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책소개
성철 스님의 탄신 100주념 기념!성철 스님의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 본지풍광설화』 저자는 1967년 해인총림의 방장으로 취임한 후, 선종 정통의 법문 양식을 그대로 따른 상당법문을 펼쳤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의 상당법문을 정리하여 출간한 것이 바로 <본지풍광(本地風光)>이다.
<본지풍광>은 저자가 <선문정로(禪門正路)>와 함께 '부처님에게 밥값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반복적으로 깨달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그러한 <본지풍광>을 재출간한 것이다. 원택 스님이 저자의 상당법문을 녹취하여 정리한 내용도 새롭게 담아내 의미 있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선문염송(禪門拈頌)>에 실려 있는 공안을 기록했다. 저자의 상당법문이 설파되는 법회의 현장에 있는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선종 역사를 아우르며 펼쳐지는 상당법문을 통해 선사들이 깨달은 인연을 깨우치게 된다.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 본지풍광설화』 제1권 ,제2권으로 출간되었던 책을 2020년에 한 권으로 발행하였다. 양장본.
저자소개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아직까지도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목차
헌사獻辭 조계종정曹溪宗正 법전法傳 — 4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1. 덕산탁발德山托鉢 바리때를 들고 — 13
2. 염화미소拈花微笑 꽃을 드니 미소짓다 — 29
3. 조주정백趙州庭栢 뜰 앞의 잣나무 — 36
4. 삼성봉인三聖逢人 사람을 만나면 — 45
5. 보화적적普化賊賊 도적이야 도적이야 — 51
6. 경청신년鏡淸新年 새해의 불법 — 60
7. 동산공진洞山供眞 영정에 공양 올릴 때 — 64
8. 소산긍낙疎山肯諾 긍정과 승낙 — 74
9. 용광거좌龍光據坐 버티고 앉아 — 84
10. 영운견도靈雲見桃 복숭아꽃을 보고 — 89
11. 구봉불긍九峰不肯 긍정치 않다 — 99
12. 임제빈주臨濟賓主 손과 주인 — 110
13. 극빈벌전克賓罰錢 극빈의 벌금 — 120
14. 동산삼근洞山三斤 삼서근 — 132
15. 분양주장汾陽拄杖 주장자 — 142
16. 동산수상東山水上 동쪽 산이 물 위로 — 150
17. 건봉거일乾峰擧一 하나를 들 것이요 — 160
18. 세존초생世尊初生 천상천하 유아독존 — 171
19. 낭야법화瑯瑘法華 낭야와 법화 — 186
20. 남전천화南泉遷化 남전이 돌아가신 곳 — 200
21. 건봉법신乾峰法身 건봉스님의 법신 — 207
22. 보수개당寶壽開堂 보수스님의 첫 법문 — 218
23. 오도사송悟道四頌 도를 깨치고 — 227
24. 세존양구世尊良久 말 없이 — 240
25. 용아선판龍牙禪板 선판과 포단 — 262
26. 세존금란世尊金襴 금란가사 — 279
27. 육조풍번六祖風幡 바람과 깃발 — 284
28. 남전참묘南泉斬猫 고양이를 베다 — 298
29. 조주끽죽趙州喫粥 죽을 먹었는가 — 310
30. 파자소암婆子燒庵 암자를 불사르다 — 327
31. 풍혈일진風穴一塵 한 티끌 — 339
32. 운문시궐雲門屎橛 마른 똥막대기 — 349
33. 조주양화趙州楊花 버들꽃 — 363
34. 오조불법五祖佛法 오조 불법승 — 370
35. 대수겁화大隨劫火 겁화 — 381
36. 흥화난할興化亂喝 어지럽게 할을 — 390
37. 동안가풍同安家風 가풍 — 403
38. 조주끽다趙州喫茶 차나 한 잔 — 410
39. 마조불안馬祖不安 마조스님 편치 않으니 — 421
40. 구지일지俱胝一指 손가락 하나를 세움 — 429
41. 단하소불丹霞燒佛 나무 부처를 태우니 — 444
42. 북두장신北斗藏身 북두에 몸을 감추다 — 458
43. 선사기제先師忌祭 스님의 제사에 — 471
① 원오천화圜悟遷化 원오스님이 가신 곳 — 471
② 진주나복鎭州蘿葍 진주의 무 — 474
44. 조주삼불趙州三佛 세 가지 부처 — 477
45. 마조사구馬祖四句 네 가지 문구 — 490
