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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불교와 유교 상즉과 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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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09:24  /   조회4,98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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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에서 유식불교를 추종하는 학자들과 『대승기신론』을 옹호하는 학자들 간의 논쟁은 많은 철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보다 독창적인 제3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웅십력의 『신유식론新唯識論』과 그를 바탕으로 한 현대 신유학, 또는 현대신불교의 등장이다. 웅십력은 유식불교를 비판하되 유식불교의 논리와 용어를 그대로 활용하고, 전통 중국불교로 유학을 새롭게 해석한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본래의 마음[本心]’, 또는 ‘우주의 마음[宇宙心]’이라는 본체가 현상으로 현현한다는 사상이다.  

 


1947년의 웅십력

 

이러한 웅십력 철학은 『대승기신론』과 철학적 성향이 일치한다. 현상계가 본체인 진심의 현현임을 말하는 진상심 사상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학의 성선론 경향과 일치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진심, 자성청정심, 불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중국불교의 인식은 사람은 본래부터 선성善性, 양지良知, 사단지심四端之心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유학의 사고방식과 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승기신론』의 중국불교적인 성격은 유학사상에 대한 긍정과 연결될 수 있고, 현대신유학이 구양경무와 내학원 학자들이 견지한 유식불교를 비판하면서 태동하였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웅십력의 『신유식론』

 

실제로 웅십력(사진 1,2)의 『신유식론』(사진 3,4)은 『대승기신론』에 근거한 진상심 사상에 가깝다. 예컨대 태허는 웅십력의 『신유식론』이 진여종眞如宗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평가하였고, 인순도 웅십력 사상이 ‘진상유심론眞常唯心論’에 가깝다고 판정하였다. 여징은 “그대의 논의는 완전히 ‘성각性覺’에서 나온 학설로, 중국의 모든 위경, 위론과 한 콧구멍에서 나온 숨이다”라고 말하며, 웅십력 철학이 중국의 위서僞書, 거짓된 경전과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비판하였다. 그에 대해 웅십력 자신은 성적과 성각을 구분하는 견해에 대해서 반대하였다. 성적과 성각은 본성의 서로 구분할 수 없는 두 측면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웅십력은 성적은 본체의 적정寂靜한 측면과, 성각은 본체의 끊임없이 흐르는 생성 변화의 측면과 연결시킨다. 웅십력은 본체가 가지고 있는 불변의 측면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측면을 각각 성적과 성각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유식론』은 근본적으로 불교와 유학을 융합하여 형성한 체계라는 것이다. 이때 성적은 불교, 성각은 유학에 해당한다. 따라서 웅십력은 “성각을 위론이라고 구분한다면, 위론도 존중받을 만하다”고 말하며 『대승기신론』을 폄하하는 견해에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1963년의 웅십력. 

 

『대승기신론』 ‘일심개이문一心開二門’ 사상

 

『대승기신론』에서는 “대승의 실체는 중생의 마음을 말한다”라고 하여, 만물의 실체를 ‘중생의 마음’이라는 마음으로 보는 유심론적 견해를 기본으로 한다. “마음이 생겨나면 여러 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소멸하면 여러 가지 법이 소멸하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 대해 원효는 “대승에서는 일체의 모든 법이 달리 실체가 없고, 오직 일심一心, 즉 한마음으로 그 실체를 삼는다”라고 부언 설명하고 있다. 중생심을 일심, 한마음으로 해석한 것이다. 원효가 말하는 일심이란 모든 대상이 절대적으로,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실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1932년 10월 절강성립도서관이 발행한 문어체본 <신유식론>표지. 표제는 절친인 마일부가 썼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이 마음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마음을 진여의 측면에서 보는 것(심진여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진여로서의 마음을 생멸하고 있는 측면에서 보는 것(심생멸문)이다. 그리고 “이 두 문이 각각 일체법을 통섭한다. 이러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 두 문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일심에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라는 두 문이 열려 있다는 것, 즉 마음이라는 실체에 진여라는 참되고 깨끗한 측면과 생멸이라는 한시적이고 더러운 측면이 있을 수 있음을 동시에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점에 『대승기신론』의 철학적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오염된 현상계가 바로 진여의 표현 그 자체라는 진여연기론의 전형적인 사고 방식이다. 실체를 진여의 측면에서 파악하면 현상계의 모든 법은 진여의 표현이 되고, 실체를 생멸의 측면에서 파악하면 현상계의 모든 법은 생멸인연의 무상한 존재가 된다. 바로 이 두 문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은 본체와 현상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고, 유학이 인도 전래의 불교 사상에 작용하여 새로운 불교를 창출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문의 성격이 이처럼 판이한데 어떻게 서로 분리되지 않고 일심이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대승기신론』은 “더럽고 깨끗한 모든 법은 그 본성이 둘이 아니어서 더러움과 깨끗함의 두 문이 다르지 않으므로, 하나라고 부른다”고 대답한다. 그리하여 “이 진여의 체는 버릴 것이 없으니, 일체법이 모두 참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장할 것도 없으니, 일체법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현상계의 모든 대상들이 본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모두 참되고 동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 마음에 두 개의 문이 열려있다는 의미의 ‘일심개이문一心開二門’은 바로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라는 두 상이한 영역을 일심, 즉 한마음이라고 하는 진여의 영역에서 통일함으로써, 현상계의 가치를 최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진여의 진정한 핵심의 체현이며, 이 진여는 모든 것에 퍼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웅십력 ‘체용불이’ 사상

