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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삼독, 지혜의 생명을 죽이는 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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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10:11  /   조회5,5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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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인지 속속들이 다 알 것 같은 가족들조차 서로의 마음을 모를 때가 많다. 그 이유는 마음의 구조가 매우 복잡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실체가 없어 상황과 조건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 보다 악이 많은 중생심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법상유식에서는 마음의 작용을 여섯 가지 범주[육위심소]로 구분하고, 51종의 심리작용[51심소]으로 분류한다. 비록 마음으로 불리는 심왕心王은 하나이지만 그 마음이 나타내는 현상은 매우 복잡하고, 변화무상하다. 물론 이렇게 복잡한 마음의 작용 중에는 선심소로 불리는 착한 마음 작용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따뜻하고 착할 때도 있지만 차갑고 매몰차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유식학에서도 착한 마음작용인 선심소는 물론 그 반대가 되는 악한 마음작용, 즉 번뇌심소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번뇌심소는 갖가지 부정적 감정에 오염[雜染]된 마음작용을 말한다. 이런 번뇌심소에 의해 중생은 온갖 악행을 짓게 되고, 그와 같은 악업의 결과로 인해 생사고해生死苦海에 빠져 윤회한다는 것이 유식학의 설명이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 자체보다 행위를 초래하는 마음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선심소가 11가지였던 것에 반해 번뇌를 일으키는 번뇌심소는 그 두 배가 훨씬 넘는 26가지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를 보면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따뜻함과 선량함보다 차갑고 쌀쌀함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은 단지 주관적 판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선의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착한 마음작용보다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작용이 더 많은 것에 대해 『백일법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생은 선이 아니면 악인데, 여기에서 선은 열한 가지가 되고, 악인 번뇌에 속한 것은 스물여섯 가지입니다. 언제나 악이 많기 때문에 중생이 선한 행동은 하기가 어렵고, 악행을 하는 쪽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식에서 근본적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결국 죄를 많이 짓고 선을 적게 하게 되는 것은 우리 심리상태의 근본 조직이 선한 심리활동이 적고 악한 면이 배가 넘으니, 자연히 많은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입니다.”

 

선심소와 번뇌심소에 대한 성철 스님의 평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사람의 마음은 착한 작용보다 악한 작용이 더 많다는 것, 둘째는 악한 심리요소가 더 많기 때문에 선행보다 악행을 짓기 쉽다는 것, 셋째는 중생이 이런 저런 죄를 많이 짓는 것도 결국 이와 같은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식은 성악설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작용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마음[心王]의 조정을 받는 현상에 불과함으로 그렇게 해석할 대목은 아니다.

 

26가지에 달하는 번뇌심소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다시 구분된다. 번뇌의 근본이 되는 6가지의 근본번뇌 심소와 근본번뇌에 수반되는 종속적 번뇌인 20가지 수번뇌심소가 그것이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6가지 근본번뇌심소는 “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이며, 이들 여섯 가지 심소는 “본성이 근본번뇌에 포함되기 때문根本煩惱攝故”에 번뇌심소라고 부른다고 밝히고 있다.

 

삼독, 팔만사천 번뇌의 뿌리

 

