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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및 특별서평]
“분노 조절해 和의 관계 이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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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2020 년 12 월 [통권 제92호]  /     /  작성일20-12-30 09:21  /   조회5,2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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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서평 : 『표정의 심리학』-옮긴이의 말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

허주형 태나다 퀸즈대 박사과정

 

이 책(사진 1, 표정의 심리학, 바다출판사, 2020)은 감정과 얼굴표정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 폴 에크먼(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 명예교수)이 수십 년에 걸쳐 이룬 연구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목표가 “독자들이 감정생활을 더 잘 이해하고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감정과 관련된 네 가지의 핵심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감정적이 되는 순간을 말이나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자각하게 하는 일과, 우리가 감정적일 때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해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 등이다. 

 

이 책은 문화나 사회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보편적 표정을 분명히 드러내는 감정으로서 슬픔, 분노, 놀람과 두려움, 혐오와 경멸, 여섯 감정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혹감, 죄의식, 수치, 부러움이 보편적 감정임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표정의 명확성에 대해 다소 의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여섯 감정을 논한 다음 모두 열여섯 개의 즐거운 감정을 설명한다. 즐거운 감정은 16가지인가? 이것들 전부가 개별적인 감정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가? 이 같은 물음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가 사용해왔던 ‘기본감정basic emotions’이라는 용어가 적어도 이 책 본문에서는 사라졌다. 이 개념에 대한 여러 비판을 감안했을 수 있다. 놀람과 두려움의 표정들이 서로 얼마나 잘 구별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은 스스로도 품고 있다.(248쪽) 그런데도 저자는 감정과 표정의 보편성에 대한 주장은 분명히 견지한다. 동시에 이 책 여러 군데에서 개인 간 차이, 개개인의 ‘감정 프로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 <표정의 심리학>, 바다출판사, 2020.

 

 

불교와 비교철학 전공자로서 역자(허우성)는 저자가 달라이 라마를 만난 일, 그리고 그 만남이 저자의 감정 연구에 영향을 준 일에 유독 관심이 컸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달라이 라마를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만났다(2000년). 만남에 대한 자세한 과정은『비언어적 메시지: 코드 깨기, 나의 인생역정』(Nonverbal Messages: Cracking the Code, My Life’s Pursuit, 2016)의 24장에 잘 나타나 있다. 천성적으로 활동적인 그의 딸 이브가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이브는 정치적으로 불행한 티베트인들의 처지에 강한 관심을 가졌고,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유 티베트’고교 클럽을 창설했다. 이 일로 이브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달라이 라마를 친견할 수 있도록 다람살라로 초청받았고, 초청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을 동반할 수 있었다. 당시 저자는 불교나 달라이 라마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지만, 딸과 함께 인도로 가서 달라이 라마를 만나게 되었다.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과 점령, 1959년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티베트 불교의 세계화 등 일련의 역사적 정치적 사건이 동·서양의 두 인물을 만나게 해 준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이 만남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적고 있다(40쪽). 이런 만남이 저자에게 끼친 영향 중 특히 역자의 시선을 끈 것은 ‘반성적 자각’에 대한 저자의 깊은 관심과 논의였다. 저자 자신도 그 전부터 감정이나 감정적 행위를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가지고 있었던 듯하지만, 불교의 ‘알아차림mindfulness, 正念’을 알게 되면서 그런 믿음이 더 강화되었을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 다른 유형의 감정적 의식,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 저자는 이런 의식이나 능력이 불교 사상가들의 ‘알아차림’에 가깝다고 말한다(132쪽). 

 

‘알아차림’은 저자 자신이 말하는 반성적 평가나 반성적 자각과 유사하다. 저자에게 “감정은 하나의 과정으로, 인류 진화에서의 과거와 개인의 과거에 영향을 받는 특수한 자동평가의 일종이다.”(37쪽) 자동평가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긍정적인 경우도 물론 있다. 특히 우리가 공포의 순간을 경험하고 이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대응해야 할 경우가 그러하다. 예를 들면,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저편에서 다른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당신의 차와 거의 충돌할 뻔한 경우를 떠올려보자. “자동평가는 반성적 평가에 필요한 시간을 줄임으로써 우리를 종종 재앙에서 구해줄 수 있고 실제로 구해주기도 한다.”(67쪽) 

 

하지만 자동평가가 아닌 반성적 평가가 필요한 때도 있다. 특히 분노와 같은 파괴적인 감정의 경우다. “반성적 평가의 긍정적인 면은 반성의 결과로서 감정이 일어날 때 벌어지는 상황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67쪽) 이 구절에 달린 각주에서 저자는 달라이 라마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파괴적 감정’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불교 수

