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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 산책]
절에는 밥 먹으러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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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  1997 년 12 월 [통권 제8호]  /     /  작성일20-05-29 10:20  /   조회8,7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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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연말에는 좋은 사람들과 경상도 지방의 명산대찰을 관람하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밥 먹으면서도, 차 타고 다니면서도, 술 먹으면서도, 자기 전에도, 시작도 끝도 없었다. 자잘한 이야기에서 전 우주를 휘감을 만한 이야기까지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이렇게 여행 중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으로 뜻밖의 경험을 하는 수가 많다. 딱히 어떤 주제를 내걸고 그것만 말해야 할 것도 없고, 그저 느끼는 대로 주고받을 뿐이다. 집을 떠나왔기 때문에 시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밤새워 이야기하다 늦잠을 자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차창 밖 풍경이 바뀌듯 이야기의 주제가 달라져도 좋고, 이야기의 앞뒤가 이어지지 않아도 좋다.

 

 


 

 

도시 생활에서는 시시콜콜할 것만 같은 이야기도 주변 환경이 달라진 탓인지 새삼스럽다. 분위기에 휩싸여 나도 덩달아 이말 저말 많이 했다. 그런데 말할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껄였는데, 며칠 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돌이키다 보니 소스라쳐진다.

 

2.

통도사에서 점심 공양을 들면서 절 밥 이야기가 나왔다. 언제 먹어도 절 밥은 맛있다. 저마다 절 밥맛 경험을 풀어놓았다. 나는 이런 이기를 했다. 물론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 친구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였다.

 

내 친구 세 명이 절에 갔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불교를 접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교리에 심취한 신참이었고, 한 명은 교리를 따로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집안에서 오래 전부터 절에 다녀 절 분위기에 친숙한 구참이었다. 구참인 친구가 신참 친구에게 “너 왜 절에 가는지 아냐?”고 물었다. 신참 친구는 서슴없이 대답하기를 “도 닦으러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만 구참 친구는 그게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단다. 신참 친구가 의아해서 구참 친구에게 “그럼, 왜 절에 가는 거냐?”고 물었다. 구참 친구 대답 왈 “절에 왜 가느냐 하면, 밥 먹으러 가는 거다”라고 했다.

 

당시 절 밥 이야기로 저마다의 경험을 털어놓는 분위기에 휩싸여 한 말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텔레비전으로 제야의 종소리를 듣다가, 그 때 한 이야기가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절에는 밥 먹으러 가는 거다.” 이 말을 한 구참 친구가 어떤 심정에서 이렇게 말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가 구참 친구의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예나 제나 ‘깨달음’, ‘도’, ‘부처’ 등을 높이 친다. 뿐만 아니라 세속의 일은 부질없고 출세간의 수도를 우러른다. 그러다 보니 자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세속의 일이란 가치 없는 것으로 멀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성을 떠나 도를 구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선사들은 간절히 말한다. “절에는 밥 먹으러 가는 거다”라고 말한 구참의 말이 나에게는 눈 밝은 선사의 말로 들렸다.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다”는 말도 저간의 소식을 전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마조스님이 즐겨 쓰시는 “평상의 마음이 그대로 도이다”는 말도 역시 그런 뜻이다. 행주좌와에 어묵동정하고 물 긷고 나무하는 일상생활을 떠나 따로 다른 어떤 세계에 깨달음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임제스님이 “내 앞에서 설법을 듣는 그대가 바로 부처이다. 왜 이 사실을 모르고 밖에서 찾느냐?”고 질책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설명하자면, 일체 모든 표상은 모두 청정한 진여자성 위에서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진여의 바탕은 변함이 없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이것을 바람, 파도, 물의 적시는 성질로 비유한다. 잔잔한 바다에 바람이 불어 갖가지 파도가 생겼다 사라졌다 하더라도 물의 적시는 성질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온갖 모양의 모든 파도에 적시는 성질이 있다. 이렇듯 번뇌 망상 때문에 표상이 생기지만 진여자성의 청정하고 원만한 덕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갖가지 망상 속에는 진여자성이 작용한다. 망상 번뇌가 없으면 진여자성은 자기동일성만 유지되어 설명되거나 인식될 수 없다. 망상이 사라져 진여자성이 오롯이 드러난 상태는 사량분별하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도가 어디 특별한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도 닦으러 절에 간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삼시 세끼 밥 먹는 그런 일상성 속에 바로 도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자. 이렇게 방향을 돌려주는 말이 구참이 전해 준 “절에는 밥 먹으러 가는 거다”의 참 뜻이리라. 구참의 이 말은 나에게 기상천외의 소식으로 들렸다. 차가운 밤하늘을 나는 외기러기의 외마디 울음소리가 온 천지에 삼동(三冬)이 깊었음을 들려주듯, 그렇게 싸늘하고 함축적인 뉴스였다.

 

3.

