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진화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전체 기사 >

월간고경

[교리와 사상]
생명과 진화


페이지 정보

양형진  /  2020 년 8 월 [통권 제88호]  /     /  작성일20-08-28 12:09  /   조회6,519회  /   댓글0건

본문

  우리나라에는 경상북도에서 평안남도에 이르기까지 석회암 지역이 널리 퍼져 있다. 고생대의 바다 생명체가 죽어 퇴적된 것이 석회암이기 때문에, 석회암이 형성됐던 시기에는 이 지역이 얕고 따듯한 바다였어야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석회암 지대는 적도를 중심으로 저위도 지역에 위치한다.  

 

 지각변동

 

  다른 석회암 지대와 달리 현재의 한반도는 중위도에 있지만, 석회암이 형성될 당시에는 한반도가 적도 부근의 얕고 따듯한 바다였을 것이다. 그래야 그곳에 석회암을 만드는 해양생물이 살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강원도에서 나오는 삼엽충 화석이다.

 

  이는 한반도가 적도 부근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동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퇴적암이나 화성암에는 자성 광물이 들어 있는데, 이 안에 남아있는 고지자기의 흔적을 측정하면 이런 지표면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한반도는 3억 6천만 년 전의 석탄기까지 남위 5도에 있었고, 2억 8천만 년 전의 페름기에는 북위 6도까지 이동했으며 쥐라기에 이르러 현재의 위도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런 지각 이동에 의한 변화는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고산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쪽으로 이동하는 아프리카 대륙이 유럽 대륙과 충돌하면서 밀어 올린 게 알프스산맥이고 인도-호주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이 충돌하면서 밀어 올린 게 히말라야산맥이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에서 암모나이트 화석이 나온다. 이는 그 높은 지역이 과거에는 바다였음을 말해 준다. 히말라야와 알프스를 밀어 올리는 대륙의 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서 이들 산맥은 아직도 조금씩 높아진다고 한다.

 

  생명과 우주만 진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도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이런 변화는 지각의 이동과 산맥의 형성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 대기의 변화는 더욱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숨쉬기에 적당한 지구

 

  태양계에는 8개의 행성과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이 있다. 이들은 뉴턴의 운동법칙에 의해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따라 공전한다. 행성은 이심율이 0에 가까운 원과 비슷한 타원궤도를 돌고, 혜성은 이심율이 큰 찌그러진 타원궤도를 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들이 거의 같은 평면 위에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 회전한다는 것이다. 태양계의 모든 천체의 공전 평면은 5도 이하의 차이가 날 뿐이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방향으로 모든 행성과 혜성과 위성이 공전한다. 이는 뉴턴의 중력법칙이나 운동법칙에 의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현상이 아니다. 물리법칙에 의하면 행성은 서로 다른 평면을 공전할 수도 있고, 같은 평면이라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할 수도 있다.

 

  공전 평면이 비슷하고 회전 방향이 같다는 것은 아마도 태양계의 구성원이 태양계의 형성 초기의 상황을 모두 함께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겨난다. 그들이 모두 같이 형성됐다면, 그들의 대기도 공전궤도처럼 서로 비슷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구는 다른 모든 행성과 전혀 다르다. 현재의 지구 대기에는 우리가 숨쉬기에 적당한 농도인 21%의 산소가 존재한다. 이산화탄소는 다른 행성에 비해 아주 소량 존재한다. 이와 달리 다른 행성에는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주성분이고 산소는 거의 없다. 지구 대기는 왜 다른 행성과 다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 대기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살펴보자.

 

이산화탄소

 

  원시지구의 대기는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이었으나, 오늘날 지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0.04%의 부피를 차지할 뿐이다. 이산화탄소는 산소 호흡을 하는 모든 생명체에서 발생하며, 나무나 화석 연료를 태우는 과정이나 화산의 폭발 등에서도 발생한다. 그리고 엽록소를 가진 생명체의 탄소동화작용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5억 년 전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의 20배에 이르렀으며, 쥬라기에 이르러 지금의 4-5배로 감소했고 그 이후 천천히 감소하여 지금의 농도에 이르렀다. 원시대기의 주성분이던 이산화탄소는 바닷속에서 이산화탄소를 석회암으로 만드는 작업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면서 감소했다.

 

  지상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석회암층은 35억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석회암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생명체가 강장동물인 원시 산호와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를 만들어내는 원시 녹조류 등이다. 이들은 바닷물 속에 녹아있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탄산칼슘을 만들어냈고, 이를 이용하여 그들의 단단한 골격을 형성했다. 원시바다에서 엄청난 군락을 이뤘던 이들은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석회암으로 바꿔 지구대기의 성분을 현저하게 바꿨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실효과가 줄어들면서 현재의 대기 온도에 이르게 됐다.

