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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포교에 바친 순수와 열정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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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순  /  1998 년 3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9,2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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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정인사 어린이교사회 곽인철 회장 

 

봄빛이 완연한 김해 공항로를 따라 마산 시내로 들어서는 길, 바닷 바람을 등지고 선 들판 둔덕에 봄빛이 푸르다. 봄 바라기를 하는 양 듬성하게 선 동백 무리의 빨간 꽃잎이 마냥 곱다. 다시는 생명 있는 것들을 품어낼 수 없을 것 같던 거친 겨울 땅이 어느새 그렇게 기적을 일으켜 놓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산자락 그늘 한 켠에는 잔설이 누워 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마산 시내에서도 여지없이 많은 수의 십자가들을 만났다.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를 전혀 무시한 채 삐죽이 솟구쳐 위용을 뽐내는 모습이 조금 전 리무진 버스 안에서의 그들을 떠오르게 했다. 이름 대면 알 만한 모 개그맨과 일행은 내내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선교 얘기를 떠들어댔다. 어디서든 그리도 당당하기만 한 그들, 그리고 밤하늘에서 더욱 붉게 빛날 그들의 상징.

 

이 땅의 묘목인 아이들

 

가끔 아는 불자들로부터 자기가 사는 주변의 불교 유치원이나 어린이법회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리고 기자는 불교 일을 하고 있다는 죄(?) 아닌 죄로 뒤따르는 그들의 푸념을 들어 줘야 할 때가 많다. 불교계가 운영하는 곳에 보내려 해도 마땅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타종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 놓고는 속을 끓이는 부모를 여럿 보았다.

 

 

정인사 어린이회 화이팅! V자를 그려보이는 어린이 불자님들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간혹 책임자를 찾아가 자신이 불자임을 밝히며 절대로 종교 교육은 시키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야무진 부모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흰 백지에 그리는 그림처럼 선명하게 아이들의 심성에 끼쳐질 영향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못해 죄인 심정이 아닐 수 없다. 많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불교계의 어린이 포교 현황이다.

 

마산 정인사(주지 : 원행스님) 어린이교사회 회장 곽인철(33세, 중리종합사회복지관 총무과장)씨는 이런 불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이런 불교계 현실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사는 젊은이이다.

 

그이가 어린이법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 근세의 걸출한 선승 경허 선사의 삶을 책 속에서 만난 후부터이다. 동학사에서 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경허 선사는 한양 상경 길에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한다. 충격을 받은 선사는 자신이 쌓아온 강백으로서의 명성과, 백성들의 삶을 외면한 수행에 허망함을 느끼고는 백성들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었다.

 

“종교인으로서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 경허스님처럼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어린이들 생각이 났죠. 불교의 미래는 어린이들에게 달렸는데, 묘목을 심고 가꾸지 않으면서 어찌 튼실한 목재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1인 3역, 일년 중 성탄절만 쉬는 남자

 

경남 마산시 회원구 양덕1동 주택가의 정인사에서 ‘89년에 어린이법회를 맡기 시작한지 십년째, 현재 이곳에서 80여 명의 어린이 불자와 40여 명의 중․고등부 회원들이 곽선생의 지도를 받고 있다.

개원 초기 천막 법회 때부터 신행의 터전이었던 정인사를 자신의 원력 실천 도량으로 삼은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이의 뜻에 공감하는 주지 원행스님의 밝은 눈이 아니었으면 오늘날까지 그 의지를 실천해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곽선생의 일터는 통도사 자비원에서 운영하는 중리종합사회복지관(관장 : 진홍스님). 지난 ‘94년 개관 때부터 일해 왔는데, 이 복지관 총무관장이 그이의 직함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일반 직장에 다니던 그이가 복지관 일을 하게 된 일화는 마산 불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관장 스님이 여러 사람에게 같이 일할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부탁받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사람을 추천했다. 바로 곽인철 씨였다.

 

곽선생은 복지관 일을 어린이 법회 일만큼이나 좋아한다. 불교사회 사업의 활성화를 기대하는 그이로서 복지관 일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월급까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직업이다. 게다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꼬박 절에 바쳐야 하는 그의 일을 인정해 주니, 더 이상의 복이 없다. 작년, 경남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일에 대한 고마움과 자부심 때문이다.

