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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이 바른 종지이다(無念正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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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검(조병활)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10:46  /   조회6,21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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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성철 스님 [옮김] 활  인 검

 

【6-1】 ①이 법을 요오了悟한 자는 즉시 무념이니 억념憶念과 집착이 없어서 광망誑妄이 일어나지 않고, 자기의 진여본성을 사용하여 지혜로써 관조하여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견성이며 불도를 성취함이니라. ①悟此法者는 卽是無念이니 無憶無著하야 不起誑妄하고 用自眞如性하야 以智慧觀照하야 於一切法에 不取不捨하나니 卽見性成佛道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0c)  

 

* ①이 법을 체득한 사람은 즉시 잡념이 없는 마음 상태가 되니 그릇된 분별과 집착이 없어 삿되고 그릇된 생각[誑妄]이 일어나지 않고, 자기의 진여본성을 시용해 지혜로 관조觀照하여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참다운 본성을 깨달은 것’[見性]이며 부처님의 가르침[佛道]을 증득한 것이니라. 

 



백련암에 주석하실 때의 성철 스님 

 

【평석】 망멸증진妄滅證眞한 구경무심을 또한 무념이라 한다. 이 무념이 즉 무생이니 즉 돈오이며 견성이며 성불이다.

 

* ‘번뇌가 소멸되고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妄滅證眞]이 바로 ‘궁극의 집착 없는 마음의 경지’[究竟無心]에 이른 것이며, 이것이 곧 그릇된 생각이 없는 상태[無念]다. 그릇된 생각이 없는 이 경지가 무생無生이며 돈오이며 견성이며 성불이다.  

 

【강설】 이 『단경』의 내용은 『종경록』에서 육조 스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육조 스님께서 전하신 ‘이 법’이란 견성법을 말하며, 일체 망념이 다 떨어진 무심을 곧 무념이라 한다.

 

【6-2】 ①무념법을 철오徹悟한 자는 만법에 전부 통달하며 제불의 심심甚深한 경계를 통견洞見하며 불타의 지위에 이른다. ①悟無念法者는 萬法에 盡通하며 悟無念法者는 見諸佛境界하며 悟無念法者는 至佛地位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1b) 

 

* ①그릇된 생각이 없는 가르침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은 모든 존재의 본질에 통달하며 모든 부처님의 깊고 깊은 경계를 명백하게 체득해 부처님의 지위에 이른다.  

 

【평석】 돈오인 무념은 견성이며 제불경계諸佛境界이며 구경불지이다. 

 

* 몰록 깨달은 것[頓悟]은 그릇된 생각이 없는 경지[無念]이자,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경계[見性]이다. 또한 여러 부처님의 경계이자 궁극의 경지[究竟佛地]이다.

 

【6-3】 ①그러므로 무념법을 요오了悟한 자는 만법에 다 통달하며 제불의 경계를 본다 하였으니, 만약에 무념법문에 정입正入하면 성불이 찰나경刹那頃에 있음을 알겠다. ②금강 즉 등각 이하로부터의 일체중생은 개실皆悉 유념有念이므로 중생이라 하고, 일체제불은 전부 무념을 증득하였으므로 불타라 호명呼名한다. ①故로 云 悟無念法者는 萬法에 盡通하며 悟無念法者는 見諸佛境界라 하니 是知若入無念法門하면 成佛이 不出刹那之際니라. ②金剛已還의 一切衆生은 皆是有念일새 名爲衆生이요 一切諸佛은 皆得無念故로 名爲佛이니라. (①『宗鏡錄』15, 『大正藏』48, p.498c. ②『宗鏡錄』14, 『大正藏』48, p.491b) 

 

* ①그러므로 잡념이 없는 마음의 경지에 이르는 가르침[無念法]을 터득한 사람은 모든 가르침에 다 통달하며 여러 부처님의 경지를 본다 하였으니, 만약 잡념이 없는 마음의 가르침에 올바르게 들어가면 깨달음은 찰나를 벗어나지 않고 증득된다. ②금강, 즉 등각 경지 이하의 모든 중생은 모두 마음에 잡념이 있는 경지[有念]에 있으므로 중생이라 하고, 모든 부처님은 전부 잡념이 없는 마음의 경지를 증득하였으므로 부처님이라 부른다. 

