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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체험기]
눈 감아도 세상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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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순  /  1997 년 9 월 [통권 제7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7,5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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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 / 참불공하는 사람들

노희순 / 월간 봉은 편집장

 

열심히 기도하고 부처님 전에 불공만 드린다고 이 땅에 정토가 이루어질까? 정토세계는 몸과 마음으로 실현하려는 이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우리가 우리만을 위한 삶에 매몰되어 있을 때, 틈틈이 남을 위해 작지만 큰일에 자신의 시간을 묵묵히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난은 그런 이들을 소개하여, 마음은 있으되 실천을 망설이는 이들과 그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상(相)내지 않으려는 상’마저 버리고 이 취재에 응해준 이들께 감사드린다.

 

 

 
손녀딸에게 하듯이 스스럼 없이 등을 내미는 할머니

 

 

발음조차 쉽지 않은 ‘엘리뇨’ 현상이 세계 환경학자들의 근심 덩어리가 되고 있다. 해마다 높아지는 지구의 온도는 남극과 북극의 빙하까지 녹이고, 사람들의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는 양 올여름 온도계의 키를 한껏 높였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편리만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들의 이기심이 빚어낸 인과인 것이다.

 

그 지독한 여름의 끝물인 8월의 넷째 주 토요일, “저희 이름이나 얼굴, 안 내시는 거죠?!”라는 몇 번의 다짐 끝에야 겨우 허락해 준 동행길. 첫 취재부터 빼는(?) 취재원을 만났다는 사실이 상(相)내지 않으려는 이들을 독자 앞에 세워야 할 어려움에 대한 예고 같았다.

 

사년째의 익숙한 만남 

 

경기도 성남의 무의탁노인 시설 사회복지법인 자광원(원장 : 김정자) 앞마당. 그늘에 앉아 있던 노인들이 차에서 내리는 우리의 주인공들을 맞는 표정이 이채롭다. 손을 흔들거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하는 게 인사의 전부였다. 뛰어와 반기는 이도 없고 깍듯이 사무적으로 대하는 이도 없다. 잠시 외출하고 돌아온 가족을 맞는 익숙함과 친근함일 뿐, 자신들을 도우러 온 봉사자들에 대한 겉치레 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할머니, 허리는 괜찮으세요?”

모임의 맏이인 H병원 물리치료사 한 분이 한 할머니께 인사를 건넨다.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다른 물리치료사와 오늘이 세 번째 방문인 막내 선생, 그리고 서예학원을 하는 선생인 등, 모두 네 명의 여성들이 집안을 챙기는 살림꾼처럼 익숙한 몸짓으로 물리치료기 앞으로 다가간다.

 

뚜껑을 열자 찜질팩 찌는 기계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김이 금세 온몸에 땀을 돋게 한다. 자광원측에서 미리 전기선을 연결해 찜질팩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회원들은 사무실에 들르거나 직원을 찾는 등의 절차를 모두 생략한 채 팩을 건져 큰 수건에 싸안고 뿔뿔이 각 방으로 향한다. 그 모습들이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특별한 물리치료 기술은 필요없다. 누구나 약간의 지도만 받으면 된다. 

노인들에 대한 애정만 있으면 되는 일...

 

 

“이 방에 찜질할 분 계세요?”
1층 할머니들 방과 2층의 할아버지들 방을 계속 드나들며 만만치 않은 찜질팩의 무게에 회원들의 이마에는 땀과 힘줄이 선다. 그들의 방문을 무심히 맞으며 찜질하고 싶은 노인들은 손녀딸에게 그러듯 허리나 다리를 스스럼없이 내민다. 

 

“휴가는 다녀왔수?”
“폭풍 때문에 못 갔어요, 할머니. ”
한 달간 밀린 대화가 방마다 정겹다. 비록 무뚝뚝하긴 해도 4년째 낯익은 사이도 있으니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보다 더 속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네 명이 5~60명의 노인들을 나누어 맡다 보면 한 방에만 오래 머물 수는 없는 일, 총총거리며 1, 2층을 오르내리는 일은 막노동이나 다름없다.

 

 

회원들은 찜질을 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 들어온 분은 없는지 또는 한 달 사이에 안 보이는 분은 없는지 눈치껏 살핀다. 혹시 누가 안 보여도 묻지 않는 게 이곳의 불문율이다. 십중팔구는 세상을 뜨셨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인들이기도 하거니와 이곳에는 몸이나 정신이 성치 않은 분들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한 팀만 더 생겼으면

 

“계속 치료를 받던 할머니나 할아버지께서 안 보일 때 제일 가슴이 아파요. 그분들의 외로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예요. 노인 문제 중 가장 절실한 게 애정 결핍이라고 하잖아요. 가족이 있는 사람들도 그럴 정도인데 이런 곳에 사는 분들이야 더 말할 게 있겠어요?”

