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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한 물건[一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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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0 년 10 월 [통권 제90호]  /     /  작성일20-10-21 09:31  /   조회6,34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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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1. 한 물건[一物]

 

한 물건〔一物〕이 있으니 천지天地가 생기기 전에는 항상 있었고, 천지가 다 없어진 후에도 항상 있다. 천지가 천 번 생기고 만 번 부서져도 이 물건은 털끝만치도 변동 없이 항상 있다. 크기로 말하면 가없는 허공의 몇 억만 배가 되어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래서 이 물건의 크기를 큰 바다에 비유하면, 시방의 넓고 넓은 허공은 바다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물거품과 같다. 또 일월日月보다 몇 억만 배나 더 밝은 광명으로써 항상 시방세계를 비추고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벗어난 이 절대적인 광명은 항상 우주 만물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성철스님(왼쪽)과 향곡스님. 해인사 백련암

 

이 물건은 모든 명상名相과 분별分別을 떠난 절대적인 것이다. 절대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지마는 부득이해서 절대라는 것이다. 한 물건이란 이름도 지을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한 물건이란 이름으로 표현하니, 한 물건이란 이름을 붙일 때 벌써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나타나서 억천만 겁이 다하도록 설명하려 해도 이 물건을 털끝만치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깨쳐서 쓸 따름이요, 남에게 설명도 못하고 전할 수도 없다.

 

이 물건을 깨친 사람은 부처라 하여, 생사고生死苦를 영원히 벗어나서 미래가 다하도록 자유자재한 것이다. 이 물건을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항상 생사바다에 헤매어 사생육도四生六途에(주1) 윤회하면서 억천만겁토록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중생이라도 다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 깨친 부처나 깨치지 못한 조그마한 벌레까지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다른 것은, 이 물건을 깨쳤느냐 못 깨쳤느냐에 있다. 석가와 달마도 이 물건은 눈을 들고 보지도 못하고, 입을 열어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 물건을 보려고 하면 석가도 눈이 멀고 달마도 눈이 먼다. 또 이 물건을 설명하려고 하면 부처와 조사가 다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오직 깨쳐서 자유자재하게 쓸 따름이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이 말씀하기를, ‘대장경은 모두 고름 닦아 버린 헌 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말하노니 “팔만대장경으로 사람을 살리려는 것은 비상砒霜으로 사람을 살리려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경전 가운데도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이 있으니, 대승경에서는 말하기를, “설사 비상을 사람에게 먹일지언정 소승경법小乘經法으로써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승경 역시 비상인 줄 왜 몰랐을까? 알면서도 부득이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크게 정신 차려야 한다.

 

오직 이 한물건만 믿는 것을 바른 신심信心이라 한다. 석가도 쓸 데 없고 달마도 쓸 데 없다. 팔만장경八萬藏經이란 다 무슨 잔소리인가? 오로지 이 한물건만 믿고 이것 깨치는 공부만 할 따름이요, 그 외에는 전부 외도며 마구니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염불 공덕으로 죽어 극락세계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쾌락을 받는데, 나는 이 한 물건 찾는 공부를 하다가 잘못되어 지옥에 떨어져 억천만겁토록 무한한 고통을 받더라도 조금도 후회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직 이 공부를 성취하고야 만다!” 이러한 결심이 아니면 도저히 이 공부는 성취하지 못한다. 고인은 말씀하기를,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는 사람이라야 공부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나는 말하노니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을 만한 무서운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이 공부 할 생각을 말아라.”고 하겠다.

 

천 근을 들려면 천 근을 들 힘이 필요하고, 만 근을 들려면 만 근을 들 힘이 필요하다. 열 근도 못 들 힘을 가지고 천 근 만 근을 들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힘이 부족하면 하루바삐 힘을 길러야 한다. 자기를 낳아 길러 준 가장 은혜 깊은 부모가 굶어서 길바닥에 엎어져 죽더라도 눈 한 번 거들떠보지 않는 무서운 마음, 이것이 고인의 결심이다. 제왕이 스승으로 모시려 하여도 목을 베이면 베였지 절대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고인의 지조이다.