 

【평석】 금강유정金剛喩定이며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인 등각도 아직 극미세망념極微細妄念을 미단未斷한 고로 중생이라 하며, 등각이 금강심으로써 최미세념最微細念인 제8뢰야第八賴耶를 단진斷盡하고 묘각에 돈입頓入함을 견성 또는 성불이라 하나니 이것이 돈오이다. 그러므로 중생과 제불의 차이는 유념有念과 무념無念에 있다. 육조가 선설宣說한 무념정오無念正悟는 구경불지, 즉 원증돈증圓證頓證의 증오證悟이며 견성의 표본이다. 

 

* ‘금강석처럼 견고한 선정’[金剛喩定]과 ‘막힘없이 일관되게 향상向上하는 금강석 같은 경지’[金剛無間道]에 있는 등각等覺도 여전히 매우 미세한 번뇌를 끊어 없애지 못했기에 중생이라 하며, 등각이 금강석 같은 굳은 마음으로 가장 미세한 잡념인 제8 아뢰야식을 모두 끊어 없애고 묘각妙覺에 몰록 들어간 것을 ’참다운 본성을 체득했다‘[見性] 혹은 ‘부처님이 됐다’고 하나니, 이것이 몰록 깨침인 돈오다. 그러므로 중생과 여러 부처님의 차이는 작위적으로 그릇되게 움직이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육조가 잘 설명한 ’잡념 없는 올바른 깨달음‘[無念正悟]은 궁극의 부처님 경지, 즉 결함 없이 몰록 깨달은 증오證悟이며 어떤 것이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강설】 연수 스님이 육조 스님의 말씀에 근거해 일체 망념이 다 소멸된 무념이 곧 돈오성불임을 밝혔다.

 

【6-4】 ①내가 오조 홍인화상의 처소에서 한 번 듣고 문득 대오하여 진여 본성을 돈견頓見하니라. 그러므로 이 돈오견성법을 세상에 유행流行시켜, 학도學道하는 자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하여 본성을 자견自見케 하느니라. ①我於忍和尙處에 一聞하고 言下에 便悟하야 頓見眞如本性하니라. 是以로 將此敎法하야 流行하야 令學道者로 頓悟菩提하야 自見本性케 하느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1a) 

 

* ①내가 오조 홍인 스님의 처소에서 한 번 듣고 크게 깨달아 참다운 본성을 일시에 체득했느니라. 그러므로 이 참다운 본성을 일시에 깨닫는 법을 세상에 유행시켜, 수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일시에 증득해 참다운 성품을 스스로 체득하게 하고자 한다.

 

【평석】 이 돈오와 견성은 무념을 내용으로 하는 구경불지이다.

 

【6-5】 ①오직 견성하는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출현한 사종邪宗을 파쇄破碎하노라. ①唯傳見性法하야 出世破邪宗하노라. (①『壇經』, 『大正藏』48, p.351b)

 

* ①오직 참다운 본성을 증득하는 가르침만을 전하여 세상에 출현한 그릇된 가르침들을 부수어 없앤다.

 

【평석】 불조의 정법은 견성에 있으며 견성은 불지佛地인 증오證悟이다. 그리하여 불조의 혜명을 계승한 정안종사는 돈오, 즉 견성법을 정전正傳하고 기외其外는 전부 사종邪宗으로써 파쇄破碎한다. 이는 인아人我로써 타종他宗을 비방 배척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자비의 발현發現이다. 전불후조前佛後祖가 심심상전心心相傳한 돈오견성법은 불조의 명맥命脈이요 정법의 골수骨髓이다. 기타 각종各宗은 수의방편隨宜方便의 일시권설一時權說에 불과하므로, 정법의 근본입장에서 논할 때에는 사종邪宗이라 점파點破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방편가설方便假說을 실법實法으로 오집불사誤執不捨하면, 중생들이 차방편가설此方便假說에 계박繫縛되어 정법에는 영영 귀복歸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를 통렬히 파쇄배격破碎排擊하고 근본정법을 선양하는 것이다. 

