물러 있으면서 지방 관아官衙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는 아전이나 백성)에게 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찰이 대대손손 조선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가리지 않고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주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절이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사정을 알 수 없기에 현지 사람을 통해 그 수를 파악했던 것이다.
해인사海印寺 가야산 서쪽에 있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이 창건하였다. 수행이 높은 승려 순응順應ㆍ이정利貞ㆍ희랑希朗의 화상이 있다. 고려 때 판각한 『대장경』과 역대의 『실록』을 모두 이 절에다가 간직하였다. 고기古記에, “가야산은 형승이 천하에 뛰어났고, 땅 기운이 해동에는 짝이 없으니, 참으로 수도할 곳이다.” 하였다. 절에 최치원의 서암書巖 기각棋閣이 있다. ○ 홍간洪侃이 『실록』을 말리러 가는 추옥섬秋玉蟾을 전송하는 시에, “내 들으니 가야산 해인사는, 유선儒仙 최 고운이 일찍이 놀던 땅. 인간의 풍월風月은 이르지 못하고, 보서寶書와 옥첩玉牒이 구름처럼 쌓였다네. 이 속에 가는 사신도 반드시 신선의 무리이리라. 3년 만에 학 타고 하늘에서 내리는구나. 그대 금년에 이런 걸음하게 되니, 가을 풍경이 사람과 함께 맑으리라. 푸른 산 석양에 영가永嘉 길이고, 붉은 단풍에 맑은 강 진양성이라. 역마는 훨훨 나는 기러기 같은데, 몸은 시원한 바람 탄 것보다 상쾌하리. 삼한三韓 23대의 보록寶錄 하나하나를 구름 낀 산속에서 뒤적거리리.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 일 없으리니, 풍요風謠를 채집하여 남정기南征記를 지으리.”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제30권 경상도, 합천군陜川郡 「불우조」 중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의 해인사 항목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해인사의 창건 시기뿐만 아니라 최치원崔致遠의 기록을 소개했고, 고기古記의 기록도 참고하였다. 염정수(廉廷秀, ?-1388)와 권근(權近, 1352-1409),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시를 수록하여 해인사의 가치를 드높였다. 또한 김종직의 시, “세 선사 유적이 있으니, 찾아보매 듣던 바와 같도다. 도의 운치는 참으로 짝할 이 없었고, 신통은 무리에서 뛰어났었다. 지원祗園엔 꽃이 비오듯 했을 것, 향적香積엔 밤을 응당 나누었으리. 허다한 방포方袍 입은 사람들, 누구라 그렇게 공부 부지런함 알리.”라는 내용의 시를【신증新增】으로 추가하였다. 비록 절의 사정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편린이라도 남겨두고 있어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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