 

사해四海의 부귀는 풀잎 끝의 이슬방울이요, 만승의 천자는 진흙 위의 똥덩이라는 이런 생각, 이런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꿈결 같은 세상 영화를 벗어나 영원불멸한 행복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털끝만한 이해로써 칼부림이 나는, 소위 지금의 공부인工夫人과는 하늘과 땅인 것이다.

 

다 떨어진 헌 누더기로 거품 같은 이 몸을 가리고 심산 토굴에서 감자나 심어 먹고 사는, 최저의 생활로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오직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하여 자나 깨나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해야 한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대는 도저히 성취하지 못한다.

 

사람 몸 얻기도 어렵고, 불법 만나기도 어렵다. 모든 불보살佛菩薩은 중생들이 항상 죄 짓는 것을 보고 잠시도 눈물 마를 때가 없다고 한다. 중생이란 알고도 죄 짓고 모르고도 죄 짓는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많이 지은 죄보罪報로 사생육도四生六途에 돌아다니며,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 몸 얻기란 사막에서 풀잎 얻는 것과 같다. 설사 사람 몸 얻게 된다 하더라도 워낙 죄업이 지중해서 불법 만나기란 더 어렵고 어렵다.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했건만, 아직껏 생사고를 면치 못한 것을 보면 불법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것이다.

 

이렇게 얻기 어려운 사람 몸을 얻어 더 한층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으니, 생명을 떼어 놓고 공부하여 속히 이 한물건을 깨쳐야 한다. 사람의 생명은 허망해서 믿을 수 없나니, 어른도 죽고, 아이도 죽고, 병든 사람도 죽고, 멀쩡한 사람도 죽는다. 어느 때 어떻게 죽을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니 어찌 공부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리오?

 

이 물건을 깨치기 전에 만약 죽게 된다면, 또 짐승이 될지, 새가 될지, 지옥으로 떨어질지, 어느 때 다시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나게 될지, 불법을 만나도 최상 최고의 길인 이 한물건 찾는 공부를 하게 될지, 참으로 발 뻗고 통곡할 일이다. 이다지도 얻기 어려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에 공부하여 이 몸을 건지리오. 제일도 노력, 제이 제삼도 노력, 노력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노력한 그만큼 성공하는 법이니,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2. 상주불멸[常住不滅,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사라지는 일이 없다]

 

부처님께서 도를 깨치시고 처음으로 외치시되, “기이하고 기이하다. 모든 중생이 다, 항상 있어 없어지지 않는〔常住不滅〕 불성을 가지고 있구나! 그것을 모르고 헛되이 헤매며 한없이 고생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주1)고 하셨다.

 

이 말씀이 허망한 우리 인간에게 영원불멸의 생명체가 있음을 선언한 첫 소식이다. 그리하여 암흑 속에 잠겼던 모든 생명이 영원한 구제의 길을 얻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으랴. 억만 겁이 다하도록 예배드리며 공양 올리고 찬탄하자.

 

영원히 빛나는 이 생명체도, 도를 닦아 그 광명을 발하기 전에는 항상 어두움에 가리어서 전후가 캄캄하다. 그리하여 몸을 바꾸게 되면 전생 일은 아주 잊어버리고 말아, 참다운 생명이 연속하여 없어지지 않는 줄을 모른다.

 

도를 깨치면 봉사가 눈뜬 때와 같아서 영원히 어둡지 않아, 천번 만번 몸을 바꾸어도 항상 밝아 있다. 눈뜨기 전에는 몸 바꿀 때 아주 죽는 줄 알지만, 눈뜬 후에는 항상 밝아 있으므로 몸 바꾸는 것이 산 사람 옷 바꿔 입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눈뜨기 전에는 항상 업에 끄달려 고苦만 받고 조금도 자유가 없지마는 눈을 뜨면 대자유와 대지혜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실생활에서 보면, 아무리 총명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도를 깨치기 전에는 잠이 깊이 들었을 때처럼 정신이 캄캄하여 죽은 사람같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도를 깨친 사람은 항상 밝아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잠을 자도 캄캄하고 어두운 일이 절대로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도를 깨쳤나를 시험하려면 잠을 자 보면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천하 없이 크게 깨친 것 같고 모든 불법 다 안 것 같아도, 잠잘 때 캄캄하면 참으로 바로 깨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큰 도인들이 여기에 대해서 가장 주의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명과 암을 초월한 절대적 광명이니, 곧 사물의 법성이며 불성의 자체이다.