 

* 부처님과 조사들이 전한 올바른 가르침은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는 데 있으며,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면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는데, 이것이 증오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과 조사들이 전한 지혜를 계승한 눈 밝은 스승들은 몰록 깨침, 즉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는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하며 나머지는 전부 삿된 가르침이므로 부수어 소멸시킨다. 이는 남과 나를 구별하여 다른 가르침을 비방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올바른 가르침을 수호하기 위한 자비의 발현이다. 앞의 부처님과 뒤의 조사들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서로 전한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몰록 깨침’[頓悟見性法]은 부처님과 조사들의 목숨과 같은 것이며 올바른 가르침의 핵심이다. 기타의 다양한 가르침들은 ‘상황에 따라 사용하고 임시적으로 말씀한 것’[隨時方便說]에 불과하므로, 올바른 가르침의 입장에서 논할 때는 그릇된 가르침이라 논파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임시적인 가르침을 참다운 가르침으로 잘못 알아 집착하고 버리지 않으면, 중생들이 상황에 따라 사용한 임시적인 가르침들에 묶여 올바른 가르침에는 영영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를 통렬하게 부수고 배척하고 근본적인 올바른 가르침을 선양하는 것이다.     

 

【강설】 육조 스님께서 분명히 “견성법 만이 올바른 가르침이므로 다른 것은 파괴해 물리친다.”고 하였으니 견성법 만이 정설이고 다른 것은 수시방편설隨時方便說이다. 이는 허튼 말씀이 아니다. 불법佛法이란 이름으로 추구했던 수많은 배움과 수행이 견성하고 보니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고 토로한 선사들이 허다하다. 견성법을 바로 알고 다른 교법을 보면 다른 것은 불법이 아니다. 지혜도 자비도 아니고 말짱 번뇌와 망상을 부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실법實法이라 할 것은 견성법 하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견성법 만이 실법이다.”는 이런 말도 실제로 눈을 바로 떠 견성하고 나서 할 소리이지, 견성하지도 못하고 함부로 떠들 소리는 아니다.

 

【6-6】 ①만약 자성의 진정한 반야를 불러 관조하면 일찰나간一刹那間에 망념이 구멸俱滅한다. 그리하여 자성을 식득識得하면 일오一悟해 즉시 불지에 도달한다. ①若起眞正般若觀照하면 一刹那間에 妄念이 俱滅이요 若識自性하면 一悟에 卽至佛地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1a) 

 

* ①만약 참다운 반야[지혜]를 불러 실상實相을 관조하면 찰나 사이에 그릇된 생각들이 모두 소멸된다. 그리하여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면 깨달아 즉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다. 

 

【평석】 망념이 구멸俱滅하면 자성을 명견明見하고 자성을 명견하면 이것이 정오正悟이며 무념이니, 지위와 계급을 경력經歷하지 않고 구경각인 불지에 돈입頓入한다. 이것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의 묘결妙訣이어서, 타종他宗들의 추수追隨를 불허하는 선문의 특징이다. 

 

* 그릇된 생각이 모두 소멸되면 참다운 본성을 분명하게 체득한다. 참다운 본성을 분명하게 체득한 이것이 올바른 깨달음이며 잡념이 없는 마음이니, 수행의 경지와 차례를 거치지 않고 궁극의 깨달음인 부처님의 경지에 몰록 들어간다. 이것은 ‘즉시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는’[一超直入如來地] ‘신묘한 비결’[妙訣]이어서 다른 가르침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선문禪門의 특징이다.  

 

【6-7】 ①나의 이 법문은 무념으로 종취를 삼아서, 무상無相으로 체를 삼고 무주無住로 근본을 삼는다. ①我此法門은 無念으로 爲宗하며 無相으로 爲體하고 無住로 爲本이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3a) 

 

* 나의 가르침은 ‘잡념이 없는 생각’[無念]을 핵심으로 삼고,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것[無相]을 본체로 삼으며,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無住]을 근본으로 삼는다. 

 

【평석】 견성법문인 무념정종無念正宗은 전불후조前佛後祖가 등등상속燈燈相續하는 무상無上의 혜명이다. 

 

*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는 가르침인 ‘잡념 없는 생각을 핵심으로 삼는다’[無念正宗]는 종지는 앞의 부처님과 뒤의 조사들이 등불을 전하듯이 서로 이어온 최고의 지혜이다.