행에 대해 들으면서, 나는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불교 수행자들이 성취한 것이 

자동평가를 반성적 평가로 대체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년간 수행을 거

듭하면 대부분의 경우 감정적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설령 감정

적일 때라도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 같

다. 나는 장차 이러한 능력이 어떻게 성취되는 것인지 그리고 단기간에 그 능력

을 성취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연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67쪽)

 

저자는 비슷한 취지로 요가 수행자가 자동평가를 취소하는 방식 즉 ‘시간을 늘리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와 만났을 때, 그는 일부 요가 수행자들은 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동평가가 일어나는 극미極微의 찰나를 연장해서 평가 과정을 의식적으로 수정하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자동평가가 일어나는 순간이라는 극미의 찰나를 연장해서 평가 과정을 수정하거나 취소하게 하는 것이 바로 ‘평가 자각appraisal awareness’이다. 그러나 이런 자각은 자신에게도 쉽지 않는 일이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을 저자는 덧붙였다(134쪽). 평가 자각이 불교의 정도正道였다면 인도의 붓다에게는 가능했을 것 같다.  

 

자동평가가 평가 자각 없이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해보자. 자동평가 이후 감정적 행동 이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머릿속에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머릿속에 일어나는 일은 바로 특정 언동에 대한 충동을 가리킨다. 이제 막 일어난 충동을 자각하는 것이므로, 저자는 이를 ‘충동 자각’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만일 그런 ‘충동 자각’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 충동을 실행으로 옮길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으리라. 불교도들은 자신들이 충동 자각을 얻을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수년에 걸친 명상 수행을 필요로 한다. 

 

그 대신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감정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경험하고 있는 것을 자각하는 의식, 일종의 메타의식이다. 저자는 이런 유형의 의식을 ‘느끼는 감정을 주의 깊게 관찰함’, 더 줄여서 ‘주의 집중’이라고 명명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어떤 감정적 사건에서도 우리 자신을 관찰할 수 있다. ……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가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반응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할 수 있고, 사건을 재검토하고 재평가할 수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135쪽).

 

주의집중! 이것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그 가능성은 믿고 있다. 그런 방법으로, 그는 5장에서 9장에서 다루고 있는 개별 감정의 원인들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감정의 유발요인을 아는 것, 감정에 있는 특유의 감각과 신체의 느낌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불교 명상 포함), 우리와 관계있는 타인의 감정적 느낌을 잘 관찰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 후기에서도 저자는 알아차림 명상과 호흡명상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저자는 분노 조절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언급하고 있다. 분노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태도를 소개한 곳도 흥미롭다. 저자는 누군가가 자식을 살해하려고 협박할 때,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에는 우리가 화를 내고 그를 해치더라도 정당화된다고 보고 달라이 라마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에 달라이 라마는 조금 망설이며 이 점에 동의했다고 한다.(103쪽) 달라이 라마는 이런 폭력이 정당하다고 보면서도(201쪽) 그에게 망설임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보통 사람과는 달라 보인다. 

 

이 책의 목표는 ‘감정에 대한 주의집중’ 또는 감정적 자각을 얻어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것”(144쪽)이다. 저자는 이런 방향으로 더 나아가서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집인 『감정적 자각: 심리적 균형과 자비의 방해물 뛰어넘기』(Emotional Awareness: Overcoming The Obstacle To Psychological Balance and Compassion, 2008)를 출판하게 되었다.   

 

저자가 보여주는 과학자로서의 겸손함도 돋보인다. 그는 20년 이상 살아온 부부도 상대가 화내는 원인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자신이 부인에 대해 아는 것은, 서로 분노의 유발요인이 다르다는 점, 자신이 부인보다 화를 빨리 낸다는 점 정도라는 것이다. 감정과 표정 연구의 대가인 저자가 자신의 아내에 대해 이 정도라면, 우리는 배우자나 다른 사람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역서는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과의 공역이다. 두 사람은 번역과정에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충분히 협의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경우 딸이 젊은 감각으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경우도 있지만 나는 설득했고 그는 따라주었다. 그 반대 방향이 더 옳았을까? 기존의 한글역과 일역(顔は口ほどに噓をつく, 스가 야스히코管 靖彦 譯, 河出書房新社, 2006年 初版, 2016年 11刷)을 참조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원서에는 없는 소제목을 달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불완전한 곳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다출판사의 김은수 편집자를 비롯한 편집팀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표한다. 그 분들의 이해와 협력이 없었다면 이런 책은 나오기 어렵다고 느낀다. 독자들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해서 화를 줄이고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이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허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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