 

상주불멸하는 법성을 깨치고 보면, 그 힘은 상상할 수도 없이 커서 비단 세속의 학자들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내가 말하는 법성은 깨치고 보면 다 알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나서서 천만 년이 다하도록 그 법성을 설명하려 하여도 털끝 하나만치도 설명하지 못할 만큼 신기하다. 시방허공이 넓지마는 법성의 넓이에 비교하면 법성은 크나큰 바다와 같고 시방허공은 바다 가운데 조그마한 거품 같다. 허공이 억천만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법성의 생명에 비교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하다.”고 하시니, 이것이 시방 모든 부처님의 설명이다. 이러한 거룩한 법을 닦게 되는 우리의 행복이란 어디다 비유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고인은 이 법문 한마디 들으려고 전신을 불살랐으니, 이 몸을 천만 번 불살라 부처님께 올려도 그 은혜는 천만 분의 일도 갚지 못할 것이다. 오직 부지런히 공부하여 어서 빨리 도를 깨칠 때, 비로소 부처님과 도인스님들의 은혜를 일시에 갚는 때이니 힘쓰고 힘써라!

 

3. 위법망구[爲法忘軀 , 진리를 위해서라면 내 육신을 생각지 않는다]  (주3)   

 

혜가 대사慧可大師     달마 대사達大師가 처음으로 법을 전하려고 중국에 가서 소림사 토굴 속에 들어가 9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그때 신광이란 스님이 있어 학식이 뛰어나 천하에 당할 사람이 없었다. 학문으로는 대도를 알 수 없는 줄을 알고 달마를 찾아가서 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섣달 한창 추운 계절인데, 하루는 뜰 밑에 서서 밤을 지나니 마침 눈이 와서 허리까지 묻혔다. 그래도 신광은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섰으니 달마대사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돌아보며 꾸짖었다.

 

“이 법은 참으로 무서운 결심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니, 너 같은 보잘것없는 신심으로 무엇 하겠느냐? 썩 물라가라!” 신광은 그 말을 듣자 칼을 들어 팔을 끊고는 달마대사에게 바치고 도를 구하는 결심을 표시했다. 달마 대사는 그제서야 머물기를 승낙하고 법을 가르치니, 신광은 나중에 법을 전한 유명한 2조 혜가대사이시다. (주4)

 

왕 화상王和尙     혜통 스님은 신라 사람이다. 그 당시 선무외 화상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법을 편다는 말을 듣고, 수륙만리를 멀다고 생각지 않고 신라에서 중국으로 선무외 화상을 찾아갔다. 가서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곡히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렇게 3년 동안이나 온갖 노력을 다하여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시종 거절하였다.

 

하루는 큰 쇠 화로에다 숯불을 가득 담아 그것을 이고 무외 스님의 방 옆에 가서 서 있었다. 화로가 달아서 머리가 익어 터지니 소리가 크게 났다. 무외 스님이 놀라서 나와 보고는 급히 화로를 내려놓고 물었다.

“왜 이러느냐?”

혜통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법을 배우러 천리만리를 멀다 않고 왔습니다. 만약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신다면 몸이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날아가면 갔지 죽은 송장으로는 절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무외 스님이 그 기개를 인정하여 터진 곳을 손으로 만져 합치고 법을 가르쳐 주기로 승낙하였다. 그리하여 혜통스님은 크게 성공해서 신라로 돌아와 많은 사람을 교화하였다. 

그 후 머리가 나은 곳에 큰 흉터가 졌는데, 왕王자 모양이 되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왕화상이라고 불렀다. (주5)

 

포모 시자布毛侍者     초현통招賢通 선사는 당나라 때 사람이다. 젊었을 때 육관 대사 벼슬을 하다가 홀연히 지상의 허망을 깨달아 벼슬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그 당시 나무 위에 새집처럼 집을 짓고 사는 이가 있었으니, 유명한 조과선사이다. 

찾아가 “법을 배우겠습니다.” 하니 스님은 절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도 남아서 모든 시봉을 하며 날마다 가르침을 지성으로 빌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법을 가르쳐 줄까 기다리다가, 세월은 흘러서 16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조과 선사는 한 말도 일러주지 않았다.