 

【6-8】 ①무無라 함은 하사何事가 없음이며, 염念이라 함은 하물何物을 염念하는고? 무라 함은 상대相對의 이상二相이 없으며 진로塵勞의 망심이 없는 것이요, 염이라 함은 진여의 본성을 염念함이니, 진여는 바로 무염無念의 본체요 염念은 곧 진여의 대용大用이니라. ①無者는 無何事며 念者는 念何物고 無者는 無二相이며 無塵勞之心이요 念者는 念眞如本性이니 眞如는 卽是無念之體요 念은 卽是眞如之用이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3a) 

 

* ①없다[無]는 것은 무엇을 없다고 하며 생각[念]이라 함은 무엇을 생각이라 하는가? 없다[無]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형상이 없다는 것이자 번뇌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생각[念]이라는 것은 참다운 본성[眞如]을 생각하는 것이다. 참다운 본성은 번뇌 없는 생각의 본체[無念之體]이며, 생각은 바로 참다운 본성의 크나큰 활용[眞如之用]이다.  

 

【평석】 망심이 멸진하면 진여본성이 현전現前하나니 진여정념眞如正念이 무념이다. 

 

* 그릇된 생각이 사라지면 참다운 본성이 나타나니 ‘참다운 본성을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眞如正念]이 바로 ‘잡념과 번뇌가 없는 것’[無念]이다. 

 

【강설】 무념이라고 하면 흔히 텅 비어 아무 생각도 없는 허무를 연상하는데 그런 편공偏空·악취공惡取空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무無라 함은 일체 망념이 완전히 떨어진 것을 말하고, 염念이라 함은 진여자성의 본체가 나타남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무無는 구름이 걷힌 것을 말하고 염念은 해가 환히 비추는 것을 말한다. 구름이 걷히듯 일체 망념이 완전히 제거되면 태양이 밝게 비추듯 자기의 본래 성품인 진여가 저절로 환히 드러난다. 따라서 진여의 정념正念이 무념無念이지 목석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라.

 

【6-9】 ①만약에 진여본심 즉 자성을 식득識得하면 즉시 근본해탈이요, 해탈을 체득하면 즉시 반야삼매며 무념이니라. ①若識本心하면 卽本解脫이요 若得解脫하면 卽是般若三昧며 卽是無念이니라. (①『壇經』, 『大正藏』48, p.351a) 

 

* ①만약 참다운 본성을 알면 즉시 근본적인 해탈을 증득하며, 해탈을 체득하면 즉시 반야삼매이며 그릇된 생각과 집착이 없는 무념이다.  

 

【평석】 자재해탈과 반야삼매와 무생무념과 식심견성識心見性과 돈오원증頓悟圓證과 성불작조成佛作祖는 동일한 내용이니 구경무심의 별칭이다. 

 

*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한 해탈, 반야삼매, ‘태어남이 없고 그릇된 생각이 없는 것’[無生無念], 결함 없이 몰록 깨치는 것[頓悟圓證], 부처님이 되고 조사가 되는 것 등은 동일한 내용이며 ‘궁극의 집착 없는 마음’[究竟無心]의 다른 이름이다.  

 

【6-10】 ①어떤 것을 돈오라 하는고? 대답하되 돈頓이라 함은 일체망념을 단제斷除함이요, 오悟라 함은 오悟에 소득所得이 없음이니라. ①云何爲頓悟오 答하되 頓者는 頓除妄念이요 悟者는 悟無所得이니라. (①『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40b) 

 

* ①무엇을 몰록 깨침이라 하는가? 모든 그릇된 생각을 끊어 없애는 것을 돈頓이라 하며, 얻음이 없음을 깨닫는 것을 오悟라 한다. 

 

【평석】 ‘돈제망념頓除妄念하고 오무소득悟無所得’의 돈오는, 망멸증진妄滅證眞한 구경무심이니 불지무념佛地無念의 견성이다.

 

* 일시에 모든 그릇된 생각을 없애고 얻을 것 없음을 깨닫는 돈오는 ‘번뇌가 소멸되고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妄滅證眞] 궁극의 집착 없는 마음[究竟無心]이며 부처님의 경지인 그릇된 생각이 없는 마음[佛地無念]이다.