 

그런데 이러한 『기신론』의 특징은 그대로 웅십력 철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특히 본체론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웅십력 역시 본체를 마음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본체와 현상의 종합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우리 마음 속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에너지를 ‘우주의 마음[宇宙心]’, 또는 나 자신의 ‘본래의 마음[本心]’, ‘참된 마음[眞心]’이라는 본체로 보고, 이것이 현상으로 현현한다는 사상을 제기하였다. 

 

이 때 본체와 현상의 관계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통일의 관계가 된다. 이를 ‘본체와 현상의 불이’, 또는 체용불이體用不二라고 한다. 그리고 본체인 우주의 마음, 또는 본래의 마음이 ‘흡翕’과 ‘벽闢’이라는 수렴, 확산 과정을 통하여 객관적인 현상 세계의 물과 심으로 현현하고, 이러한 현상들은 찰나생멸을 계속한다는 것이 웅십력 본체론의 골자이다. 물론 이 때의 본체가 쉬지않고 생성하는 ‘인仁’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웅십력 철학은 유학과 연관된다.  

 


<신유식론>, 김제란 옮김, 2007년, 소명출판.

 

이러한 사상은 마음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심본론心本論이다. 더욱이 현상 세계를 본체의 현현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본체의 성격을 ‘본래의’, ‘참된’ 것으로 파악하므로, 『대승기신론』의 진여연기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기신론』 역시 현상 세계를 ‘한 마음’, ‘중생의 마음’이라는 본체의 표현으로 보며, 이 때 이 본체는 당연히 진여 본체로서 참되고 오염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동일한 관념론이면서도 유식 불교가 아라야식을 망식妄識에 가까운 것으로 상정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대승기신론』에서는 현상 세계가 진여 본체가 그대로 나타난 것이므로 웅십력이 주장하는 ‘체용불이’라는 슬로건에 잘 들어맞는다. 반면에 유식 불교는 망식의 성격이 강한 아라야식의 현행으로 현상 세계를 설명하기 때문에, 당연히 본체인 진여와 현상 세계는 동일한 성격으로 나타날 수가 없다. 따라서 본체와 현상을 분리하게 되고, 웅십력이 유식 불교를 비판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성지性智’와 ‘양지量智’

 

웅십력은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성지性智’와 ‘양지量智’, 또는 ‘본심本心’과 ‘습심習心’을 구분하였다. 양지는 일종의 대상화, 물화物化된 사고 방식이다. 본체는 외부 대상을 향하는 객관화된 이해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반성을 통한 내적 체험[반관자조 反觀自照], 즉 본성의 지식인 성지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외부를 향해서 사물을 구하며, 외부 사물이 나 자신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또 외부 사물에 대한 관찰·분석·추론·예언·증명 등의 방식을 통해 객관 세계를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 방법이 과학적 방법이며, 웅십력은 이를 양지라고 불렀다. 

 

이러한 방법은 일상적인 행동에는 유효하고, 오래 계속되면 자연히 습관이 되어 이러한 습관으로 모든 문제를 대하고 처리하게 된다. 그러므로 웅십력은 양지를 습관적인 마음, 즉 ‘습심’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성지가 진정한 자신의 깨달음이라는 것은 본체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본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의 마음이 따로이 본심을 인식한다는 것이 아니고, 본심이 자기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체의 인식 방법인 성지를 진정한 자신(본체)의 ‘깨달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과 웅십력 철학의 ‘체용불이’로 요약하는 두 사상 사이의 본체론의 유사성이 현대 신유학, 또는 현대 신불교가 등장하게 되는 필연적인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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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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