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
내 마음속의 꺼지지 않는 깨침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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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7 년 9 월 [통권 제7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8,424회 / 댓글0건본문
현승훈 / 화승그룹 회장
큰스님과의 처음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부친은 몹시도 무더운 한여름에 영면(永眠)의 세계로 훌쩍 떠나셨고, 들녘이 황금빛으로 넘실거릴 즈음 해인사에서 선친의 49재를 치를 때였다.
큰스님을 처음 뵈는 순간 형형한 안광(眼光)과 이미 삼라만상의 제(諸) 법칙을 깨우친 듯한 구도자(求道者)의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선친(先親)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공허함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큰스님과의 만남은 큰 위안이 되었다.
이듬해 추석 무렵 백련암에서 가족들과 삼천배 할 준비를 하고 오라는 연락이 왔고, 나는 가족들을 데리고 백련암으로 가 큰스님을 접견하려 하였으나, 삼천배를 하지 않으면 접견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적이 당황하였다.
그래서 접견을 포기하고 하산하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시자께서 큰스님이 친견을 허락하셨다고 알려주었다.
큰스님께서는 우리가 전생에 인연이 있어서 만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슬픔과 번뇌, 인간사 역경을 극복하고 구도를 향한 용맹정진의 한 방법으로 일상생활 중 삼천배 하기를 권고하셨다.
처음에는 삼천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아해 하였으나, 당시 큰스님의 시자이신 원택 스님께서 이는 수행의 한 방법이며 큰스님을 만나시는 분은 누구나 행하여야 한다고 귀뜸을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돌려 삼천배를 행하는데 온몸에 느껴지는 고통과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심리적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수행이 끝나는 순간 신선한 전율이 육신과 정신을 감싸 지나가고 이어서 마음속에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맺어진 큰스님과의 인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하게 되어 기회가 허락할 때마다 큰스님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불명도 큰스님께서 지어주셨다.
한때 큰스님께서는 고불원(古佛院)에서 4년, 겁외사(劫外寺)에서 3년을 동안거(冬安居) 하셨는데 그곳은 내가 거주하는 곳과 인근인지라 큰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나로서는 큰 행운과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큰스님과의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한번은 우리 부부가 백련암을 오르면서 큰스님의 공양(供養)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 당시 큰스님께서는 공양으로 솔잎가루, 불린 검은 콩, 김 몇 장, 밥 한 숟가락 정도를 무염(無鹽)으로 하여 드셨음 - 비록 큰스님은 소식(小食)을 하시지만 몸에 좋은 것은 다 드신다며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올랐다.
마침 우리가 당도하니 그때가 공양 시간이었고, 우리 부부를 마주하신 큰스님께서 웃으시면서 “내가 좋은 것은 다 먹제” 하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우리는 와! 하면서 우리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계시는구나 하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또 한번은 4년 전 입적하시던 해 5월, 평소에 사진 찍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았던 큰스님께서 갑자기 시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자고 하셨다. 평상시와는 달라 약간 의외였으나 별다른 생각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진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는 그해 가을에 입적하셨는데, 마치 큰스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인연을 정리하시고자 그리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니 그리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큰스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종이 한 장마저도 아끼시는 근검과 청빈함을 실천하셨으니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셨다. 요즈음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데는 이처럼 큰스님의 정신적 영향이 적지 않았다.
큰스님께서는 깨달음은 많은 사람과 나눌수록 커진다고 하시어 우선 내가 경영을 맡고 있는 화승그룹의 임직원들에게 삼천배의 좋은 점을 권고하였더니 비교적 많은 이들이 동참하여 깨달음의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었다.
생전에 큰스님께서 당부하신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는 항상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 있는데, 능엄신주는 일과(日課) 60독(讀) 그리고 일과 500배(拜)를 일상생활화하고 있고 큰스님의 큰 사상과 청빈한 생활을 본받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미력이나마 진력(盡力)하고 있는데, 이는 비록 큰스님께서는 열반하셨으나 그분과의 인연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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