 

【강설】 마조 스님의 법을 이은 대주혜해大珠慧海 선사의 말씀이다. 일체망념이 단박에 자취도 없이 다 떨어지는 것이 돈頓이고, 일체망념이 떨어졌다는 생각 그 자취마저 없어진 것이 오悟다. 그것이 구경무심이고 성불이다.

 

【6-11】 ①이 돈오문은 무엇을 종宗으로 삼고 무엇을 지旨로 삼으며 무엇을 체體로 삼고 무엇을 용用으로 삼는고? 대답하되 무념을 종宗으로 삼고 망념이 일어나지 않음을 지旨로 삼으며, 청정을 체體로 삼고, 지혜를 용用으로 삼는다. ①此頓悟門은 以何爲宗하고 以何爲旨하며 以何爲體하고 以何爲用고 答하되 無念으로 爲宗하고 妄念不起로 爲旨하며 以淸淨으로 爲體하고 以智爲用이니라. (①『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42a) 

 

* ①이 돈오문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고 무엇을 핵심적인 가르침으로 삼으며 무엇을 몸으로 삼고 무엇을 작용으로 삼는고? 대답하되 그릇된 생각이 없음을 근본으로 삼고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을 가르침으로 삼으며, 청정을 몸으로 삼고, 지혜를 작용으로 삼는다. 

 

【평석】 망념을 돈제頓除하여 무념을 증득하면,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반야대지般若大智가 낭연독조朗然獨照하나니, 이것이 선문정전禪門正傳의 근본 종취宗趣다. 

 

* 망령된 생각을 일시에 없애 그릇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을 증득하면, 깨끗하고 떼가 없는 반야의 크나큰 지혜가 환하게 홀로 빛나나니 이것이 선문에서 올바르게 전해 내려온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강설】 망념이 일어나지 않아야 무념이니 망념이 있으면 무념이랄 수 없다. 또 망념이 여전히 일어난다면 어떻게 청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표현은 달리 했지만 그 내용은 같은 것이다. 일체망념이 다 떨어져 청정해지면 지혜는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뽀얗게 앉은 먼지를 말끔히 닦아내면 거울의 밝고 투명한 빛이 환히 드러나는 것이다.

 

【6-12】 ①무념이라 함은 일체처一切處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으며 사려思慮 희구希求가 없다. 모든 경계와 색상色相을 대하여도 영원히 기멸起滅과 동요가 없는 것이 무념이니, 무념은 즉 진여정념眞如正念이다. ②만약에 무념인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을 떠나서, 보리해탈과 열반적멸涅槃寂滅과 선정견성禪定見性을 체득하려면 될 수 없다. ①無念者는 一切處에 無心이 是니 無一切境界하며 無餘思求가 是니라 對諸境色하야도 永無起動이 是無念이니 無念者는 是眞念也니라. ②若離一切處無心하고 得菩提解脫과 得涅槃寂滅과 禪定見性은 非也니라. (①『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49a. ②『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52a) 

 

* ①그릇된 생각이 없다는 것은 모든 곳에서 망령되고 집착이 없다는 것이니, 모든 경계가 없으며 생각이 억지로 추구하는 바가 없다. 모든 경계와 물질적인 모습을 대해도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짐이나 동요함이 없는 것이 그릇된 생각이 없는 것[無念]이니, 그릇된 생각이 없는 것은 바로 참다운 본성 그 자체이다. ②만약 그릇된 생각이 없는 경지인 망령되고 집착이 없는 무심의 경지를 떠나 ‘깨달음’과 ‘근원적인 고요한 본성’[涅槃寂靜]과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는 것’[見性]은 불가능하다.    

 

【평석】 무심인 무념은 구경불지이니 이것이 즉 해탈열반이며 돈오견성이다.

 

【6-13】 ①돈오한 자는 망념을 돈제頓除하고 인아人我를 영절永絶하여 필경에 공적空寂하므로, 즉시에 불타와 제등齊等하여 추호秋毫의 차이도 없다. ①頓悟者는 爲頓除妄念하고 永絶人我하야 畢竟空寂하야 卽與佛로 齊等하야 無有異니라. (①『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49b) 

 

* ①참다운 본성을 몰록 깨달은 사람은 망령되고 그릇된 생각을 일시에 없애고 나와 남이라는 분별의식을 영원히 끊어 ‘궁극적인 고요한 경계’[空寂]에 이르렀기에, 부처님과 같은 경지이므로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다.  