46. 설봉별비雪峰鼈鼻 자라코 뱀 — 503
47. 흥화민덕興化旻德 흥화와 민덕의 할 — 511
48. 조주감파趙州勘破 감파했다 — 524
49. 운문호병雲門餬餅 운문의 호떡 — 538
50. 덕산작마德山作麽 어째 어째 — 549
51. 분양사자汾陽師子 분양의 사자 — 554
52. 법안지렴法眼指簾 주렴을 가리키니 — 557
53. 향엄상수香嚴上樹 나무에 올라 — 560
54. 사자우해師子遇害 해를 입다 — 565
55. 노조벽면魯祖面壁 벽을 보고 — 573
56. 백장야호百丈野狐 백장스님과 여우 — 583
57. 조주대사趙州大死 크게 죽었다가 — 596
58. 향상일로向上一路 향상의 길 — 606
59. 곽시쌍부槨示雙趺 곽에서 두 발을 — 617
60. 운문참회雲門懺悔 참회 — 625
61. 천지동근天地同根 천지는 한 뿌리 — 634
62. 목주담판睦州擔板 판때기 짊어진 사람 — 646
63. 금우반통金牛飯桶 금우스님의 밥통 — 657
64. 풍혈어묵風穴語黙 말과 묵묵함 — 667
65. 증구성별證龜成鼈 거북을 자라로 — 677
66. 현사백희玄沙百戱 백 가지 놀이 — 681
67. 현성공안現成公案 나타난 공안 — 685
68. 수산불법首山佛法 어떤 것이 불법 — 689
69. 운문법안雲門法眼 바른 법의 눈 — 693
70. 협산경계夾山境界 협산의 경계 — 699
71. 암두도자岩頭渡子 뱃사공 — 704
72. 체로금풍體露金風 몸이 가을 바람에 — 709
73. 조주사문趙州四門 사방의 문 — 717
74. 이류중행異類中行 이류 중의 행 — 723
75. 경청기원鏡淸其源 그 근원 — 728
76. 운문구우雲門久雨 오래 비 와서 — 733
77. 운문화타雲門話墮 말에 떨어졌다 — 737
78. 덕산도득德山道得 말을 해도 — 741
79. 밀암사분密菴沙盆 깨진 질그릇 — 744
80. 소산수탑踈山壽塔 장수 탑 — 749
81. 앙굴산난殃崛産難 해산하기 어려워 — 759
82. 진조감승陳操勘僧 스님을 감정 — 768
83. 세존불설世尊不說 말씀하시지 않고 — 778
84. 덕산문화德山問話 말을 물으면 — 785
85. 흥화촌재興化村齋 촌 재에 갔다가 — 795
86. 현사과환玄沙過患 허물 — 804
87. 보자지격報慈智隔 지혜가 막혀 — 810
88. 운문일구雲門一句 말 한마디 — 813
89. 병정구화丙丁求火 불이 불을 구해 — 821
90. 운문종성雲門鐘聲 종소리 — 825
91. 양기려자楊岐驢子 세 다리 나귀 — 830
낙수법어落穗法語
1. 선림시중禪林示衆 선림회 시중법어 — 838
2. 방함록서芳啣錄序 방함록 서언 — 840
3. 총재법어總裁法語 세계불교지도자대회 총재 법어 — 842
4. 당십오일當十五日 십오일을 맞아 — 844
5. 갑인하해甲寅夏解 갑인년 하안거 해제에 — 845
6. 육여사재陸女史齋 육영수 여사 재일에 — 847
7. 을묘하해乙卯夏解 을묘년 하안거 해제에 — 849
8. 경신하해庚申夏解 경신년 하안거 해제에 — 850
9. 신유하해辛酉夏解 신유년 하안거 해제에 — 851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
본지풍광설화를 출간하며 원택 — 853
후기 — 863
책속으로
1. 덕산탁발德山托鉢 바리때를 들고【 수시 】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잡고 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셨다.)
이렇고 이러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해와 달이 캄캄하도다.
이렇지 않고 이렇지 않으니
까마귀 날고 토끼 달리며 가을 국화 누렇도다.
기왓장 부스러기마다 광명이 나고
진금眞金이 문득 빛을 잃으니
누른 머리 부처는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고
푸른 눈 달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도리를 알면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며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삼두육비三頭六臂이니 어떠한가?
붉은 노을은 푸른 바다를 뚫고
눈부신 해는 수미산을 도는도다.
여기에서 정문頂門의 정안正眼을 갖추면 대장부의 할 일을 마쳤으니 문득 부처와 조사의 전기대용全機大用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둘째 번 바가지의 더러운 물을 그대들의 머리 위에 뿌리리라.