 

가장 좋은 해결책은 한 팀이라도 더 만들어 자주 노인들을 치료해 주고 말 상대도 해주는 것이 제일이라고 노인 문제의 전문가이면서 이 모임의 맏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분의(그 이는 노인 문제로 석사 학위를 땄다) 생각이다. 자신들이 한 번 더 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직장과 학업 등을 병행해야 하는 회원들로서는 한 달에 한 번을 빠지지 않고 오는 일도 쉽지 않다. ‘94년 7월 1일 첫 방문 후 여지껏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은 무조건 비운다.”

이것이 네 명 회원들의 철칙이다. 그 철칙을 한 명이라도 어겼다면 이 모임은 벌써 흩어졌을 것이다. 새로 들어온 김 선생을 빼고 세 명의 초창기 회원들은 4년간 이 규칙을 지켰다. 이젠 주변에서도 미리 알아서 약속을 잡지 않는 등 배려를 하기에 이르렀다.

 

 

할아버지, 다음 넷째주 토요일에 올게요.

 

 

한 팀을 더 만들기 위해 물리치료사 회보를 비롯해 회원들이 처음 만난 사당동 정안정사에서도 여러 번 홍보를 했다. 좋은 일이라는 격려와 함께 후원 회비를 내겠다는 이는 있어도, 함께 일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는 없어 결국 소득이 없었다. 혹여 뜻있는 이들을 위해 밝히자면, 특별한 물리치료 기술은 필요 없다. 약간의 지도를 받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노인들에 대한 애정만 있으면 누구나 환영이란다.

 

꿈속 스님과의 인연

 

‘남몰래 남을 도웁시다. ’
성철 큰스님께서 강조하신 세 가지 말씀 중 하나다. 이들이 오늘까지 이 일을 해온 뒷면에는 큰스님과의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이 일을 처음 주도한 맏이 선생은 본래 가톨릭 신자였다. 근무하는 병원이 절 근처여서 가끔 환자로 스님들을 치료하면서, 스님들로부터 성철스님 말씀을 들을 때는 별 관심 없이 귓등으로 흘렸다. 그즈음 성철스님께서 열반하셨고, 스님 얘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성철스님이 꿈에 나타나신 건 그로부터 얼마 후, 주장자를 손에 든 스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 채 그냥 앉아 계셨다. 치료받으러 온 어떤 할머니께 꿈 얘기를 하자 대뜸 『자기를 바로 봅시다』란 책을 한 권 주셨다. 

 

“집에 돌아와 밤새고 읽었어요. ‘쌀, 돈 가지고 절로 오지 말고 이웃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어라. 그것이 참 불공이다’는 구절에서 ‘그래, 바로 이 말씀이다, 이것이 진정한 종교의 모습이다’라고 생각했죠.”
불교의 참모습을 그렇게 만났다. 부처님으로부터 복을 받거나 달라고 할 때보다도 남에게 복을 줄 수 있을 때, 여기가 극락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서울에 큰스님 진영을 뫼신 절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무조건 찾아간 곳이 사당동의 정안정사였다. 그곳에는 큰스님의 상좌 원영스님께서 계셨다. ’94년 4월경의 일이다.

 

원영스님은 그이에게 전공을 이용해 불쌍한 노인을 도와주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자광원 얘기와 함께…. 대학 시절, 재활원에서 자원봉사하던 때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서 싫다고 거절하고 말았다. 정에 굶주려 매달리는 아이들을 떼어 놓고 돌아서기란 마음 약한 그이에겐 고통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잠 못 이루던 일을 또 하라니, 그런 어둠에는 눈 감고 싶었다.

 

결국 양심에 걸려 그 제안대로 자광원 방문을 시작했다. 정안정사에서 만난 서예학원 선생과 병원 후배 물리치료사가 출발의 동지가 되었고, 백여만 원이 넘는 물리치료 장비도 주변의 도움과 본인들의 추렴으로 장만했다. 한 달에 한 번 일을 마치고 나서 차 한 잔 하고, 명절 때 노인들께 조그만 선물을 마련키 위한 자금도 자체 회비로 조달하고 있다. 그들에게 아쉬운 건 시간뿐이다.

 

그이들이 절에 가는 횟수는 자광원 가는 횟수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를 ‘땡땡이 불자’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기자의 눈에는 그들이 진실로 참불공을 올리는 진짜 불자로 보였다.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귀한 ‘시간’을 남을 위해 쓴다는 것, 그들이 하는 일은 그리 요란하거나 대단치 않을지 몰라도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신선한 충격으로 읽은 성철 큰스님의 법문이 들리는 둣했다.
“자기만을 위해서 불공을 한다면, 그것은 불공과는 역행이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남을 돕는 일이 불공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돕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도움이 있고, 정신적, 육체적인 도움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도 불공이고,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 주는 것도 불공이며,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일도 불공입니다. 일체중생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 모두 불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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