 

【평석】 일체망념이 영단永斷된 대공적삼매大空寂三昧를 돈오라 하나니 이는 구경불지이다. 

 

* 그릇되고 망령된 모든 생각이 끊어진 궁극의 고요한 경계를 ‘몰록 깨달음의 경지’라 하나니 이는 최후의 경지인 부처님의 경계이다.

 

【6-14】 ①망념이 생기지 않음이 선禪이요 정좌正坐하여 본성을 명견明見함이 정定이니, 본성은 여등汝等의 무생심이요, 정定이라 함은 외경外境을 대하여도 무심하여 팔풍八風이 능히 요동하지 못하나니, 이러한 정定을 체득하면 비록 범부이지만 즉시에 불위佛位에 돈입頓入하느니라. ①妄念不生이 爲禪이요 坐見本性이 爲定이니 本性者는 是汝無生心이요 定者는 對境無心하여 八風이 不能動이니 若得如是定者는 雖是凡夫나 卽入佛位니라. (①『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40b) 

 

* ①그릇되고 망령된 생각이 생기지 않음이 선이요 바르게 앉아 참다운 본성을 분명하게 체득하는 것이 선정이니, 본성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깨끗한 마음 그 자체요, 선정이라 함은 대상을 대해 집착하거나 그릇되게 생각하는 분별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덟 가지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선정에 드는 사람은 설사 범부라 해도 곧바로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간다. 

 

【평석】 망념이 멸진하여 무생의 본성을 요견了見하여 무심을 체득하였으니 성불이 아닐 수 없다. 

 

* 그릇된 생각이 모두 소멸되어 태어남이 없는 참다운 본성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릇된 마음이 없는 경지를 체득했으니 부처님이 된 것이 아닐 수 없다. 

 

【강설】 참다운 선정이란 무심·무념으로써 이익과 손해 등 갖가지 경계에 동요되지 않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일체망념을 떨쳐 온갖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성불하지 않으려 해도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여래선이다.

 

【6-15】 ①다만 능히 무심하면 문득 이것이 구경인 성불이니라. ①但能無心하면 便是究竟이니라. (①『傳心法要』, 『大正藏』48, p.380b) 

* ①다만 능히 그릇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이것이 바로 최후의 깨달음이니라. 

 

【평석】 돈오와 견성의 내용인 무심무념이 구경각이라 함은 전불후조前佛後祖가 여출일구如出一口이다. 

 

* 몰록 깨달음을 얻고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마음이 궁극의 깨달음이라 함은 앞의 부처님과 뒤의 조사들이 한 입으로 말씀하신 듯이 똑 같다. 

 

【강설】 『전심법요傳心法要』는 황벽 스님의 말씀을 배휴裵休가 엮은 책이다. 고금의 불조가 같은 법을 깨쳤으니 황벽스님이라고 달리 말씀할리가 없다.

 

【6-16】 ①만약 마음이 일체처에 주착住著하지 않음을 명명료료明明了了하게 알면, 곧 본심을 요료了了하게 본 것이며 또한 본성을 요료하게 본 것이라고 이름 한다. 이 일체처에 주착住著하지 않는 심心은 즉시卽是 불심佛心이며 또한 해탈심이요 보리심 무생심이라고 하나니, 경에 말씀하시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하였다.” 함이니라. ①若了了知心이 不住一切處하면 卽了了見本心也요 亦名了了見本性也라 只箇不住一切處心者는 卽是佛心이며 亦解脫心이요 亦名菩提心이며 亦名無生心이니 經에 云하되 證無生法忍이 是也니라. (①『頓悟要門』, 『卍續藏經』110, p.844a) 

 

* ①만약 마음이 모든 곳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을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것이자 참다운 본성을 분명하게 파악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곳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불심佛心이자 해탈심이며, 깨달음의 마음[解脫心]이자 그릇된 생각이 생기지 않는 마음[無生心]이라고 한다. “태어남이 없음을 깨달았다[無生法忍].”고 경전에 나오는 말이 이것이다.   