 

그이는 지난 ‘95년에 해인불교학생회(정인사 중․고등부)를 발족시켰다. 어린이불교학교를 마친 아이들을 위해 당연히 있어야 할 조직인데, 지도교사가 없어서 또 그의 몫으로 남았다. 이 법회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있고, 어린이법회가 일요일 오전 11시이니 토요일과 일요일은 고스란히 정인사에 반납한 셈이다. 법회가 끝나면 곧이어 지도교사 회의를 열어 다음 법회 지도안을 토론하고 결정한다. 생각 같아서는 웬만큼 체계가 잡힌 어린이법회는 후배 교사들에게 맡기고 중․고등부에만 전력하고 싶은데, 아직 손을 놓을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대학원과 직장, 그리고 중․고등부 및 어린이법회 지도교사의 1인 3역을 맡은 그이가 일년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날은 성탄절뿐이다.

 

교사 없이 문 닫는 곳 허다한 어린이법회

 

서른세 살, 꽉 찬 나이의 노총각 곽선생은 “왜, 아직 장가를 안 가셨어요?”라는 짓궂은 물음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수줍어한다. 외모도 여리여리해서 말썽부리는 개구쟁이들에게 큰소리 한번 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게다가 10여 명의 지도교사를 통솔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을 터인데.

그러나 주위의 평은 달랐다. “겉은 야리해 보여도 결단성이 보통 아니다.”는 것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지구력이 있으며,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까닭에 후배들의 잘 따르고 선배와 스님들도 그이를 무조건 신뢰한다는 귀띔이다.

 

 

정인사 어린이처럼 맑고 고운 눈망울을 지닌 선생님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곽인철 회장이다.

 

 

그이는 어린이들이 술이나 담배 냄새를 금방 알아채고 싫어하는 것을 알고는 망설임 없이 담배를 끊었다. 어차피 술은 마실 시간이 없고, 토요일과 일요일 모임에 불참하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불문율로 인정받고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토요일과 일요일은 황금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교사 확보가 제일 어려워요. 한두 번 나오다가 그만두는 사람이 대다숩니다. 지도교사가 없어서 어린이나 소년 법회가 없어지는 곳이 열 곳 중 세 곳은 돼요. 참으로 기막힌 현실입니다.”

 

마산에만도 그렇게 문 닫은 어린이법회가 근래 세 군데나 된다. 어린이법회 지도교사가 되려면 최소한 2년은 보조 교사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빠지지 않고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교육 프로그램의 부족이나 대우도 어린이법회의 걸림돌이다. 대다수 절이 지도교사를 자원봉사자로 메꾸려 하는 실정이니 교사로 나서는 이가 귀하다.

 

그러나 곽선생이 이끄는 정인사 어린이교사회는 이 어려움이 남의 일일 뿐이다. 어린이법회 출신의 교사들이 곽선생의 지도 아래 10여 명이나 확보되어 있고, 주지 스님의 배려로 이들에게 적은 금액이나마 장학금 형식으로 지원이 되고 있다.

 

후배들의 수고 덜어주고 싶어

 

곽선생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보통 새벽 2시경. 쪼갤 수 있는 건 잠자는 시간뿐이다. 그래도 처음 어린이법회 일에 뛰어들었을 때보다 많이 게을러졌다고 자책한다. 대한불교 어린이지도자연합회가 구성되어 있긴 하나 일년에 한두 번 교육에 그치는 형평이어서니 모든 걸 독학으로 해결해야 했다. 새벽과 저녁 시간에 학원을 다니며 놀이 지도법을 배웠고, 관련 책들을 사서 홀로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생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후배 교사들에게는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마산과 창원의 젊은 불자들 모임인 ‘선우’는 그런 취지로 만들어졌다. 어린이 법회 프로그램 연구와 그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뜻을 모아준 도반들이 고맙기만 하다. 좀 더 젊은 후배들에게 교사일을 물려주고, 자신은 선우 일로써 뒷바라지를 해주는 게 이제 남은 그의 바람이다.

 

쉬는 날을 아껴 두었다가 여름 수련회며 캠프며에 다 써버리고 나면, 개인 휴가는 꿈도 못 꾼다는 곽인철 회장. ‘데이트할 시간도 없는 남자’라는 주위의 설명이 없어도, 그가 아직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어디, 잘 생긴 외모로나 불교를 위한 순수한 열정으로나 어느 한구석 부족한 데가 없는 이 노총각을 잘 이해하고 따뜻이 감싸줄 좋은 신부감 없을까. 그이처럼 소리 없는 이들의 갸륵한 수고와 정성이 값지게 인정받는 날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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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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