이번호에는 여섯 가지 근본번뇌심소 중 탐, 진, 치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유식학에서는 근본번뇌에 해당하는 것을 6가지 항목으로 설명하지만 보통 경전에서는 탐진치를 모든 번뇌의 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일례로 『법구경』에서는 “탐욕처럼 심한 불길은 없고, 노여움처럼 심한 포수도 없고, 미망에 비할 그물도 없다.”고 했다. 탐욕은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꽃이고, 분노는 생명을 죽이는 사냥꾼이며, 어리석음은 스스로를 속박하는 그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탐진치의 해악이 크기 때문에 이 셋을 ‘세 가지 독약’라는 뜻에서 삼독三毒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독’이란 지혜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마음에 삼독이 퍼지면 지혜의 작용과 선량함은 죽고 대신 번뇌만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런데 삼독은 지혜의 생명이라는 정신적 영역에만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과도한 욕심 때문에 몸을 망치기 일쑤고, 분노의 에너지는 타인을 해치는 것은 물론 자신도 뇌졸중 등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많다. 또 어리석은 사람은 부질없는 것에 집착하여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보면 세 가지 독소는 상징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몸과 마음을 죽이는 독소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성유식론』에서는 삼독의 각 항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탐貪은 좋아하는 대상에 물들어 애착하는 염착染著의 마음을 말한다. 『성유식론』에서는 “윤회하는 삶[有]과 그 원인[有具]에 대해서 탐착함을 본성으로 삼으며[於有有具染著為性], 무탐심소를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작용으로 삼는다[能障無貪生苦為業].”고 설명하고 있다. 탐의 본성은 유에 대한 집착이며, 선심소인 무탐을 방해하여 고통을 유발하는 것을 작용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탐심소의 애착 대상은 외부의 물질 등으로 다양하지만 가장 근본은 윤회하는 삶과 그 주체인 오온에 대한 집착이다. 이런 맥락의 탐착은 동물을 포함해 모든 유정이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둘째 진瞋은 분노, 미워함, 상처를 주고 해치고자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고통[苦]과 그 원인[苦俱]에 대해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본성으로 삼으며[於苦苦具憎恚為性], 무진無瞋 심소를 장애하여 불안과 악행의 의지처가 되는 작용을 한다[能障無瞋不安隱性 惡行所依為業].”고 했다. 진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대상을 향해 분노하고 미워하는 것이 본질적 성질이다. 그리고 선심소에 해당하는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을 방해[障]하여 불안온不安隱과 악행惡行의 근거가 되는 것이 진이다. 특히 진은 “몸과 마음을 괴롭혀[必令身心熱惱] 모든 악업을 일으키게 하는 불선의 성품[起諸惡業 不善性].”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셋째 치癡는 어리석음, 지혜롭지 못함[無智], 미혹하고 아둔한[迷闇] 성품을 말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모든 본질과 현상에 대해서 미혹하고 어두운 것을 본성으로 삼으며[於諸理事迷闇為性], 무치無癡 심소를 장애하고 모든 잡염법의 의지처가 됨을 작용으로 삼는다[能障無癡一切雜染所依為業].”고 했다. 어리석음은 본질[理]과 현상[事]에 대해 미혹하고 어두운 것[迷闇]을 본질적 성질[性]이고, 선심소에 속한 무치無癡의 마음작용을 가로막아[障] 온갖 것에 물들게 하는[雜染] 심소라고 설명한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삼독의 불꽃

 

이와 같은 삼독이 맹렬하게 타오를수록 번뇌는 깊어지고, 악행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불자들이 매일 독송하는 『천수경』에 보면 “아득한 과거로부터 지어 온 모든 악업은 모두 시작 없는 탐진치로부터 비롯되었다[我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瞋癡].”라는 구절이 있다. 중생이 짓는 모든 악업이 탐진치라는 세 가지 마음의 독소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삼독은 마치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내면에서 타올라 지혜의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삼독치연三毒熾然’ 즉 ‘삼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치연熾然’이라는 표현은 『유가사지론』 등에도 등장하는데 번뇌가 마치 “큰 열병과 같이 맹렬히 타오르기 때문에 치연이라고 한다[如大熱病 故名熾然].”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대승아비달마집론』에는 치연을 탐진치 각각에 배대하여 ‘탐치연貪熾然’, ‘진치연瞋熾然’, ‘치치연癡熾然’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중생의 마음속에는 탐욕의 불꽃, 분노의 불꽃, 어리석음의 불꽃이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삼독의 불꽃을 맹렬히 타오르게 하는 연료는 ‘바르지 않는 법[非法]’, ‘평등하지 않음[不平等]’, ‘삿된 법[邪法]’이라고 했다. 비법, 불평등, 사법을 다스리지 못하면 탐진치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더욱 맹렬해진다. 그런 삼독의 불꽃에 의해 지혜의 생명은 죽음을 맞이하고, 내면에는 팔만사천 번뇌가 자라나고, 그 에너지에 이끌려 온갖 악업을 짓게 된다.

 

『소실육문』 중의 하나로 알려진 『파상론』에 따르면 삼독은 팔만사천 번뇌의 뿌리라고 했다. 즉, “비록 팔만사천 번뇌와 욕망[雖有八萬四千 煩惱情欲]과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악이 있지만[及恆河沙衆惡] 그 모든 것은 탐진치 삼독이 근본이다[皆因三毒以為根本].”라고 했다. 중생들의 마음속에는 팔만사천가지 번뇌가 타오르고 있고, 그로 인해 무수한 악행을 짓게 되는데 그 모든 번뇌의 뿌리는 삼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번뇌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갖가지 양태의 번뇌를 하나하나 제거할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되는 삼독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교수행은 삼독을 잠재우는 것에 초점이 모아진다. 삼독심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수행을 많이 했어도 바른 수행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달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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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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