 

  생명이 살기에 알맞은 지구 환경은 40억 년 전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억 년 동안 생명이 만든 것이다. 생명은 주어진 지구 환경에 그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생명이 지구를 바꿨다. 생명이 지구를 진화시켰다. 이산화탄소보다 더 극적인 지구 대기의 변화는 산소다.

 

 산소, 지구 생명이 만들어 낸 대기

 

  태양계의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원시 지구의 대기에도 산소는 없었다. 그러므로 산소분자가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흡수하면서 형성되는 대기권 상층부의 온존층도 존재할 수 없었다.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자외선이 오존층과 산소분자에 흡수되지 않고 지상에 도달했으므로, 생명체가 지상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원시지구의 지상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강력한 자외선이 걸러지는 바닷물 속에서만 살 수 있었다. 선캄브리아기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에 의하면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났던 시기는 38억 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지구상에 나타났던 초기 미생물의 하나인 남세균cyanobacteria이 퇴적돼서 층상의 줄무늬 모양으로 퇴적된 화석을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고 하는데, 호주 서부의 샤크만을 비롯하여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다.

 

  남세균 같은 원시 생명체가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사건은 지구와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이 탄소동화작용을 하면서 방출한 산소에 의해 지구와 지구 생명의 역사는 극적으로 변했다. 이들이 만들어 낸 산소는 처음에는 바다에 녹아있던 철 이온을 산화시켜 산화철을 만들었다. 오늘날 존재하는 철광석 산지의 대부분은 이때 만들어진 산화철이 퇴적된 것이다. 바닷물에 녹아있던 철 이온을 모두 산화시킨 후에도 광합성이 계속됐고, 계속 생산된 산소는 오랫동안 지구 대기층에 축적됐다. 

 

  25억 년 이전의 지구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으므로, 산소 호흡을 하는 생명체도 없었다. 그 당시의 생물은 모두 혐기성anaerobic 미생물이었으며, 이들에게 산소는 유독 가스였다. 대기 중에 산소가 풍부해지면서 혐기성 미생물의 대부분은 멸종됐다. 이는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가장 규모가 큰 대멸종일 것이다.

 

  혐기성 생명체는 멸종했지만, 산소가 풍부해진 상황을 활용하여 신진대사의 과정에서 산소를 호흡에 이용하는 생명체가 생겨났다. 산소를 이용하는 신진대사는 무산소 대사와 비교하여 대단히 에너지 효율이 높다. 활성산소에서 보듯이 산소는 산소 호흡을 하는 생명체에게도 위험한 것이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생명 세계는 에너지의 효율성을 택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생명체의 대부분은 모두 이 선택의 후예다. 산소를 싫어하는 생명에서 산소를 활용하는 생명으로 진화함으로써, 생명 세계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생명만 진화한 게 아니라, 지구도 함께 변화했다. 대기 중에 산소가 풍부해지면서 대기 상층부인 성층권에 오존층이 형성됐다. 자외선이 산소분자를 분리하여 두 개의 산소 원자를 만들고, 이들이 정상적인 산소분자와 결합하여 오존을 형성한다. 현재의 지구 대기에는 40km 두께의 오존층이 형성돼 있다. 이 오존층이 자외선을 비롯하여 짧은 파장의 고에너지 태양광선을 흡수하면서 지표면을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바다에만 존재했던 생명체가 4억3천만 년 전에 육지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지구, 생명이 만들어 낸 생명의 땅

 

  이삼천 억 개의 별이 존재하는 우리 은하 안의 어딘가에는 분명히 생명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태양계 안에서는 오직 지구에만 생명이 있는 것 같다. 지구상에서 진행된 생명 진화의 역사는 변할 수 없는 고정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명체가 자신의 속성을 변화시켜 간 과정이 아니다. 생명 세계만 진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 진화의 과정을 통해, 원시지구에 없던 산소가 풍부해졌고 원시대기에 많았던 이산화탄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게 변했다. 이는 생명이 지구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지구 환경은 생명이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생명과 항성이 진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생명의 역사는 생명 세계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인 지구도 함께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생명을 포함하는 그 전체가 진화한다는 것이며, 생명만 무상이고 무아인 게 아니라 생명을 둘러싼 그 전체가 무아이고 무상이라는 것이다. 무아이고 무상인 존재자들이 같이 어우러져 진화해 가는 무한한 연기의 세계가 생명과 지구와 우주 전체다.

 

  40억 년 동안 진행된 이 연기의 과정을 통해 바닷속뿐 아니라 지상 전체를 생명의 무대로 만드는 기적이 이뤄졌다. 지구는 그냥 주어진 생명의 무대가 아니다. 지구는 생명이 만들어 낸 생명의 땅이다.

 


경주 남산 선각육존불. 통일신라.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양형진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