최근 수년 동안 우리 사회는 이른바 거대담론이 성행했다. 역사법칙이 어떠니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어떠니, 또는 이성이 어떠니 주체가 어떠니 하는 등의 큰 소리 많이 해왔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는 개별적이고 구체적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흘려버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부처될 종자가 있다. 그런데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선 어록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만 해도 그 인간 속에 나 자신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못했다. 언제나 나는 빼놓고 남들만 인간인 줄 알았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내가 어리석은 탓도 있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거대담론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구체적인 나를 잊었다.

 

절 주변에도 거대한 담론이 사회 못잖게 뺨친다. 입만 열면 열반이 어떻고, 정토가 어떻고, 깨달음이 어떻고, 부처가 어떻고,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어떻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이런 거대 담론은 중국에서는 천태종이나 화엄종이 번성했을 때에 극성했다. 그러나 눈 밝은 선사스님네들은 이런 거대 담론을 대단히 경계하였다.

 

백장선사가 하루는 조용히 법당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법당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것을 보던 시자스님이 이상하게 여겨 여쭈었다. “큰스님이 어찌 신성하고 깨끗한 법당에 더러운 침을 뱉습니까?” 이에 대한 백장선사의 대답은 자못 냉엄하다. “조용하게 앉아 있다 보니, 깨달음이니 열반이니 하는 생각이 살며시 고개를 들더라. 이런 생각이 나는 나 자신이 싫어서 침을 뱉었다.” 선사들은 구체성과 일상성을 초월한 공허한 개념들로 엮어진 거대한 담론들을 거부한다. 백장선사의 이런 정신은 그의 스승 마조선사의 일상성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사상을 올곧게 이은 것이다.

 

세월은 좀 뒤지지만 이런 정신은 운문선사에게도 이어진다. 하루는 어떤 객승이 “부처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운문선사의 대답은 독하다. “부처라고, 무슨 마른 똥 덩어리 같은 소리냐!” 또 한 번은 어떤 객승이 이렇게 물었다.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운문선사는 대뜸 이렇게 답한다. “호떡.” 이 말을 노골적으로 풀어 보면 “엿 먹어라”이다. 깨달음이나 부처가 어디 특별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지껄이는 ‘주둥이’에 호떡을 물리는 것이다. 엿이 입에 붙어서 아무 말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상이 갈 것이다.

 

예나 제나 유성처럼 떠다니며 틀에 박힌 폼나는 질문으로 진솔하고 소박하게 사는 수행자를 괴롭히는 논객들이 있었다. 그네들은 툭하면 “달마선사가 인도에서 온 이유가 무엇인가?”라든가, “입을 닫고 한 마디 해봐라”라든가, “불법의 핵심을 말해 봐라”는 등의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큰 소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굶주린 고양이 쥐 생각하듯 바람난 처녀 님 생각하듯, 화두에 한 생각 사무쳤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엄청난 소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선 어록에서 많은 선사들이 그렇게 가르친다.

 

4.

1998년 정월 아흐렛날은 마석 보광사 주지 화담스님의 49재이다. 채식을 주로 하시는 스님들에게 걸리기 쉽다는 장암이 원인이 되어 그렇게 되었단다. 세속의 정에 매여 사는 나에게는 눈물겹다. 운악산 봉선사에서 스님을 처음 뵌 것은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 큰 절 살림을 맡아 지금의 봉선사를 만드시는데 애 많이 쓰셨다. 어느 모로 보나 꼭 가야 할 자리인데 대학 입학시험 관계로 가지 못하고 옛 추억만 더듬을 뿐이다.

 

그러니까 80년대 초반이었다. 초파일 저녁이었다. 총무 소임을 맡았던 화담스님께서는 절에 들어온 보시금을 한곳에 모아 돈을 세었다. 그 곳에는 선방에서 참선하다 온 수좌스님들도 몇 분 계셨다. 수좌스님 중의 한 분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하기를 “삭발 염의한 목적은 ‘한소식’하려는 것인데, 중이 되어 돈이나 만지는군. 다 버리고 우리와 함께 참선하러 가세”했다.

 

옆에 있던 나는 순간 긴장했다. 말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옳은 말이다. 그래, 그렇다. 부모 형제 모두 버리고 입산 출가한 뜻은 위 없는 깨달음을 깨쳐 윤회와 고통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 말을 거역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총무스님의 반응은 기상천외였다. 만원 짜리 지폐를 세던 손을 잠깐 멈추시더니만, 태연히 지폐를 한 장 한 장 넘기시면서 “백만 원이요, 이 백만 원이요, 삼 백만 원이요, 사 백만 원이요, 오 백만 원이요, 육 백만 원이요, …………” 이렇게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수좌스님들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세속과 산속을 엄격히 나누고 일상성을 떠난 ‘한 소식’에 얽매여서야 어찌 무심 수행이 될 수 있을까? 평상심이 도라는 마조스님의 법문이 거기에 재현된 듯했다. 세속에 살면서도 무심하게 지내던 당시 화담스님의 모습은 일면불 월면불 처럼 영원할 것이다. 마치 절에는 밥 먹으러 가는 거다는 말처럼, 평상의 모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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