그쯤 되니 하도 기가 막혀서 그만 가려고 하니 그제야 조과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다른 곳으로 불법을 배우러 가렵니다.”

“불법 같으면 나에게 조금은 있다.”

하며 포모를 들고 확 부니, 그것을 보고 초현은 확철히 깨쳤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시봉하다가 나중에 세간에 나아가 큰 도인이 되었으니, 그를 세상에서는 포모 시자라 불렀다.(주6)

 

자명 선사慈明禪師

자명 선사는 임제종의 대표적인 도인이다. 분양 화상 밑에서 지내면서 추운 겨울에도 밤낮으로 정진하였는데, 밤이 되어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다리를 찌르며 탄식하였다. “고인은 도를 위하여 먹지도 아니하고 자지도 않았거늘, 나는 또한 어떤 놈이기에 게으르고 방종하여 살아서는 때에 보탬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이름 없으니 너는 무엇 하는 놈이냐?”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공부하더니, 후에 크게 깨쳐 분양 선사의 도풍을 크게 떨쳤다. (주7)

 

불등 선사佛燈禪師

불등선사는 불감 스님 밑에서 지낼 때에 하도 공부가 되지 않아서, 크게 분심을 내었다. “만약 내가 금생에 철저히 깨치지 못하면 맹세코 자리에 눕지 않겠다.” 이렇게 작정하고, 49일 간을 조금도 앉지 않고 선 채로 공부하여 마침내 크게 깨쳤다. (주8)

 

도안 선사道安禪師

도안 선사는 중국의 진나라 때 사람이니, 천고千古에 드문 천재였으나 도를 깨치려고 홀로 20년 간 방에 들어앉아서 죽을힘을 다하여 공부한 끝에 마침내 깨쳤다.

 

이암 선사伊庵禪師

이암권 선사는 공부할 적에, 해가 지면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또 이렇게 헛되이 보냈구나!”하며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리하여 누구와도 절대로 말을 건네지 않고 지내며 정진하였다.(주9)

 

주)

주1) 사생(四生)이란 태란습화(胎卵濕化)로서 생명이 태어나는 네 가지 유형을 말하며, 육도(六途)란 지옥, 악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갈래의 세계를 말한다.

주2)인용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는 경전 구절은 없다. 스님께서는 여러 경전에 등장하는 내용을 종합하여 한 문장으로 축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인용한 내용과 상통하는 경문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이다. “奇哉奇哉! 云何如來具足智慧在於身中而不知見. 我當教彼眾生覺悟聖道, 悉令永離妄想顛倒垢縛, 具見如來智慧在其身內與佛無異.” (『대방광불화엄경』, T9, p.624a. T는 『대정신수대장경』을, a는 상단을 가리킨다. 이하 동일.)

주3) 법法을 위해 육신의 안위를 잊는다는 뜻이다. 한 구절의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에게 몸을 던진 설산 동자雪山童子의 이야기는 위법망구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아가 “피부를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갈아 붓을 삼고,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 경전을 베껴 쓰기를 수미산만큼 하더라도 법을 소중히 여기므로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剝皮為紙, 折骨為筆, 刺血為墨, 書寫經典, 積如須彌, 為重法故, 不惜身命].”는 『보현행원품』의 내용 역시 위법망구의 정신을 담고 있다.

주4) 눈 내리는 날 밤 문밖에 서서 팔을 잘라 도를 구했다는 고화古話의 내용으로 ‘단비구법斷臂求法’, ‘설중단비雪中斷臂’, ‘혜가단비慧可斷臂’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주5) 『삼국유사』(『한국불교전서』 제6권, p.245a)에 수록된 ‘혜통항룡惠通降龍’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6) 『불조역대통재』(T49, p.621b) 등 여러 전등사서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주7) 『박산무이대사어록집요』(J27권, p.422c), “如慈明大師夜欲將睡, 用引錐刺之. 又云: ‘古人為道, 不食不寢, 予何人耶?’”

주8) 『속전등록』(T51, p.666c)에 불등 선사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주9) 『속전등록』(T51, p.704c)에 이암유권 선사와 관련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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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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