(上堂하여 拈拄杖하고 良久云)
也恁麽也恁麽하니 天崩地壞日月黑이요
不恁麽不恁麽하니 嗚飛兎走秋菊黃이로다
瓦礫이 皆生光하고 眞金이 便失色이라
黃頭는 退三千하고 碧眼은 暗點頭로다
會得則七顚八倒요 不會則三頭六臂니 作麽作麽오
紅霞는 穿碧海하고 白日은 繞須彌로다
於此에 具頂門正眼하면 丈夫能事畢이라 便見佛祖의 全機大用이어니와 其或未然이면 更有第二杓惡水하야 撒在諸人頭上하리라
만약 여기에서 바른 안목을 갖춘다면 대장부의 할 일을 다 마친 것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파심으로 사족蛇足, 즉 뱀의 발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 본칙 】
예부터 조사祖師 가운데 영웅英雄은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이라고 모두 말하니,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은 실로 천고千古에 큰 안목眼目이라 이는 총림叢林의 정론定論이다. 그중 덕산스님 밑에서 두 사람의 큰 제자가 나왔으니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다.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供養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에 이르렀다.
공양주이던 설봉雪峰스님이 이것을 보고 “이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하니,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전하니 암두스님이 “보잘것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덕산스님이 그 말을 듣고 암두스님을 불러 묻되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하니, 암두스님이 은밀히 그 뜻을 말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전과 달랐다.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 년뿐이로다.” 했는데, 과연 삼 년 후에 돌아가셨다.
自古로 祖席之英雄은 咸稱臨濟德山하나니 臨濟德山은 實是千古大眼目이니라 此則叢林定論也로다 其中德山下에 出兩大弟子하니 岩頭雪峰也라
德山이 一日에 飯遲어늘 自托鉢至法堂上이러니 飯頭雪峰이 見云 這老漢이 鐘未鳴鼓未打어늘 托鉢向什麽處去오 山이 低頭便廻하니라 峯이 擧似岩頭한대 頭云 大小德山이 不會末後句로다 山이 聞擧하고 喚岩頭하야 問호대 爾不肯老僧耶아 頭가 密啓其意하니라 山이 明日上堂에 與尋常으로 不同이어늘 頭가 撫掌大笑云 且喜老漢이 會末後句로다 他後에 天下人이 不奈何하리라 雖然如此나 只得三年이라 하니 果三年後에 遷化하니라.
* 덕산德山스님은 20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경과 율을 공부하였습니다. 처음 서촉西蜀에 있으면서 교리연구가 깊었으며 특히 『금강경』에 능통하여 세상에서 ‘주금강周金剛’이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속성俗姓이 주周씨였습니다. 당시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평생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소초金剛經疏鈔』를 짊어지고 떠났습니다.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배가 고픈데 마침 길가에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덕산스님이 그 노파에게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그 떡을 좀 주시오.” 하니, 그 노파가 “내 묻는 말에 대답하시면 떡을 드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떡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여 덕산스님이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노파가 물었습니다.
“지금 스님의 걸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소초』가 들어 있소.”
“『금강경』에 ‘과거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심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점심點心 먹겠다.”고 하는 말을 빌려 이렇게 교묘하게 질문했습니다.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금강경』을 거꾸로 외우고 모로 외우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떡장수 노파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 큰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리로 가면 용담원龍潭院에 숭신崇信선사가 계십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으로 숭신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용담龍潭이라고 말을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보니 용龍도 없고 못潭도 없구만요.” 하고 용담 숭신선사에게 말하니 숭신스님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자네가 용담에 왔구먼.”
그러자 또 주금강은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숭신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는 밤이 깊도록 숭신스님 방에서 공부하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오려고 방문을 나서니 밖이 너무 어두워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숭신스님이 초에 불을 켜서 주고 덕산스님이 받으려고 하자 곧 숭신스님이 촛불을 훅 불어 꺼 버렸습니다. 이때 덕산스님은 활연히 깨쳤습니다. 숭신스님께 절을 올리니 용담스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절을 하느냐?”
“이제부터는 다시 천하 노화상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했습니다.
“모든 현변玄辯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 것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 같다.”
그 후 후배들을 제접할 때는 누구든지 보이기만 하면 가서 몽둥이棒로 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덕산스님이 법 쓰는 것을 비유하여 ‘비 오듯이 몽둥이로 때린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방을 뒤져 책이란 책은 모조리 찾아내어 불살라 버리곤 하였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두 가지 대표적 선풍을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고 하는데 임제스님의 할과 함께 덕산스님의 몽둥이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제자로는 설봉 의존스님, 암두 전활스님 등이 있습니다.