 

【평석】 식심견성識心見性하여 마음이 일체처에 주착住著하지 않으면 즉 무생무념을 체득한 것이니,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이라 자재무애한 대해탈문의 무심도인無心道人이 아닐 수 없다. 영산정맥靈山正脈이며 조계직전曹溪直傳인 견성은, 그 내용이 근본무명인 제8리야第八梨耶의 미세망상이 영멸永滅한 무심 무생 무념 등의 구경불지에 있음이 명확하다. 이는 망멸증진妄滅證眞하여 병차약제病差藥除하고 교관敎觀을 함식咸息하여 현증원통現證圓通한 원증돈증圓證頓證의 증오證悟이니, 이것이 불조정전佛祖正傳의 견성이며 돈오이다. 만약 제8리야第八梨耶의 미세망상은 고사하고 제6·7식의 추중생멸망상麤重生滅妄想도 미탈未脫한 해오解悟로써 견성이라 운위云謂한다면 이는 불조의 혜명을 단절하고 중생의 정로正路를 파괴하는 정법의 대역大逆이니, 이러한 이단사견異端邪見에 오락誤落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참다운 본성을 체득하여 마음이 모든 곳에 집착하지 않으면 태어남이 없음과 그릇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체득한 것이니, 장부가 해야 할 일을 마친 것이므로 걸림 없고 자유로운 참다운 수행자가 아닐 수 없다. 부처님과 선문의 올바른 가르침을 바르게 이은 깨달음[見性]은 매우 미세한 제8 아뢰야식을 영원히 소멸시킨 최후의 경지이다. 이것이 바로 그릇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무심이고, 태어남이 없는 무생이며, 망령된 생각이 나타나지 않는 무념이다. 망령됨을 소멸시키고 참다움을 증득한 것이며, 병과 약을 모두 없앤 것이고, 교학과 선정을 뛰어 넘은 것이자, 원만하고 결함 없는 깨달음을 몸으로 친히 얻은 참다운 깨달음[證悟]이니, 부처님이 말씀하시고 전한 ‘몰록 깨달음’[頓悟]과 ‘참다운 본성을 체득한 경지’[見性]가 바로 이것이다. 만약 제8 아뢰야식의 미세한 번뇌는 고사하고 제6·제7의 의식과 말나식 등 비교적 큰 번뇌조차 없애지 못한 알음알이를 참다운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이는 부처님과 조사들의 생명과 같은 참다운 지혜를 끊은 것이고, 중생들이 가야할 올바른 길을 파괴하는 것이니, 올바른 가르침을 거역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릇되고 삿된 견해에 잘못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강설】 보통 사람들은 꽃을 보면 꽃에 마음이 머물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에 마음이 머문다. 이처럼 부딪치는 외경에 마음이 따라가 본래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견성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어떤 경계를 대하더라도 그 경계에 마음이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본성을 분명하게 본 사람은 경계에 동요하지 않고, 또 경계에 동요하지 않아야 성품을 바로 본 것이니 이를 무생법인을 증득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앞서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신 “성품을 보아 무생법인을 증득한다.” 함은 곧 불지를 증득하는 것이지 보살의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니다. 만일 제8 아뢰야식의 미세망상은 고사하고 제6식의 추중망상도 벗어나지 못한 해오解悟를 견성이라 한다면 이는 부처와 조사의 혜명을 단절하고 중생의 바른길을 파괴하는 정법의 대역죄인이다. 혹자는 대역죄인이라 하면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하겠지만 결코 심한 표현이 아니다. 이단의 사견에 빠져 망견을 불법이라 여기고 남에게 가르친다면 자신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짓이다. 더불어 정법을 파괴해 부처님의 바른 법이 전해질 수 없게 만드는 죄인이 되는 것이니 어찌 대역죄인이 아니라 하겠는가? 고불고조를 표방으로 삼아 정법을 바로 이어야지, 이단의 잘못된 견해에 떨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니 잡다한 이론에 휩싸여 구구한 입씨름하지 말고, 견성은 성불을 말하고 성불은 곧 견성이라는 고불고조의 확고한 말씀에 의지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편집자 | 【번호】·【평석】·【강설】은 성철 스님이 직접 쓰고 말씀하신 것이다. 【6-1】은 제6장 제1절이라는 의미다. * 표시가 붙은 것은 보다 쉽게 풀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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