그런 덕산스님 회상에서 두 제자가 함께 계실 때였습니다. 한번은 공양시간이 늦어졌습니다. 하도 때가 늦어지니까 덕산스님이 ‘공양이 왜 이리 늦는가?’ 해서 바리때를 들고 식당으로 나아갔어요. 당시 설봉스님이 반두飯頭, 즉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었습니다. 설봉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 늙은이야, 아직 북도 두드리지 않고 종도 치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무엇 하러 들고 나오느냐?”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천하의 덕산스님이 아무 말씀도 않고 머리를 푹 숙이고는 방장方丈으로 돌아갔습니다.
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말했습니다. 암두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덕산인지 뭔지 조실에 앉아있으면서 말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만.” 하였습니다. 말후구란 선종 최후의 관문입니다.
그 말이 덕산스님 귀에 전해졌어요. 그래 덕산스님이 암두를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
그러자 암두스님이 은밀히 덕산스님에게 그 뜻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시는데 과연 그 전과는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기쁘다, 늙은이가 참으로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후로는 천하의 누구도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삼 년 더는 못살 것이다.” 했는데, 과연 삼 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 본칙 】
이것이 종문宗門의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이다. 이 공안公案에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는 덕산 대조사가 어째서 설봉스님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는가,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
둘째는 덕산스님이 과연 말후구를 몰랐는가,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넷째는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授記를 받았을까? 그러면 암두스님이 덕산스님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
此是宗門向上牙爪인 德山托鉢話也라
此公案에 有四箇難點하니 初則德山大祖師가 爲什麽하야 雪峰一言之下에 低頭歸方丈耶아 實無對句能力耶아 且有他意耶아 次則德山이 果然不會末後句耶아 不會末後句而焉能作大祖師오 三則密啓其意云하니 道个甚麽오 第四則德山이 因岩頭敎示하야 得會末後句而又蒙授記耶아 然則岩頭勝於德山數倍耶아
머리말
2007년 본지풍광을 평석하신 내용을 정리하여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로 제목을 바꾸어 1권을 출판하고, 1년 넘는 세월을 지나 그 두번째 권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힘든 일을 끝내고 나니 홀가분하다기보다는 ‘좀 더 빨리 이 책들을 출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무겁게 가슴을 눌렀던 기억입니다.『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2권이 발간되고 10여 년이 지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했던 1권에 부록으로 실었던 김영욱 교수와 서명원 교수의 논문을 빼고 금번에 1권과 2권을 합본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상당법문을 하실 때마다 “깨쳐야 알지 사량분별로는 알 수 없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되뇌이면서 후학들을 깨우치려고 몽둥이를 휘두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마저도 큰스님의 가풍임을 잘 알기에 이 책에서도 큰스님의 말씀을 중언부언 따랐습니다. 부디 독자제현께서 큰스님의 깊은 뜻을 터득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의 김영욱 박사님은 “오늘날의 한국불교에서 실수實修를 겸한 선사가 간화선의 전통과 근거를 하나하나 밟아가며 그 종지를 제시한 현대의 작품으로 이 책과 비견할 만한 짝은 없다.”고 『본지풍광』을 평한 적이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이신 서명원 신부님 또한 “『본지풍광』에 있는 백여 칙의 공안들을 통한 꾸준한 간화선 수행은 『선문정로』의 핵심 개념인 돈오돈수를 체득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본지풍광』을 선종의 쌍벽서雙壁書인 『종용록從容錄』과 『벽암록碧巖錄』과 더불어 선종의 제삼벽서第三壁書로 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본지풍광은 본래면목, 근본 마음자리를 밝히는 실제 수행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성철스님께서 “나는 『본지풍광』과 『선문정로』, 이 두 권의 책으로 부처님께 밥값을 하였다.” 하시고, 또 “『본지풍광』과 『선문정로』를 실참으로 터득한 사람이 내 법을 이은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본지풍광』을 일러 “이 상당법어가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 자성의 본지풍광을 밝힌 것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 눈 밝은 사람이 나온다면 다행”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다시 정리해 출간하는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를 통해 큰스님의 법을 이을 납자가 출현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녹음테이프를 잘 간수하지 못해 군데군데 큰스님의 설법을 제대로 싣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선지에 어긋나고 잘못된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소납 원택의 잘못이니 많은 질정과 격려를 바랍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정리를 도와주신 최원섭 님과 성재헌 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래면목을 큰스님의 방棒과 할喝이 거름이 되어서 깨달음의 꽃을 활짝 피우는 선을 닦는 이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빛나기를 바랍니다.
불기 2564(2020)년 초하지절
원택 화남和南